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2006년 8월 평화누리통일누리 제62호::: <특별기고> 미군 재편과 일본 보수체제의 군사화 --- 코게츠 아츠시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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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미군 재편과 일본 보수체제의 군사화

코케츠 아츠시 교수

코케츠 아츠시 교수는 일본 야마구치 대학에서 일본 근현대정치군사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평통사 부설 연구소인 평화통일연구소 해외연구위원입니다. 글의 내용은 평통사 및 평화통일연구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으며, 원문 내용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용어나 문장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 편집자 주  

 

1. 들어가며

이 글은 주로 주로 군사문제로 논의되어온 미군재편을 전후(戰後) 일본 국가 재편과 보수재편이라는 측면에서 논하려고 한다.

미군재편은 단순히 미군의 기지이전과 전력재배치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미군재편이 일본 및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정치질서에 새로운 군사적 긴장을 가져오는 군사주의 흐름을 야기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미군재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 현저하고 나타나고 있으며, 이미 잠재화하고 있는 일본의 <군사화>를 재촉한다.

일미 군사 동맹 노선이 심화됨에 따라 일본의 「임전국가」1)화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한 의미로 미군재편은 일본 국가 재편에 깊게 결부된 문제가 아닐까하는 것이 소론(小論) 문제의식이다.

또한 미군재편은 일본자위대 조직재편을 재촉하는 것 이상으로 <군사화>를 키워드로 한 정치재편을 초래한다. 기존 양국간 조약인 일미안보조약의 성격 변화에 따라 「전수방위」를 기조로 한 국토방위형의 자위대 역할이 미군과의 일체화 속에서 침공형 「군대」로서의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헌법 개악 문제와 관련해서도 전후 일본 보수체제의 대담한 질적 변화를 노골적으로 꾀하는 오늘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한다.

일본의 정치체제는 미군재편의 실시와 일미안보 변용에 따라 평화사회에서 군사사회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오늘의 일본 언론계와 여론의 현저한 보수화 경향이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젠 일미안보 재 정의에서 신가이드라인(guideline) 합의를 시작으로 일련의 유사법제 제정이라는 정치과정을 밟아 온 일본을 「유사체제국가」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있다. 나아가 이제야말로 사실상 전쟁발동을 그만두지 않는 군사주의로 기울어 그야말로 <임전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임전국가> 일본의 등장을 결정짓는 위상으로서의 미군재편을 고찰하도록 한다.

 

2. 미군 재편의 목적-미 군사전략의 재검토와 전력 재배치

지금, 왜 미군 재편일까 ?

미군재편은 미군 「전력 전체에 걸친 재편」(『QDR』 2001년판) 목표가 부시 정권하에 「재편성(Transformation)」이라는 이름으로 표면화 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이것을 「미군재편」이라고 말한다. 미군재편을 일본 언론은 「재일미군 재배치」 수준으로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포스트 냉전시대에 있어서 미 군사 전략의 근본적인 재검토와 그에 대응하는 미 전력 전체의 재배치를 의미한다.

미군 당국은 미군재편의 목적을 아래와 같이 들고 있다. ① 미국본토와 중요 작전지역의 기지방위 ② 상대에 안전한 도피처를 주지 않는 것 ③ 진입이 거부된 지역에서는 능력을 유지 방위하는 것 ④ 여러 부대와 그 작전을 통합하기 위해 정보기술의 효과를 높이는 것 ⑤ 정보 네트워크를 공격에서 방위로 진전시키는 것 ⑥ 우주작전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미군본토 방위를 지상명제로 하는 기지기능의 정리 통합, 「테러리스트」 또는 「테러 지원국가」에 철저공격, 또는 해체, 군사혁명과 군의 초근대화 노선의 견지, 전장(Theater)을 우주공간까지 확대할 경우를 대비한 능력의 정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의 미군재편이 왜 이 시점에서 진전되고 있는 것일까 ?

미소 냉전시대에 미국은, 서측 진영의 리더라는 대의명분 하에 실상은 미국 자신의 국익을 확보해 왔다. 반공주의도 공산주의에 대항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만이 아닌 공산주의 국가를 상대로 한 미국 자본주의 확대를 위한 말 그대로 실리적 문제인 것이었다.

