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환영만 할 일인가이명박 정부가 지난 7일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을 통해 한국군의 미사일 사거리를 늘렸다고 발표한 이후 국내에서는 환영과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국익과 한반도 평화 유지라는 측면에서 사거리 연장에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보의 모든 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한반도 상황에 반드시 부합하는 것이 아니며 부담과 부작용도 상당하다.
사거리 연장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탐지·타격·방어 등의 요소 가운데 타격에 해당하는 일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대응책이라면 사거리 연장은 물론 감시 체계와 미사일방어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미국이 한국의 사거리 연장 요구에 “동맹의 군사적 자산으로 대응할 수 있는 종합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대응해온 것도 미사일방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사거리 연장 외에 미사일방어 체계 참여 계획은 없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일각에서는 사거리 연장은 환영하지만 미사일방어 체계 참여는 안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하지만 다른 요소는 배제하고 사거리만 늘리는 것은 반쪽짜리 대응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모순이다. 만약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조치는 북한 미사일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대응책이 될 수 없다.
사거리 연장은 미사일방어 체계 참여 등 지속적인 군비확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끝이 아니라 한반도 안보에서 새로운 장을 여는 시작이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물론 일본에 군사적 무장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므로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 가속화를 각오해야 한다. 북한 역시 미사일·핵 능력을 강화하는 명분으로 이용할 것이 뻔해 북핵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사거리를 늘리고 미사일방어 체계에 참여해도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화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맞서 같은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갖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어려움을 인내하며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도록 노력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한 지금도 북한에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고 있으며 비핵화공동선언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거리 연장은 ‘미사일에 미사일로 대응한다’는 논리여서 그동안 정부가 유지해온 정책 기조와 다르다. 한국의 대선주자들이 모두 북한과의 대화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기 정부의 정책과도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금 거리낌없이 논의되는 ‘미사일 주권론’이 ‘핵 주권론’으로 확대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한반도 문제를 오래 다뤄온 전직 정부 관리는 “사거리 연장이 단순한 논리로는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에서는 한반도 평화 유지에 역행하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 유신모 특파원 sim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