[2008/6] 평화누리통일누리:::75호::: <해외평화운동> 재 재정의(再 再定義)를 향하는 일미동맹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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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평화운동 § 재 재정의(再 再定義)를 향하는 일미동맹
아시아공동행동-규슈 야마구치 실행위원회 (AWC 일본연락회의 전국사무국) 도요타 유키하루 번역 : 나가야 유키코 1. 일미동맹의 재 재정의(再 再定義)? 2008년 3월 16일자 조간 일본경제신문(닛케이신문)에 ‘일미정부는 빠르면 2009년 말에 제2차 안보공동선언을 발표한다’는 내용의 칼럼이 실렸다. 필자는 닛케이신문 편집위원 이나 히사요시(伊奈 久喜)로 일본경제신문사 정치부 및 워싱턴 지국을 거친 인물로 외무성 독립행정법인 평가위원회 구성원이기도 하다. 이 칼럼의 논지는 일본과 미국에서의 민주당 정권 성립을 가정하여 과연 향후 일미동맹이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를 예측한 것이다. 이 칼럼의 제목은 ‘일미동맹, 재 재정의가 필요하다’인데, 1996년 일미동맹 재확인(일미안보 재정의)부터 신 일미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 책정, 그리고 ‘주변사태법’ 제정까지를 ‘재확인’ 단계였다고 하고 그 위에 더 ‘재 재확인, 재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이유로서 들고 있는 점은 네 가지다. 첫 째 예상을 뛰어넘은 중국의 성장, 둘째 변화된 한반도에서의 대립구조, 셋째 강력한 러시아의 부활과 인도의 대두라는 지정학적 변화, 넷째 미 동시테러(9·11사건) 이후의 전 세계적 변화이다.
물론 칼럼 형식의 주장이기 때문에 엄밀한 검증이나 비판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칼럼의 필자가 이렇게 단정적으로 기사를 쓴 것에 대해서는 흥미롭다. ‘빠르면 내년 말까지 제2차 일미안보공동선언이 발표된다’니, 친정부 인사인 칼럼 필자가 모종의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일미정부가 그 사실을 공표했는지 과문한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 일미정부 간, 특히 일미안보협의회에서의 논의나 합의문서를 보면 일미관계가 그렇게 방향지어져 있다는 것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실제 작년 5월 일미안보협의회 공동발표문 제목이 ‘동맹의 변혁: 일미 안전보장 및 방위협력의 진전’이다. 또한 ‘2009년 말까지’로 쓴 것은 올 11월 미국이 대선을 치르고 일본 후쿠다 정권이 유지된다고 했을때 그 임기가 내년 9월 말까지라는 것을 염두에 둔 설정인 것 같다. 이를 전제로 이 칼럼의 핵심인 ‘왜 일미동맹의 재 재확인(정의)가 필요한가’라는 내용은 결국 위에서 인용한 네 가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와 관련된 것이고, ‘일미동맹을 조정하지 않으면 일미동맹은 타성동맹이 되어버린다. 동맹을 재 재확인하기 위해 제2차 공동선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미동맹의 ‘타성동맹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2. ‘타성(惰性)동맹’이라는 말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타성동맹’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칼럼의 필자는 일미동맹이 타성동맹에 빠지게 될 것을 우려하여 ‘일미동맹의 재 재정의’를 주장하는데, 아마도 고이즈미 정권에서 아베정권으로 이어진 일본정부의 일미동맹 강화노선 지지자인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인식인듯 싶다. 그렇다면 고이즈미와 아베로 이어진 ‘타성동맹이 아닌 일미동맹’이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검증해 보자. 고이즈미는 ‘세계 속의 일미동맹’이라는 말을 썼다. 2006년 6월 일미정상회담 공동발표문에서 그 말을 명기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적 규모의 일미협력’을 강조했다. 부시 정권의 ‘대테러전쟁’에 대한 전면적 지지가 그 계기였다. 아베는 이를 더욱 진전시켜서 ‘세계와 아시아를 위한 일미동맹’을 더욱 명확히 하고 ‘아시아의 강고한 연대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공헌하는 외교’를 하겠다고 강조했다(2006년 9월 제165국회 시정방침연설). 또 아베는 자신의 ‘세계와 아시아를 위한 일미동맹’론을 그 후에도 강력히 추진하려고 했다. 아베와 동지적 관계인 당시 아소 외무상은 아베수상의 일미동맹론을 외교방침으로 정하고 ‘자유와 번영의 활’ 구상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자유와 번영의 활’ 구상이란 간단히 말하면 유라시아 대륙 외각에 위치한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지원하고 포섭하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구상은 중국 포위망 형성이라며 반발하는 중국과, 인도와 호주 등의 소극적 자세, 결정적으로는 아베정권의 붕괴 때문에 좌절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일미관계가 매우 양호하고 긴밀하다’, ‘흔들림이 없는 일미동맹’ 등의 평가가 일미 정권 내부 및 주변에서 들려온 적은 있어도, ‘타성동맹’이라는 말이 나온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베가 정권을 포기하고 후쿠다 정권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적어도 이 칼럼의 필자같은 이들은 이대로 나가면 일미동맹이 타성동맹으로 변해 버릴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모양이다. 