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17] ‘전략적 유연성’ 허용에 따른 노무현 대통령 면담 요청서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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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유연성’ 허용에 따른 노무현 대통령 면담 요청서
우리는 “미국에 할말을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당선자 시절 노대통령 발언에서 불평등한 한미동맹의 청산과 호혜 평등한 한미관계 수립이라는 비원이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또한 강대국의 패권경쟁에 휘말린 100년 전 역사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역사인식과 진영구도의 해소를 통한 동북아 공동체 건설 발언을 접하면서 한반도의 냉전적 질서가 해소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발언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면, 노 대통령께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이정표로 세우고, 용산/LPP협상,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미국의 집요한 요구를 단호히 뿌리치고 한미상호방위조약, 한미소파의 전면 개폐와 작전통제권 환수로 ‘자주국가로서의 체모’를 갖추는 한편 북한과의 협력 하에 동북아 정세를 주동적으로 타개해나갈 위상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자안보체제 수립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올린 6자회담 베이징 공동성명은 ‘경주 정상선언’에 의해 빛이 바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 허용한 ‘고위전략대화 공동성명(이하 공동성명)’에 의해 결정적으로 발목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용산/LPP협정과 함께 지난 3년간의 대미협상 완결판인 공동성명은 참여정부가 주한미군의 아태기동군화와 한미동맹의 침략적 재편으로 동북아 패권을 노리는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고스란히 포섭되었음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공동성명은 동북아 안보지형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개입을 강한 톤으로 반대(2004.11 미국AWC 연설, 2005. 3 공사졸업식 연설)한데 이어 2005.10.22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도 한국 측 입장이 대부분 관철되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한국의 입장이 관철되기는커녕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이에 대해 “동북아 분쟁개입을 위한 발진기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입장을 전제”로 한 합의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이번 성명은 동북아 이외 지역은 물론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도 전면 허용하고 있습니다. 설령 이종석 장관의 주장대로 그런 (이면)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병 사례에서 보듯 감축이나 순환 배치 등의 명분을 내세워 다른 지역을 경유해 얼마든지 동북아 분쟁에 개입할 수 있으므로 그것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 허용한 것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대통령께서 그토록 우려한 ‘국가의 안위와 민족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동북아에서의 진영간 대결구도의 강화, 곧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으로 대중국 포위전선의 구축을 노리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그대로 허용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둘째, 대통령께서는 동북아 전략구도에 대해 ‘진영간 대결구도의 해소와 동북아 공동체 질서의 형성’을 주장해왔습니다.
한미동맹의 적대성을 제거하는 것은 대통령께서 설명한 “동북아에 EU와 같은 공동체가 형성되고, 평화와 공존, 공영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미국이 여기에 한축으로 참여해 협력 질서”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입니다.
노대통령의 이런 구상과 달리 공동성명은 “동북아 안보협력체제 형성에 기여하는 강력한 한미동맹 관계를 유지”하기로 함으로써 미국의 패권이 보장되는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를 합의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미국에 대한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야 동북아 질서에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공식적 사망선고이자 동북아 균형자론을 후퇴시키려는 미국의 집요한 공작이 관철된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 일정에 오름에 따라 정전체제에 기초해 성립된 한미동맹을 해소해 나가는 것은 역사적, 국제법적 순리입니다.
공동성명에서 한미당국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달리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한 한반도 평화제제 수립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영구주둔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른바 ‘미래 한미동맹 비전 연구’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 우려가 높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우려는 제6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를 앞두고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재정의 하는 내용을 담은 한미동맹미래비전에 관한 합의를 미국이 강요하는데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북한 붕괴와 남한주도의 흡수통일을 전제로 남북관계가 평화공존, 통일 단계로 발전하는 경우에도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한미동맹을 유지할 것에 대한 2002년 ‘미래 한미동맹 공동협의’ 결과 보고서는 우리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2002년 한미군사당국의 보고서는 FOTA에 이어 SPI에서 논의 중인 한미동맹 미래비전의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동성명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영구주둔으로 한반도 평화제체 수립과 통일과정을 자신의 헤게모니 하에 관리하고 한반도를 자국의 동북아 패권 전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미국의 의도를 외교안보당국이 그대로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넷째, 노대통령께서는 작전통제권 환수를 통한 자주군대로 거듭날 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공동성명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해버린 것은 작전통제권 환수협상전략에 지극히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작전범위의 확대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동북아)광역 사령부 창설과 이에 한국군의 편입을 노리는 미국의 입장과 논리를 훨씬 강화시켜 줄 뿐입니다. ‘작전통제권 환수 협상이 한미연합지휘관계 연구의 일부’임을 재확인한 제5차 SPI 결과를 보더라도 이러한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작전통제권 환수가 한미연합지휘관계 연구의 일부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광역사령부 등 새로운 한미연합지휘체계를 전제로 작전통제권 반환 논의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작전통제권 환수로 자주국가로서의 체모를 갖추어 나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다신 한번 굴절과 왜곡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기여하는 호혜 평등한 한미관계를 염원했던 우리 국민들의 염원이 실현되기는커녕 오히려 종속적 한미동맹의 퇴행적 전환이 본격화되는 우려스런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핵심에 반기문, 차영구, 안광찬, 이종석, 위성락, 김숙, 서주석 등 참여정부의 핵심 외교안보책임자들이 있음을 주목합니다.
