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협정은 거의 예외 없이 불평등하지만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함께 불평등한 한미조약의 상징으로 불린다. 그 까닭을 살펴본다.
불평등한 한미소파 제5조
▲ 1999년 이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규모 추이 | |
ⓒ ⓒ통계청 e나라지표 |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한미소파 제5조는 그 자체가 한국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는 불평등한 규정이다. 한미소파 제5조는 이렇게 돼 있다. 주둔국인 한국은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는' 책임을 지고(한미소파 제5조2항) 파견국인 미국은 시설과 구역을 제외한 모든 주한미군의 유지비를 책임진다.(한미소파 제5조1항)
왜 한미소파 제5조가 불평등하다고 말할까? 그것은 어느 나라가 타국에 군대를 파견하는 경우 그 군대의 주둔비용은 시설과 구역을 포함해 파견국이 책임을 지는 것이 국제법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한미소파 제5조처럼 주둔국(한국)이 시설과 구역의 책임을 지고 파견국(미국)이 그 외 미군유지비를 책임진다고 되어있는 주둔군지위협정은 한미소파 및 미일소파(제24조)를 제외하고는 없다.
한미소파 제5조나 미일소파 제24조(구미일행정협정은 제25조)가 정해지는 과정을 보면 시설과 구역을 주둔국인 한국이나 일본이 책임지도록 된 것이 미국에 대한 종속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미일소파가 먼저 체결되고(1952년 구미일행정협정 발효, 1960년 미일소파 개정) 그 뒤인 1966년에 한미소파가 체결되었다. 일본정부는 구미일소파 협상 때(1951년) 애초 미국이 원칙적으로 주일미군 경비를 전부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점령군사령관 맥아더도 "미군이 주둔하는 다른 나라들의 경우처럼 대일 강화조약 체결 뒤에는 미국이 주일미군 경비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아게타가와 도오루, <일미행정협정의 정치사>, 1999, 210쪽) 그러나 일본이나 맥아더의 입장은 수용돼지 않았다.
시설과 구역의 제공을 포함해서 주일미군유지비의 절반을 일본이 부담해야 한다는 미국 본토(국무부)의 입장이 관철됐다. 그 결과 구미일행정협정 제25조는 미국은 제2항에서 일본이 부담하기로 한 경비를 제외한 모든 미군유지비를 책임지고(제1항), 일본은 '시설과 구역의 제공을 책임지며'(제2항 A) 그에 더해 매년 1.55억달러를 미국에 제공한다'(제2항 B)고 규정되게 되었다. 이 제2항B는 1.55억 달러를 점령비의 연장이라며 반발하는 일본 국민의 정서를 반영해 1960년 미일소파 개정 때 삭제됐다.
미국에게 일방적 이익 안기는 특별협정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해서 시설과 구역의 제공책임을 지게 되었을까? 한국은 한미소파 체결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 토지임대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런 사실은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시설과 구역의 제공을 당연한 의무로 여기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국이 시설과 구역의 무상제공에 동의한 것은 다음 사정이 작용하였다. 1953년에 서명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제4조는 '한국은 미군을 한국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할 권리를 허여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돼 있다. 마치 한국이 요청하여 미군이 주둔하는 것으로 돼 있다.
흔히 이 제4조는 미국이 요구하면 전국의 어디든 미군기지로 제공해야 되는 전토기지조항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이 조항이 기지 무상제공의 근거가 되었다. 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독소조항은 그보다 앞서 체결된 구미일 안보조약(1952년 발효)의 제1조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구 미일안보조약의 제1조는 1960년 미일안보조약개정 때 '미국은 그 군대의 일본 국내의 시설 및 사용권을 허여받는다'로 개정되었다. 한국이 시설과 구역을 무상 제공하게 된 또 하나의 배경은 미국의 대한 원조다. 즉 시설과 구역의 무상제공에 한국이 동의한 것은 미국의 군사 및 경제원조를 받는 데 대한 보상의 성격을 띠었다. 제임스 블레이커(James R. Blaker)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MAP)를 기지사용료로 간주하여 미국으로부터 기지사용료를 받는 나라에 한국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의 대한원조는 공짜가 아니라 유상원조였던 셈이다. 미국은 바로 이 대한 원조를 명분으로 한국에게 시설과 구역의 무상제공을 압박하였고 한국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무상원조는 1969년에 끝났다. 미국이 시설과 구역의 무상제공을 요구하였던 명분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미소파 제5조는 미국이 시설과 구역을 사용하는 비용도 책임져야 하는데 한국이 이를 책임지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애초에 불평등한 규정이다. 그런데 특별협정은 한국이 시설과 구역 제공의 비용에 더해 미군의 유지비까지 분담하게 함으로써 한미소파 제5조의 불평등성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시설과 구역 제공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할 한국은 보상은커녕 모든 비용을 떠맡고, 대신 미군주둔비용을 모두 책임져야할 미국은 부담은 커녕 일방적으로 이익을 누린다는 점에서 불평등한 한미조약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잠정적, 한정적 조치로서의 특별협정
▲ 빈센트 브룩스 신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이순진 합참의장이 지난 5월12일 오후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25m 떨어진 경기도 파주 JSA 경비대대 오울렛 초소를 찾아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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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한미소파 제5조의 비용분담 원칙을 잠정적으로 일부 미군 주둔경비에 한정해서 변경한다는 점에서 잠정적이고 한정적인 특례적 조치다. 특별협정이 잠정적 및 한정적 협정으로써 상정되었음은 첫 한미방위비분담 특별협정(1991년 1월 서명)에서 한국의 부담대상 항목이 '주한미군의 한국인 고용원의 고용을 위한 경비의 일부'로 한정돼 있고 유효기간도 2년으로 정해져 있는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보다 먼저 특별협정을 체결한 일본도 "본 협정(1986년 서명된 미일 방위분담 특별협정)은 일본이 주일미군 근로자의 수당 일부를 새로이 부담하는 것인 바, 대상 및 기간이 한정된 잠정적이고 특례적인 조치이며, 미일소파협정 자체의 개정이 아니라 특별협정을 통해 처리했다"(1987년2월4일 참의원)고 설명함으로써 잠정적∙한정적 협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특별협정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한미소파 제5조의 적용을 일시적이고 한정적으로 변경하는 특별조치에 해당하는 만큼 그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사업내용을 들여다보면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
방위비분담금(군사건설비)으로 지어진 시설들에는 교회, 교회교육시설, 세차시설, 운전연습장 시설공사, 유아보육센터시설, 초호화 미군숙소, 미2사단기념관 건립, 용산고가도로, 식당 인테리어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건설사업은 주한미군의 임무수행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적은 시설들이며 특별협정을 맺어서까지 미군을 지원해야 할 사업이라 할 수 없다. 이월되거나 집행되지 않은 방위비분담금이 매년 2〜3천억 원씩 발생한다.