안보와 일미관계 정책에 관한 후쿠다 정권의 특징이 무엇일까? 후쿠다는 그의 본격적인 시정방침연설(2008년 1월 제169국회)에서 ‘평화협력국가’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법의 지배라는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의 연계 강화’를 중심으로 추진하고자 한 아베정권의 ‘주장하는 외교’(제166국회의 시정방침연설)와의 차이를 강조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일미정상회담에 임한 후쿠다는 ‘일미동맹과 아시아와의 공명(synergy, 상승효과을 뜻함)’을 제창하면서 그 방향성에 대해서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가 좋다는 것은 미국에게도 좋은 일이다. 이를 (부시 대통령에게) 잘 설명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날에 고이즈미가 2005년 11월 일미정상회담에서 ‘일미관계가 좋다면 중,한, 아시아 여러나라와도 양호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레토릭(정치적 수사)이다. 물론 고이즈미나 아베와 비교하여 후쿠다가 더 낫다는 것은 아니다. 후쿠다 자신도 ‘일미동맹이 안보-외교정책의 기축’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강조해 온 인물이다. 하지만 이 칼럼의 필자같은 사람들은 이러한 대미관계(일미동맹)와 대 아시아 관계의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후쿠다의 자세조차 ‘일미동맹의 타성동맹화’의 조짐으로 보는 것 같다.
3. 일미동맹의 변화 1996년 ‘일미안보 재정의(再定義)’자체가 냉전 이후의 시대인식 하에서 일미동맹 관계를 재검토하자는 취지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거기에는 걸프 전쟁에서 일본이 취한 방책-막대한 자금 제공과 전쟁종료 시 소해정 파병-과 1994년을 전후한 한반도의 위기라는 요인이 있었다. 1995년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미 해병대원에 의한 소녀 성폭행사건에 대한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 민중들의 분노와 일미안보 반대, 미군기지 철수라는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일미 간에 정치 군사적인 역할이나 기능강화가 ‘재정의’되고 ‘다시보기’가 되었다. 이를 기초로 하여 위에서 언급한 일미신가이드라인 책정(1997년)과 ‘주변사태법’이 제정(1999년) 되었다. 그 자체가 이미 종래의 일미안보조약을 위반한 내용(예를 들어 안보조약에서 말하는 ‘극동’개념을 초월한 ‘주변’개념 설정 및 ‘주변’에서의 일미 군사협력 체제 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부족하다는 것이 미국 부시 정권과 일본 고이즈미와 아베 정권이었던 것이다. 그 부족함은 2001년 9·11사건과 부시의 ‘선제(핵)공격 독트린’, ‘대테러전쟁’, 이를 전폭 지지한 고이즈미의 재빠른 대응을 통해서 실천이 선행하는 방식으로 채워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테러대책 특별조치법’(2001년 11월)을 가지고 해상자위대의 아라비아해 파병 등이 진행되었고, 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라크 특별조치법’(2003년 8월)을 통해 육상 및 항공 자위대가 이라크에 참전했고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세계 규모의 미군재배치 계획(GPR)이 진행되는 가운데 2005년 2월에 열린 일미안보협의회(2+2회의)에서의 ‘공동 전략목표’합의, 2005년 10월 ‘일미동맹: 미래를 위한 변혁과 재편’합의, 2006년 5월 ‘일미동맹: 재편 실시를 위한 일미 로드맵’합의에 이르기까지 일미동맹의 재편 혹은 변혁을 정면에서 내세운 협의와 합의가 이루어졌다. 각각의 내용에 대해서 여기서 분석하여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미 일미안보조약을 크게 이탈하는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먼저 자위대가 상시적으로 해외로 파병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2년 캄보디아 PKO에 자위대가 참가한 일은 유엔이라는 명목 하에서 이루어진 자위대 해외 첫 파병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위대는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과 함께 군사행동을 하게 되었다. 둘째로 ‘공동 전략목표 합의’를 돌파구로 하여 일미안보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극동’지역을 크게 넘어선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규정하고, 또한 그 지역의 ‘새로운 위협’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는 방향을 결정지었다. 그 ‘새로운 위협’으로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중국 및 중국과 대만의 ‘양안문제’도 열거되었다. 그리고 셋째로 미군재편으로 인하여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의 미군기지 재편 강화와 일미 군사 일체화를 가져오게 하고 있다. 미사일 방위(MD)협력도 이러한 동향과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타성동맹의 위기까지 지적되고 있다.