첫째, 용산/LPP협상은 얼마든지 우리의 국익에 맞게, 종속적 한미동맹의 청산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에서 협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즉 용산/LPP협상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정책적 요구에 따라 재개된 것인 만큼 우리가 자주국방의 실현, 즉 작전통제권 환수, 기존 기지로의 이전, 주한미군 주둔 경비지원 협정 및 불평등한 한미소파의 전면개폐를 관철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용산기지 이전이 우리 정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므로 이전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한다는 논리 아래 이전비용 총액의 한계조차 정해지지 않아 위헌/불법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용산/LPP협상을 서둘러 매듭짓고 말았습니다.
민정수석실과 국정상황실 보고서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이들은 용산 협상이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따른 것임을 애써 외면하고 시종 수동적, 굴종적인 대미의존적 자세로 협상에 임했으며, 심지어 용산 협상에 대한 국민적 비난여론을 모면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문제를 덮어두고 먼저 용산협상을 마무리하자고 미국과 밀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둘째, 전략적 유연성이 미국의 핵심적인 군사전략의 하나임을 고려할 때 이를 막기가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종속적 한미동맹의 유지에 매달리지만 않는다면,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 압력에 굴복해 주한미군의 장기 주둔에 매달리지 않는다면, 비록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지만 대한민국으로 한정된 그 적용범위를 지킨다면, 얼마든지 이를 저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이 일미안보조약상 주일미군의 활동범위가 극동으로 제한되어 있는 점을 들어 미1군단 사령부의 관할 범위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려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한 사례에서도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기문, 이종석 등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허용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된다는 정부일각의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한미동맹에 대한 논란을 촉발한다는 구실아래 한미당국의 ‘정치적 선언’ 형태로 합의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국민여론에 기초해 주한미군의 아태침략군화를 저지하기는커녕 이를 피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관철하고자 한 미국의 협상전략의 대변자, 길잡이로 전락했음을 뜻합니다.
셋째, 반기문, 이종석 등은 위성락 당시 북미국장이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외교 각서’를 미국 측과 교환했음을 알면서도 이를 1년 이상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성락을 전략적 유연성 담당 NSC 조정관으로, 이어서 동 건 담당 주미공사로 승진 발령시켰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위로는 대통령을 속이고 아래로는 잘못을 범한 위성락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통솔권과 공직기강을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기문은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이유를 ‘소소한 행정적인 절차 문제’이기 때문이라 밝혔고(프레시안 2006.2.8) 이종석은 ‘위성락을 통솔하기 위해 재량을 판단할 수 있는 문제’(국정상황실 보고서 2005. 4. 8)라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그들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관념적으로만 “국가안보와 민족의 운명”에 관한 문제로 보고 실제로는 ‘소소한 행정절차’, ‘외교부 관리 통솔’이라는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협상에 임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통령께서도 참담한 실패로 끝난 대미협상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참여정부가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의 대변자로 전락한 최종적인 책임은 노대통령에게 있다고 판단합니다.
용산협상,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협상전략과 정책을 총괄하던 반기문, 이종석 등에 대한 철저한 책임추궁을 통해 외교안보정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지휘계통을 바로 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을 덮어 둔 채 이들 비호하는데 급급한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행태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조사한 2003년 11월 공직기강비서실의 건의조치 즉 “용산기지 이전이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에 따른 주한미군의 재배치에 연유하고 있는 만큼, 이전비용을 원칙적으로 한국이 부담한다는 논리 재검토”, “협상팀의 전면적 재편과 기지 이전 필요성과 협상내용을 원점에서 재검토”, “관련자 문책 및 외통부, 국방부 및 NSC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개편“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께서 대미의존적 자세와 관행에 물든, 미국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외교안보실무책임자들을 그대로 둔 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미국의 집요한 의도를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향후 통일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할 당국자들은 노대통령께서 주창한 동북아 균형자론과 평화번영정책의 테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차관급 전략대화와 한미안보연례협의회(SCM)를 통한 공동성명의 구체화, 곧 한미안보공동선언을 통한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동맹의 침략적 재편의 완성을 향해 치닫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동맹의 침략적 재편과 관련된 방향이 더 이상 굳어지기 전에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헌법준수의 의무’에 따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헌법 제5조의 평화주의 원칙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어긋나는 불법임을 천명하고, 이의 원천무효를 선언함으로써 정세의 물꼬를 다시 6자회담 공동성명에 의거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동북아 평화와 공존공영의 방향으로 터나갈 것을 간절히 촉구합니다.
아울러 반기문, 차영구, 안광찬, 이종석, 위성락, 서주석, 김숙 등에 대한 철저한 책임 추궁과 엄중한 문책으로 통일외교안보정책에 지휘계통을 바로 세울 것을 요청 드립니다.
우리는 이 길만이 여중생 촛불투쟁으로 촉발된 호혜 평등한 한미관계 수립을 향한 국민적 여망에 힘입어 당선된 노대통령에게 맡겨진 역사적 소임을 다하는 길이라 확신하며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이와 같은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고, 이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기를 원합니다.
부디 우리의 면담 요청에 응해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2006년 2월 16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대표 : 문규현, 홍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