일본을 포함해 서측 동맹제국에 반공주의를 주입하여 반공진영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를 위한 자원과 시장 확보가 궁극의 목표였던 것이다. 그 일환으로 일본은 75,000명으로 구성된 경찰예비대를 창설(1950년 8월)하고, 재군비와 일미안보조약을 체결(1951년 9월)하였다. 따라서 재군비와 일미안보는 냉전구조라는 국제군사 질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익의 유지와 확대라는 미국 자본주의 요청에서 결과 된 것이었다. 순전히 냉전구조와 반공주의 소산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전후 미국 자본주의 이익의 유지와 확대라는 노선을 담보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력은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미국의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와 재정적자의 심각화)가 악화됨에 따라 군사력은 양적 삭감을 강요받게 된다. 군사력의 역할과 기대에 응하기 위해 미 군부가 내세운 방책이 바로 미군재편에 따른 양적 삭감과 질적 강화였다.

 

미국의 신 군사전략

소연방 붕괴에 따른 냉전 구조의 종식에 의해 미국은 일국 패권주의·단독행동주의(일방주의)를 채용한다. 단번에 이전 소련의 패권지역을 포함한 시장과 자원공급지를 확보한 미국은 「개입과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전략을 수립하였다. 세계 전 지역이 미국 자본주의의 개입 대상, 이익의 확대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과의 군사적 제휴를 더욱 강화하여 미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저해할 대상지역과 국가를 배제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91년 1월에 개시한 걸프 전쟁이었다. 여기서 자본주의 이익의 확대를 엿본 여러나라가 미국을 중심으로 다국적군을 편성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지상주의적 글로벌 전선에 대한 반항이 머지않아 무차별 테러로 개시된다. 그것이 2001년 9월 11월 세계를 놀라게 한 「동시다발 테러사건」이었다.

미국은 그 직후에 발표한 『4 개 년 전략재검토(QDR)』에서 「미국 군사력의 목적은 미국 국익을 옹호 진전하는 것이며 만약 억지가 실패한 경우에는 국익에 대한 위협을 결정적으로 타파하는 것이다」(2001년 9월 30일 공표)라며 미국의 국익 옹호와 확충을 위해서는 단독행동주의(선제공격)도 불사하는 패권주의의 관철을 적나라하게 표명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국익」이 실제로는 「기업이익」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지만, 「국익」이라는 개념으로 자본주의 문제를 국가 문제로 바꿔치기 한 것이다. 미국은 소련에 대해서는 새로운 위협 설정을 하고 중동에서 동아시아 지역에 이르는 거대한 자원 체재지를 「군사적 경쟁자」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는 「불안정한 호(弧)」로 위치지어 군사력 전개의 대상지역으로 설정한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을 「군사적 경쟁자」로 지목하고, 핵 전쟁능력의 향상과 미사일 방위(MD)를 군사적 대응구상으로 내세웠다.

군사력을 주체로 하는 질서 재구축을 신 냉전구조로 일컬어도 좋지만 구 냉전구조와 신 냉전 구조의 공통성은 모두 미국 자본주의의 유지와 확대를 위해 군사전략이다. 전자가 표면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후자가 반미 이데올로기를 설득하는 국가와 조직을 대상으로 하면서 그 구체적 표적은 다르지만, 양자는 미국이 군사력이라는 폭력을 동원한 미국 자본주의의 (기업의) 이익의 유지 확대를 꾀한다는 점에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신 군사전략 또는 신 냉전구조는 올해 2월에 공표한 최신 『QDR』 「미국은 장기전에 들어간 국가다」라는 자기규정에서 더욱 명확해 진다. 사실상 21세기를 “전쟁세기”로 보는 미국은 군사 수법으로는 「선제공격전략」의 계속적 채용을 확정하였다. 그 결과가 소위 미군재편에 따른 세계 동시적 선제공격체제의 정비인 것이다.

 

미군 재편에 따라서 미 군사 전력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

미국은 「동시다발 테러 사건」을 구실로 2003년 3월에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을 개시하면서 같은 해 7월 미국 육군 해외 파병 병력 232,759명중 약 14만명의 병력을 이라크 투입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베트남화」는 분명하고, 사실상 이라크 점령 계획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포스트 냉전시대에 있어서 이미 병력 수의 절대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였다. 미국은 이 만성적 병력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2개국 국제사단」 편성을 구상하지만 실패로 끝났다.