4. ‘타성동맹화’를 돌파시킬 처방전이란? ‘타성동맹화’에 대한 처방전을 위 칼럼의 필자는 어떤 것이라고 보고 있는가? 그것은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헌법해석 변경’, ‘이를 기초로 항구법 형태로 자위대의 국제협력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대처방법’, ‘2014년을 목표로 한 후텐마 기지(오키나와) 대체시설 건설의 약속(이행)도 필요하다’ 등으로 열거되어 있다. 마지막의 ‘2014년’이란 단순히 후텐마 대체시설 문제뿐만 아니라 미군재편계획 전체가 완료될 시점을 나타낸다. 헌법과 자위대의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 헌법 9조는 제1항으로 ‘전쟁 포기’를 명기하고 제2항에는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부정’을 명기하고 있다. 이 헌법 하에서 왜 명백한 군대인 자위대가 존재할 수 있고, 군사동맹인 일미안보조약이 계속되고 있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제2차대전 이후 일본의 정치과정을 서술하지 않으면 도저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객관적으로는 동아시아 동서 냉전 구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방공 방파제로서의 일본의 자리매김을 일본지배층이 ‘경무장-경제성장’의 논리로 수용하고 헌법의 공동화(空洞化)와 침해를 일삼아 왔다는 사실이 있다. 그리고 일본 노동자 민중들이 60년 안보투쟁, 70년대 안보-오키나와 투쟁, 반전 평화, 반기지 반안보 투쟁을 전개하면서도 결정적으로 그러한 사태(헌법의 공동화와 침해)를 막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이렇듯 헌법 9조의 조문은 바꾸지 않은 채 ‘정부 해석’이라는 수법으로 “군대와 전력은 헌법 상 인정받지 못하지만 ‘자국 방위를 위한 최소한의 능력’은 보유해도 합헌”이라는 이른바 ‘해석 개헌’이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 개헌’ 수법을 써도 일본 자위대가 타국(미국)군대와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일본 방위를 떠나서 동맹국의 방위에 협력하는 일까지는 역시 불가능하고 위헌으로 삼아 온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보유하고 있지만 9조 2항으로 그 행사는 금지되어 있다’는 식이다. 단적으로 말해 이 칼럼 필자의 주장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라’는 말이다. 이런 주장에는 저류가 있다. 2000년에 발표된 ‘제1차 아미티지 보고’(미국과 일본: 성숙한 파트너십을 향하여-미 국방대학 국가전략연구소(INSS) 특별보고서, 2000년 10월)의 시점부터 미 정부 주변에서는 일미동맹 변혁 및 재편을 위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금지를 풀라는 주장이 계속되어 왔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동맹 간의 협력에 있어서 제약이 되고 있다. 이 금지사항을 제거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인 안전보장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제2차 아미티지 보고’(일미동맹: 2020년을 향한 아시아의 전망, 2007년 2월)에서도 “헌법과 관련하여 현재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는 지역 및 지구 규모의 안전보장문제에 대해 일본이 관심을 증대시키고 있음을 반영하는 일이며 믿음직스러운 움직임이다. 이 논의는 우리의 통합된 능력을 제한하는, 동맹협력에 대한 현존하는 제약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략) 미국은 우리가 공유하는 안전보장 이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에서 더 큰 자유를 지닌 동맹 파트너를 환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일정한 조건하에서 일본군 해외파병의 길을 열어가는 법률-각기의 경우마다 특별조치법이 필요하게 되는 현행제도와는 반대로-에 대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토론도 (미국이) 격려 받을 수 있는 움직임이다. 미국은 정세가 그것을 필요로 할 경우에 짧은 예고기간에 부대를 파병할 수 있는, 더 큰 유연성을 지닌 안전보장 파트너가 있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헌법 9조 개정, 그 중에서도 특히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길이 열리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하는 것과 더불어 자위대 항시 파병법 제정까지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를 온몸에 받고 아베 정권은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키고 국제협력업무를 자위대 본래업무 중 하나로 격상시킨 자위대법 개정까지 실시했다. 그런데, 아베정권이 갑자기 붕괴한 것이다. 뒤를 이은 후쿠다는 아베 정권에서 시작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정부해석 변경을 검토하는 ‘안전보장의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에서의 논의도 사실상 중단시키고 말았다. 이를 비관하여 칼럼 필자가 ‘일미동맹의 타성동맹화’를 우려하고, 그리고 ‘일미동맹의 재 재정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미동맹이 타성동맹에 빠지지 않게 하는 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금지를 풀고, 자위대 항시 파병법을 만드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화’되고 일미안보조약으로 침해당하고 있어도 헌법 9조는 그 조문을 변경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다. 일본 민중의 대다수는 지금까지도 헌법 9조 개정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민중들의 저항력을 기본으로 일미동맹이 얼마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민중들이 가치판단을 다시 할 기회도 역시 생기고 있다.