이것 또한 특별협정을 맺어서까지 한국이 자금지원에 나서야만 할 정도로 주한미군에 긴급한 자금소요가 있다고 볼 수 없게 한다. 특별협정이 1991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무려 26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사실상 일반법처럼 시행되고 있는 점도 특별협정으로서의 임시적 틀을 크게 뛰어넘는 것이다.
한미소파의 기본 틀을 부정하는 특별협정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한미소파 제5조의 기본 틀 위에서 성립한 법이다. 즉 한국이 시설과 구역을, 미국이 주한미군의 운영유지비를 책임진다는 기본 원칙(틀)을 유지하되 이를 부분적으로 조정한다는 의미다.
만약 특별협정이 한미소파 5조를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면 한국이 시설과 구역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책임도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특별협정은 한미소파 제5조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의 부분적인 조정인 것이지 전면적으로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협정에 의해 한국의 지원 대상이 되는 주한미군 경비의 범위가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에서 시작하여 점차 군사건설비와 군수지원비 등 주한미군의 운영비 전반으로 무제한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군사건설사업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
또 군수지원사업도 그 지원항목이 무려 10가지에 이를 정도로 포괄적이다. 이로써 미국이 주한미군의 운영비를 책임지도록 규정한 한미소파 제5조1항은 사실상 사문화되고 한국이 미군의 운영비를 거의 전부 책임지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즉 한미소파 제5조의 기본 틀 자체가 붕괴된 셈이다. 일본도 미일소파 제24조에 대한 특별조치협정을 미국과 맺었지만 지원사업의 대상은 주일미군 고용 일본인 근로자 인건비와 광열수도비(공공요금), 미군훈련이전비(일본측 요구로 미군훈련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실시하는 경우 추가되는 훈련비용의 지원)에 한정돼 있다.
미일 특별협정의 경우에는 군사건설비와 군수지원비 항목이 없다. 한미 특별협정과 달리 미일 특별협정의 경우 일본이 시설과 구역을 책임지고 미국은 미군운영비를 책임진다는 미일소파 24조의 기본 틀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법적으로 운용되는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어디까지나 주한미군의 운영유지비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다. 따라서 방위비분담금은 그 지원대상이 주한미군에 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의 장비가 아닌 미 태평양 공군의 탄약(3.4만톤)의 저장관리, 미 태평양사령부 소속 항공기의 정비에도 지급된다.
이것은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이 초법적으로 운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이런 초법적 운용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의 모법이라 할 수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배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을 한국방어에 한정하고 있으며 이런 목적을 위해서만 한국은 주한미군을 지원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러나 미 태평양 공군의 탄약이나 미 태평양사령부 소속 항공기는 중국 견제 등 한국방어를 넘어서는 미군의 지역 임무수행을 위한 전력이다. 이 점에서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역행한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어디까지나 한미소파 제5조에 국한하여 취해진 특별협정이다. 따라서 이 특별협정은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다른 한미간 조약 또는 협정을 위배해서 운용돼서는 안 됨은 물론이고 한미소파의 다른 조항도 위배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미2사단기지 이전에 관한 협정인 LPP(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을 무시하고 초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LPP협정에 따르면 기지이전요구자 비용부담 원칙에 따라 미국이 이전을 요구한 기지의 이전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은 방위비분담금(군사건설비)에서 이 미2사단기지 이전비용(미국측 비용)의 50% 이상을 충당하고 있다. 이는 LPP협정에 위배된 방위비분담금의 운용이다.
특별협정이 우선한다는 주장은 성립 안돼
한미소파 제5조 자체가 삭제되지 않는 이상은 한미소파 제5조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서로 다툰다. 이 경우 특별협정이 신법이므로 더 우선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이 우선한다는 주장을 하려면 특별협정이 최소한 특별협정으로서의 틀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데 지금의 특별협정은 이미 특별협정으로서의 틀을 크게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특별협정은 다른 한미조약을 위반해 운용되고 있다. 특별협정은 그 자체로나 운용상으로나 적법성을 상실함으로써 한미소파 제5조에 우선한다는 주장을 할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주한미군 운영비를 한국이 부담하는 불공정성, 잠정적 및 한정적인 특례적 협정의 기본 틀로부터의 일탈,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LPP협정 등을 위배한 방위비분담금의 초법적인 운용 등의 문제는 우리의 주권과 국익을 침해하는 문제이고 법적 정의에 관한 문제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의 초법적 운용을 금지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협정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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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방위비분담금을 미국에 주는 법적 근거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이 법적인 측면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에 대한 부담이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법적인 정의라는 측면에서도 방위비분담금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