2006년 6월까지 대략 2,600여명의 미군이 전사했지만 미국은 장비를 하이테크화 한 것 이상으로 병력의 효율적 운용이라는 문제에서 해답을 서둘러 내놨다. 그 연장 상에 미군재편 문제가 있다.

소련이라는 구 냉전 구조의 종언에 따른 거대한 정규 전역(theater)의 축소라는 외재적 요인과 경제력 수준의 상대적 저하와 병력 수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내재적 요인을 근거로 하면서 부상한 것이 미군재편이고, 미국은 새로운 냉전구조의 대응하는 전력의 재구축이라는 과제로 일본을 재 정의하는 방침을 내세웠다. 일미 양 정부는 일미안보 재 정의를 통해 안보 한계성을 돌파하면서 안보를 아시아 및 세계 전역으로 확대하는 <안보재검토>를 협의하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당한 동맹국이었다. 일본의 「생각하는 예산」에 따라 병력과 기지 유지비가 본국에 전개 배치하는 비용보다도 저렴하다는 사실은 미국에 있어서는 유리한 점이었다. 그 결과 주한미군의 삭감과 주일미군의 실질적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일본의 병력집중화는 불가피했다. 전력·기동유격군화를 서두르는 미군에 있어서 근거지, 경유지, 지원기지, 전선부대, 사령부 기능을 전부 담당할 수 있는 주일미군기지의 기능강화는 매우 절박한 과제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 본토에서 육군 제 1군단 사령부(미 워싱턴주)가 카나가와현 자마기지로 옮겨와 아시아 미군을 지휘하게 되고, 또 주일미군사령부를 겸하고 있는 제 5항공군사령부(요코타 기지)가 괌 기지로 이전하는 등 이제까지 없던 대담한 병력재배치가 계획되었다.

이제 이 문제는 일본정치와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3. 심화되는 일미군사공동체제의 장래

 

미군 재편과 일본 관계

올해 5월 1일 일미 안보협의위원회는 미군재편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최종보고서」와 미군재편과 일본과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공동문서」(Joint Statement)를 함께 공표하였다. 「공동문서」에는 미군재편의 목표와 일미동맹의 강화가 수차례 강조되고 있다. 예를 들면 「공동문서」에는 일미양국이 「변화하는 지역 및 세계 안전보장환경에 있어 확고한 동맹관계를 확보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일본이 일본 방위를 주목적으로 하는 일미안보조약을 근거로 하면서 「세계안전보장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동맹관계를 강화하자고 하는 것이다. 즉 일미안보 대상지역을 단번에 세계로 끌어올리고 여기서 말하는 안전보장 환경에 맞춰 미국이 표방하는 군사전략에 따라 대응하려고 결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군재편은 이러한 일미의 새로운 대처를 위한 작업으로 「재편 실시에 따른 동맹관계에 있어서의 협력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된다. 「새로운 단계」라고 하는 종래 일미군사협력관계에서 보다 심화된 단계를 의미하는데, 군사공동체제의 구축, 요컨대 미국이 실행할 선제공격행동에도 일본은 전면적으로 지원하게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미국 기준에 따라 안전보장환경을 흩뜨리는 대상을 차출, 「환경 보전」을 위해서 군사발동을 정당화할 논리가 통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란, 북조선, 수단 등은 미국이 말하는 “미숙한 자”라고 인정 하에, 경우에 따라 선제공격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동시다발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2001년 10월) 및 이라크(2003년 3월)에 선제공격을 강행하였고, 이 선제공격전략에 동맹국인 일본 및 영국을 끌어들였다. 그 외에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에 선제공격 가능성 태세를 취하고 있다.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일미관계에서 자위대는 해당지역의 파병이 검토되고 있다. 미국의 선제공격 전략에 일본 자위대가 완전히  발 맞추고 있는 꼴이다.

 

자위대는 침공군 역할을 떠맡는가?