5. 일미동맹을 둘러싼 지배층 내부의 차이 일미안보, 혹은 일미동맹을 절대적 가치로 유일하고 절대적인 외교방침으로 보지 않는 ‘선택지’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제출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제2차 아미티지 보고서’에서도 분명히 집단적 자위권 금지를 해제하라는 요구나 자위대 항시 파병법 제정 요구 등 일본 지배층에 대한 미국의 권고와 기대는 여전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2020년을 전망하여 미-중 관계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기본으로 삼으려고 하는 전망을 알아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도 일미동맹은 더욱더 미국의 국익에 따라 규제되는 방식으로 한층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일미)동맹은 계속 미국의 아시아전략의 핵심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이 전략의 성공 열쇠는 동맹이 공통의 위협에 기초한 배타적인 동맹에서 공통의 이익과 가치관에 기초한 더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동맹으로 계속 발전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미국의 국익은 일미동맹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활용하여 포괄적인 동맹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다고 자백한 것과 마찬가지다. 오로지 일미동맹 재 재정의를 위해 헌법 개정이나 자위대 항시파병법 제정 등을 하려는 일본 측의 사고방식과 앞서 얘기한 이런 미국의 관점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수단’에 불과한 ‘일미동맹’이 일본에서는 바로 ‘목적’ 그 자체인 것이다. 물론 ‘제2차 아미티지 보고서’의 내용이 차기 미국 정권에서 채용될지는 불투명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언급은 그만하겠지만 일미동맹은 미국에게는 이미 주어진 전제이며 게다가 일본에게는 긴밀화의 외길 밖에 없다고 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 지배층의 일부분이 칼럼 필자가 말하는 헌법 개정 등으로 일미동맹 재 재정의 방향을 주장하고 있다고 해서 지배층 모두가 그 방향으로 일치한 것은 아니다. 지배층의 일각을 구성하는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는 이라크 파병을 위한 테러대책 특별조치법 연장을 반대하고, 유엔을 기축으로 한 일본의 안보 외교방침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오자와가 일미동맹을 부정하는 정치가가 분명 아니지만, 대미 일변도인 안보 외교정책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유엔 중심주의라는 다른 길을 제기한 것도 사실이다. 지배층의 거의 대부분이 ‘일미안보체제 견지가 일본외교의 기축’ 이라고 보고 있다 해도 엄밀하게 관찰하면 일미동맹 혹은 일미관계를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일본의 존재방식이라는 점에서 굳게 결속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지적했지만 ‘평화협력국가’, ‘공명(상승효과)외교’를 말하는 후쿠다 자신이 고이즈미-아베 정권의 일미동맹 강화 일변도 외교노선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후쿠다가 일미동맹 강화에 대해서 전혀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후쿠다 자신이 자위대 항시 파병법을 주장하고 있고 헌법 9조 개정안을 정리한 자민당 ‘신헌법 초안’(헌법 개악안) 기초위원회의 안전보장 위기관리 소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고이즈미-아베 정권의 일미동맹 강화 일변도 노선과의 차이는 일미관계와 아시아 관계를 동시에 파악하려는 점이다. 또한 개헌 주장을 소리 높이 주장하면서 일본 국내 여론을 분열시키는 정치수법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6. 미군기지를 철거하고 일미안보를 폐지하는 방향에 대하여 이렇게 ‘일미동맹 재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칼럼의 논점을 두고 분석을 시도해 봤지만 일미동맹 재 재정의, 혹은 일미안보 재 재정의는 불필요하며, 일미안보조약과 함께 모두 부정하는 길도 있다. 노동자 민중 측에서의 대항 방침도 있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 이래로 급속히 ‘일미동맹’이라는 용어가 남발되고 또 그 내실도 비약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것은 이미 살펴보았다. 또 그것을 ‘제2차 아미티지 보고’에서는 극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일미동맹이 ‘오키나와와 일본본토에서 미군기지를 제공하는 대신 미국이 일본의 안전을 담보한다’라는 ‘일미안보조약’을 근원으로 하여 성립된다는 점이 바뀐 것은 아니다. 