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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19 16:39 ㅣ최종 업데이트 09.12.19 16:39 |
김도균(capa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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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환경정화 없이 반환되는 미군기지들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있다. |
ⓒ 녹색연합 |
16일 오후,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황량한 공터엔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회색 건물들 사이에서는 바싹 마른 잡초들만 바람을 맞고 있었다.
경기도 파주시 선유리 문산 제일고등학교 부지, 이곳은 지난 50여 년간 미 제2사단 예하 506보병연대 1대대와 시설공병단이 주둔하고 있던 '캠프 자이언트'의 일부다. 2006년 7월 기지 관리권을 미군으로부터 넘겨받은 국방부는 이 땅을 징발 해제, 원소유주였던 경기도교육청(아래 도교육청)에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해 조사 결과 전체 부지의 30%인 2만8339㎡가 유류에, 170㎡는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땅을 돌려주는 대신 오염된 환경을 복원하는 데 드는 비용은 도교육청이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문제는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도교육청은 부지 내 60여 동의 버려진 건물들을 철거하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만 20억 원, 기름과 중금속에 오염된 땅을 원상으로 복구하는 데는 약 1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땅의 공시지가가 115억2100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도교육청 처지에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과 관리처분법 등을 근거로 '경기도교육청 자체 비용으로 오염을 치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불법으로 인한 환경오염까지 치유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지난달 29일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도교육청이 국가를 상대로 법정 다툼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도교육청은 패소하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청구할 방침이다.
늘어만 가는 미군 기지 환경 치유 비용, 애매모호한 규정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반환되는 미군 기지의 환경 치유 책임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지난 2002년 한미 간에 체결된 '연합토지관리계획'(LPP) 등으로 우리 정부가 반환 받기로 한 미군 기지는 모두 80여 개. 이 중 이미 40개를 돌려받았고, 앞으로 40여 개를 추가로 돌려받을 예정이다.
1966년에 체결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는 환경보호에 대한 조항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 매향리 오폭 사고와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을 계기로 미군 기지에 대한 환경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국민들의 날선 비판에 직면한 정부는 미국과 SOFA 개정 협상을 벌여 환경조항을 신설했다. 이는 주한미군이 한국 정부의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해야 한다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2003년 5월 'SOFA 환경정보 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아래 부속서 A)를 체결하여 "반환되는 시설과 부지에 대하여는 미국 측의 부담으로, 미국 측에 공여되는 시설과 부지에 대하여는 한국의 비용으로"라는 원칙을 마련했다. 당시 정부는 부속서 A를 통해 반환될 미군 기지는 모두 미군이 치유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환경의 치유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미군 측이 해외주둔 미군기지에 적용되는 미 국방부 내부 지침인 'KISE' 기준을 주장하고 나선 것. KISE란 '인간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뜻하는 영문 약자다. 즉 미군은 '이미 널리 알려진 급박하고 실질적인 환경오염'만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 주둔 미군의 공통 지침이라는 이 KISE의 구체적 개념이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또 있다. 반환 미군 기지의 환경오염 정도가 KISE에 해당하는지, 해당하지 않는지를 주한미군 사령관이 재량껏 판단하게 한 것이다.
주한미군은 정부와 협상과정에서 반환할 미군 기지가 심각한 오염인 KISE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하면서도, 근거자료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치유기준에 관한 협의에 진척이 없자 2005년 9월 국방부는 이 문제를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 의제로 올렸고, 국내법 기준으로 정화해야 한다는 환경부의 의견은 무시됐다.
그 후 명확한 환경 치유 기준에 대해 합의하지 않은 채 미군 기지들이 반환되기 시작했다. 반환된 미군 기지들은 부지 활용을 위해 국내법 기준으로 정화해야 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2007년 국방부와 환경부는 이미 반환된 23개 미군기지 중 한국군이 계속 사용할 6곳을 제외한 17개 기지에 대한 정화 비용으로 최고 1197억 원이 들 것으로 국회에 보고했다.
그런데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는 '정부가 추산한 정화 비용은 토양오염만을 중심으로 한 것이고, 지하수 오염 등을 고려하면 최고 2조~15조 원의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실제 정화 비용은 해가 갈수록 증가했다. 2008년 8월에 공개된 복원설계 및 정화를 위한 비용은 1907억 원. 그로부터 석 달 뒤 실제로 알려진 것보다 오염지역이 늘어나자 2500억 원으로, 여기에 국방부가 추가 발주한 시설 철거 및 폐기물 처리비 704억 원을 더하자 약 3200억 원으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국방부는 2009년에는 반환 미군 기지 환경조사 및 치유예산으로 342억 원을 배정했고, 내년에는 이보다 137% 증가한 812억 원을 책정해 놓은 상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오염 원인자 부담 원칙', 주한미군에겐 먼 이야기
하지만 환경·시민단체 등은 반환된 미군 기지의 환경오염을 한국 정부 비용으로 치유하는 것은 '한미 간 협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불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환된 미군 기지의 환경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쓰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국방부는 관련 예산 편성의 근거로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 및 동법 시행령'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반환 미군 기지 오염치유에 대한 한미 사이의 책임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반환미군기지 양수인 또는 매수인과 국방부 장관 사이의 오염제거 책임을 규정한 법에 불과하다는 것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또 국방부가 애초 제시한 환경 치유비용이 국방부 자체의 족쇄가 되어 부실 정화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오염실태가 추가로 드러남에 따라 치유비용도 증가하는 것이 당연한데, 국방부에서는 이미 책정된 예산 내에서 사업을 실행하려 하고 있다고 녹색연합은 지적했다.
무엇보다 현재 환경부가 미국과 진행하는 협상 결과에 따라 2009년에 시작된 70여 개의 (반환) 공여구역 주변지역 오염 치유 비용을 한미 양측이 어떻게 부담할지 좌우된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리부터 오염치유 비용을 한국 정부가 떠맡음으로써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 환경·시민단체들의 걱정이다.
환경 관련 국제법과 국내법이 규정하고 있는 '오염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르면 오염자가 오염 방지 및 제거 비용을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환경 관련 국제문서, 조약, 대부분 국가들의 국내 환경 정책 및 환경규정 등에서 오염 비용 부담에 관한 기본원칙으로 채택되고 있다.
미국 국내법도 마찬가지다. 녹색연합 황민혁 간사는 "미국 정부는 자국 내에 위치한 미군 기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하고 철저한 환경 관리와 정화 조치를 해오고 있고, 이를 위해 매년 수조 원대의 예산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역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놓고 보더라도 KISE 적용을 고집하는 주한미군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황 간사의 지적이다. 즉 독일과 미국 정부 간에 체결된 'NATO-SOFA 보충협정'은 독일 국내 환경법 기준에 따라 (미군 기지의) 오염을 평가하고 미군이 복원비용을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이율배반적인 미국의 환경기준을 탓하기 전에 한국 정부 스스로 국민의 혈세가 반환 미군 기지의 환경 치유에 쓰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환경·시민단체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예산 예비심사검토보고서도 "환경 치유는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 정화사업이므로 원인자인 주한미군 측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한미 간의 협상 결과 한국측이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관련부처와 협의하여 이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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