현재 주목되는 자위대 중앙즉응집단의 창설은 미국의 선제공격전략에 문자 그대로 “즉응”가능한 부대로 창설하려고 한다. 중앙즉응집단은 장비와 편성 면에서 최정예 해외출격용 전투부대이다. 당초 사이다마현의 아사카 기지에 주둔 예정이었던 이 부대는 미군재편과 연동, 미 제 1군단 사령부를 따라  캠프 자마 배치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중앙즉응집단은 작전운용사령부(UEx)로서의 기능을 하는 미국 제 1군단 사령부의 지휘 하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즉 자위대 중앙즉응집단이 사실상 UEx 의 “직할” 전투부대(UA)로 위치 짓게 되는 것이다.

중앙즉응집단은 표면상으로는 방위청장관의 직할부대로 제 1공정단(습지야)과 제 1헬리콥터사단(키사라츠)을 기간부대로 하는 기동력과 공격력을 담보할 부대다. 이 부대는 해외파병에 관한 계획, 훈련, 지휘를 일원적으로 운용할 준비를 세우고 있기에, 캠프 자마 UEx의 통합운용은 어떤 의미로는 자연스런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일본판 해병대의 본격적인 등장을 의미하며, 각종 부대의 혼합 부대로 이라크에 파병된 육상 자위대와는 근본적으로 그 작전 목표가 다르다. 결국 진짜 전투부대로써의 역할이 집중적으로 요구되는 부대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자위대가 침공군로서의 역할을 떠맡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중앙즉응집단을 포함 자위대의 역할을 주일·주한미군 재편과 관련하여 보면, 이번 미군재편에서 특히 중대한 문제는 주일·주한미군의 일체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과 일미동맹을 기능적 분업 대신, 대중국 전략 구축과 북한 붕괴전략의 채용에 불가결한 「전쟁 일상화 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GPR 구상으로는 해외기지를 1급기지, 2급기지, 3급기지, 4급기지 등 4등급으로 재편하고, 재일미군 기지는 1급 기지(PPH), 재한미군기지는 1급과 2급(MOB) 중간인 1.5급기지로 재편할 예정이다. 오키나와 현의 카슈노우 기지와 야마구찌 현의 이와쿠니 기지는 1급 기지로 미국의 대중국 군사전략 제 1선 정면기지로 그 기능이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에 더해 태평양방면의 미국군 지휘계통 대 정비를 전제로, 미국 제 1군단 자마 이동, 미국군과 자위대의 육해공 지휘의 일원화, 나아가 요코다 기지를 대중국과 대북한만이 아닌, 전 세계를 사정거리로 하는 일원적 지휘센타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주한미군의 재배치가 진행 중이다. 평택에 주한미군 기지를 집결, 주한미군은 평택기지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기지 라인과 대구·부산의 수송권으로 그 기능이 분화된다. 대북 침공의 전선을 담당하는 육상부대인 미 2사단의 평택이전계획은 새로운 전쟁계획의 증명이다. 기존의 남북분단선 근접 지역에 배치된 전력이였던 2사단의 평택이전이 실현되면 자유롭게 기동 가능한 대북 침공부대로서의 진지(陣地)를 갖게 된다. 즉 자유롭게 침공기회를 선택 가능한 포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기지로의 이전 사례에서 보듯 기지 이전이 곧 주한미군 기지 기능의 저하를 의미하지 않는다.

주한미군 기지의 재배치가 사실상 기지 기능과 전력 향상을 목적으로 한 기지 기능 강화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주한미군 37,000명 중 12,500명이 감축되는 것은 결코 삭감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북 붕괴와 대중국 포위의 전력 이전(1.5기지 구상)과 실질적인 기지 기능 강화 및 전력 확대를 목표로 한 것이다. 덧붙여서 말하면 주한미군 전력의 재구성에 따라 한국에서는 중국을 향한 서해안을 따라(수원, 오산, 평택, 군산, 광주) MD 지상 발사 미사일인 패트리어트 미사일(PAC III) 64기가 배치될 예정이다. 한반도가 중국선제공격의 기지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우위전략」에 호응하는 일본