또한 예전부터 일미안보가 필요하고 불가결하다고 한 근거 중 하나인 ‘일미안보가 있어서 일본이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다’는 따위의 주장은 저성장 시대인 지금은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일미안보체제를 배경으로 미국의 관여 하에서 성립되고 계속된 ‘반공-친미(친일)’를 기치로 한 개발독재정권들에 대한 자본투자, 교역관계를 통해서 일본은 아시아의 경제대국으로 뛰어올랐는데 이제 그 아시아 나라들은 독자적 경제발전을 달성하여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기까지 이르렀다. 원래 ‘반공’의 대상이었던 소련은 붕괴되었고 중국은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경제부활의 호기로 삼고 박정희 독재정권 하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나라들을 발판으로 해서 경제성장을 달성한 일본에 대한 계산서가 돌아오고 있다. 일제의 전쟁책임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아직도 청산하지 않고 있는 사실과 더불어 반일의식이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안보 번영론’을 말하는 사람들은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민중들의 상호교류가 일미안보 때문에 얼마나 저해되었는지도 동시에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원래 ‘안보 번영론’이라고 해도 노동자 민중들이 그것을 실감할 수 있던 때는 예나 지금이나 전혀 없었다.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이 늘어났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그 자체가 일미안보체제와 직접적으로 인과관계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2차 대전 후 일본의 경제성장에서 일미안보체제가 ‘객관적 조건 중 하나’이긴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그때그때의 경제정책과 그 밑에서의 기업 활동, 그리고 거기서 이루어진 노동(바꿔 말하면 착취이기도 한)이라는 관점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을 ‘경제적 번영이 있었다. 그것은 안보 덕분이다’라고 하는 식의 난잡하기 짝이 없는 주장은 조잡한 데마고기(허위적인 정치 선동)에 불과하다. 게다가 노동자 민중의 생활차원에서 볼 때 경제성장과 병행하여 군사비도 천정부지로 비대화되어 왔고 ‘군사비를 삭감하여 복지로 돌려라’라는 요구는 1960년대부터 민중들의 요구이기도 했었다. 미군기지 철거와 자위대 증강 반대, 일미안보 철폐는 예전부터 계속된 민중들의 투쟁과제이다. 지금의 ‘일미동맹 재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평화헌법 개정, 자위대 항시 파병, 미군과 함께 전쟁터로 나가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정신으로 무장하게 국민들을 단련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눈앞에서는 미군기지가 비약적으로 강화되고 있고 자위대와 미군의 일체화가 크게 진행되고 있다. ‘일미동맹 강화’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미군범죄, 특히 성범죄가 증가하고 흉악화되고 있다. 괌에서의 신규 미군기지 건설에 61억 달러를 일본이 부담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포함해서 미군재편 비용이 3조 엔에 달한다고 한다. 주둔미군을 위한 소위 ‘배려예산’(주일미군 주류경비부담)은 1978년 시작부터 누계로 3조 엔에 이르렀다(2008년도는 2083억 엔). 그만큼의 부담에 걸맞은 일미안보(일미동맹)의 은혜가 과연 있었는지 따져보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은 모두 일미동맹(일미안보체제) 유지를 이야기하고 있고, 심지어 일미동맹 강화와 재편이 더욱더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보 번영론’이라는 논점과 관련해서 하나 더 지적해 두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냉전 시대의 종언’이라는 정치적 요인과 저성장 시대라는 경제적 요인으로 ‘안보 번영론’이 당연히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대신에 ‘안보=국익론’이 크게 융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국익이란 무엇인가’ 또는 원래 ‘국익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의는 여기서 안 하겠지만 이 ‘안보=국익론’의 대두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정치운영이나 경제정책을 관통하는 이념과 사상으로 만연되게 됨과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유의해 둘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글로벌리즘’을 일본기업의 다국적 기업화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추구, 이를 위한 경제-재정-통상정책 뿐만 아니라 안보-외교정책까지 동원하는 일이라고 간단히 정의지을 수 있다. 때문에 바로 국익이란 그러한 일본 다국적기업의 이익과 거의 같은 의미다. 이런 국익과 안보를 등호로 이어 ‘안보=국익론’이 된 셈이다. 