중국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전력재배치의 기저에는, 미국의 「군사우위전략」(military supremacy strategy)으로 표현된 군사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군사우위전략」이 선제공격전략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로, 정치외교 교섭에 의한 문제해결의 자세를 포기한 채 군사 공갈과 전쟁도발에 의해 정치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미국의 전략은 대개는 군사연습의 내용과 강압적인 정치판단으로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가까운 사례 두개를 든다면, 하나는 올 6월 하순에 괌 근해에서 실시한 대규모 군사연습 ‘용감한 방패’(Valiant Shield)이다. 이 훈련에는 미 항공모함(에이브러햄 링컨, 로널드 레이건, 키티 호크)과 B-2 Sprits 전략폭격기를 포함해 280기에 다다르는 항공기가 투입되었다. 투입한 함선 가운데 상당수가 요코스카가 모항이고, 북한을 사정거리에 포함한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요코스카 모항의 미국함선은 모두 500기 이상의 토마호크 수직발사관을 장비하고 있다. ‘용감한 방패’ 훈련에 이어 6월 하순에서 7월 하순에 걸쳐 하와이 앞바다에서 미국, 일본, 한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페루, 칠레 등 환태평양 제국이 참가한 「림팩훈련」(환태평양 군사합동연습)이 실시되었다. 이런 대규모 군사연습이 북과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매년 확대되고 있는 배경에는 군사동맹 강화의 지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7월 5일 새벽에 실행한 북 미사일 발사실험의 대응으로 일본정부가 제안한 「제재결의안」 내용이다. 결의안은 경제제재와 무력행사를 가능하게 한 「UN헌장」 제 7장 제 42조(군사적 조치)2) 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즉, 군사행동의 승인을 얻으려고 한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군사제재를 포함한 내용을 국가간의 분쟁해결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이 철저히 비군사주의를 명기한 일본헌법 제 9조 위반이라는 점이다. 북 미사일 시험 발사를 구실로 사실상 제 9조를 무효화하려는 의도조차 들여다 보인다.

이 「제재결의안」은 중국과 러시아의 강경한 반대를 당하고, 결국은 UN헌장 제 7장에 관해 어떠한 문언도 포함시키지 않고, 일본과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제가를 받아들이는 수준에서 제재의무가 없는 결의안으로 일단락되었다.

중국은 일본과 미국이 제안한 「제재결의안」이 가결되면 다시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미국이 「유엔군」 모자를 쓰고, 한반도 전역에서 북을 지원하는 중국군과 격전을 벌이는 역사가 되풀이 되는 미조(米朝) 및 미중(米中) 전쟁의 발발할 가능성을 간파하고 미국이 추진할 선제공격전략에 휘말릴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었다. 이번 「제재결의」를 둘러싼 일본·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대립은, 요컨대 미국의 군사 글로벌제이션의 동조(일본)와 반발(중국·러시아)이라는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북조선 미사일 발사문제와 일본의 반응

필자는 북이고, 미국이고, 모두 핵병기의 제조와 보유에서 반대하며, 미사일의 발사실험도 반대한다. 현재, 미사일 보유국은 전 세계에서 40개국 이상이며, 미사일 선진국인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인도와 파키스탄 등은 미사일 발사실험을 반복하는 것으로 미사일 개발과 군확(軍擴)에 서로 맹렬히 경쟁하고 있으며 이는 핵병기보유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이다.

북 미사일 발사실험은 무용한 불신감과 경계감을 증폭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개는 미사일 방위(MD)시스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일본정부와 방위청 쪽 목소리를 정당화시킨다. 미사일 발사실험이 어떤 의미에서 일상화되고 있는 세계의 현실에서 핵병기와 마찬가지로 그 보유나 실험에 엄격한 족쇄를 가하는 국제조약을 솔선해서 제기하는 것이 일본을 포함한 관련 나라들의 임무다.