거기서는 국민의 경제활동의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막대한 빈곤층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일본 사회 내부에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보=국익론’이 마치 노동자 민중들의 이익인 것처럼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속임수는 날마다 강화되고 있는 미군기지나 일미 군사 일체화의 현실, 기지 피해 확대 속에서는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미군재편 반대를 내걸고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일본본토에서도 새롭게 기지 철거를 요구하는 투쟁이 계속되고 확산되어가고 있다. 미국에 대한 기지 제공뿐만 아니라 제공한 기지가 착착 강화되고 있고 새로운 기지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게다가 일본의 방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국익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자위대가 더욱더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기지 피해가 늘어나고 살림살이는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허용될 리가 없을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본토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미군 기지를 모두 철수시킬 민중들의 투쟁은 바로 일미동맹의 근원적 본질인 미군기지라는 존재 자체를 없앨 방향성과 힘을 갖고 있는 투쟁이다.
7. 끝으로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운동’에 대해 일본 지배층은 일본 노동자 민중에게 마이너스일 뿐인 일미동맹과 일미안보를 국익이라고 하고, 그게 전체 국민의 이익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또 국민들이 어느 정도 그 말을 믿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한반도 위기’, ‘북한의 위협’이라는 일본 정계, 재계, 언론계 등 지배층 모두가 부추기고 있는 데마고기가 바로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일소되지 않은 일본민족주의와 조선민족에 대한 배타주의가 그것을 증폭시키고 있다. 바로 일미안보 성립 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변천과 재편 강화는 끊임없이 ‘외부에서의 위협’이라는 거짓선전과 함께 이뤄져 왔다. 냉전의 해체로 이른바 ‘소련의 위협’이 사라지자, 그 다음에 대두된 것이 ‘한반도 위기와 북한의 위협’이었다. 9·11을 계기로 한 부시정권의 ‘대테러전쟁’마저 일본에서는 ‘납치는 테러다’라는 식으로 북한에 대한 적대시 문제로 확장되고 대치되어 왔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미동맹 재 재정의’나 ‘타성동맹화의 우려’가 말해진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민중 차원에서도 일미안보와 일미동맹을 다시 파악할 기회이기도 하다. 하물며 눈앞에서 강화되어가는 미군 기지나 일미 군사 일체화가 무엇보다도 한반도 전쟁에 대비하는 일로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할 때, 군사가 아닌 평화를 요구해야 하고 나라의 안전이 민중들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만이 민중들이 선택해야 할 유일한 ‘안전보장’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런 시기에 평통사가 주도적으로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운동’을 통해 안보 외교정책 차원에서 민중적 대안을 만들어 나가자는 장대한 시도가 시작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확정되고 노무현 정권 시절의 주한미군 재배치계획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운동의 이념과 사상이 한국의 노동자 민중 속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 노동자 민중들도 모두 함께 이러한 한국 민중들의 투쟁을 자기 자신의 투쟁과제로 삼아야 하며 우리는 거기에 앞장설 것이다.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과 ‘전쟁종료, 유엔군사령부 해체, 외국군 철수’를 2대 핵심과제로 내건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 운동’은 일본 노동자 민중들이 무조건 지지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책무가 있다. 그리고 이 운동과 함께 일본에서의 미군재편 반대, 미군기지 철거와 미군 총 철수 및 일미안보 폐기 투쟁을 추진하지 않으면 한국 민중의 장대한 투쟁의 의미가 반감되게 된다. 나아가서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 운동’의 발전은 일미안보조약 파기와 일미관계의 ‘보통 국가 간 관계’로의 전환(즉 ‘일미동맹’ 폐기)이라는 선택지가 갖고 있는 가능성과 전망을 열어가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우리가 강력히 지지하고 발전을 위해서 전면적으로 협력해야 할 투쟁이다. 우리는 헌법 개악을 저지하고 미군재편을 분쇄하는 투쟁과 함께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 운동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2008년 4월 1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