그런데, 북은 왜 7발의 미사일 발사실험을 강행한 것인가? 그 배경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의 미사일 발사실험이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맞춰 결행한 사실에서 볼 때 미사일 발사실험은 미국을 의식해 강행한 것은 틀림없다. 북은 6자 회담을 우선으로 하여, 북미 제네바 포괄협의를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미국에 북미 간 대화를 압박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작년(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는, 북미가 「상호 주권을 존중, 평화 뒤에 공존하는 것. 2국간에 관한 여러 정책에 따른 관계정상화 조치를 취한다.」라고 명기했다. 소위, 「대화 대 대화, 공약 대 공약」 원칙을 근거로 삼아 북미 쌍방이 단계적으로 사태 타개에 힘을 다 하기로 확약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미 합의를 되풀이해서 휴지로 만들어 왔다. 그에 대한 반발이 미사일 발사실험이라는 형태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두 번째로는 북이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는 일미공동 미사일 방위시스템(MD) 정비에 대한 경고이다. 일본 정부는 MD를 도입하면서 그 이유로 북 미사일 발사를 사전에 억지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이번 7발 발사실험은 MD를 무효화하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말한 것처럼 북에 있어서는 요코스카에 배치된 미국 함선에 탑재한 토마호크 수직발사관의 절반이 북을 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MD가 일본열도 각지에 배치되어 전개되면, 공격 미사일과 방위 미사일이 일체화되어 일본은 강력한 미사일 발사 기지로 되고 있다고 예상한 것이다. 북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라 할지라도 도리 없이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일본 주변을 둘러싸는 미사일 방어시스템에 대한 반항이라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이유이건 핵과 미사일의 보유와 발사 실험이 결국은 군확(軍擴)의 명분을 가속화 시키고, 북과 일본이 군사화에 박차를 가하게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처럼 제동장치가 없는 군확의 악순환 속에, 북조선 뿐 아니라 일본도 완전히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군확(軍擴) 연쇄 속에서, 군사 주박(呪縛)이 강해진다. 그 일례로 북조선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한 한 정치가의 ‘북조선 선제공격도 자위대의 범주다’라는 언급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고이즈미 내각 방위청 장관과 외무대신이 ‘적기지 공격’ 가능성을 거론하고, 또 이를 몰래 지지하는 다른 정치가와 여론의 존재는 평화실현에 의욕을 상실하고 평화의식 포기를 스스로 적나라하게 말함에 다름없는 행동이다.

이 문제의 발언은 미국의 선제공격전략(=예방공격전략)에 충실한 것이지만, 이러한 발언이 공공연히 공식 장소에서 말해질 정도로 일본 군사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기화로 방위미사일 시스템 계획의 조기실행을 직면할 일부 야당세력이 오직 방위미사일 정밀도 향상으로 인한 군사효과에만 관심있을 뿐, 이번 미사일 발사문제의 본질은 파악하려고 하지 않은 정치가들의 존재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직전에, 미국 추종 주장을 주저하지 않았던 고이즈미 내각이 「미국을 빼앗을까 이라크를 빼앗을까」라는 양자택일을 국민에게 묻는 상황이었다면, 이번 「미국을 빼앗을까 북을 빼앗을까」라는 말에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은 이 나라의 정치선택의 경직성이 또 드러난 셈이다.

어찌하여, 다양한 선택 속에서 가장 유효한, 동시에 안전한 방법에 따른 평화현실의 방도를 생각하지 않은 것인가. 그런 양자택일론은 정의와 부정의, 적과 아군이라는 극단적 이원론으로 모든 정치 과제를 파악하려고 하는 극히 빈곤한 정신에서 나오는 군사적 발상이라고 해야 한다. 올해 6월 22일에 해상자위대 함정도 참가해 실시한 하와이 앞바다에서의 미사일 발사훈련은, 미국의 미사일 공격 시스템 정비의 일환이다. 일본이 미사일 환경 속에 자진해서 포함되면서도 북에 대한 군사제재를 소리 높여 주장함은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행위일 것이다. 일본은 스스로 군사주의에 무자각인 상태로 「임전국가」의 길을 선택한 건 아닐까.

 

4. 미군 재편과 일본 정치의 보수화

 

신 가이드라인의 안보 체제의 구축은 미군 재편을 떠받치는 것

지금까지 미군 재편 문제를 미 군사 전략의 전환과 일미 동맹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살펴봤듯이 미군 재편 문제는 최종적으로 일본 보수 정치체제에 근본적 변화를 강요한다.

다시 말해서 미군 재편이 군사 기지의 재분배 및 전력 전개의 재편에 그치지 않고 그 실시 과정 및 실현의 조건으로서 일본 외교·방위 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군 재편의 목적을 되짚어 보면 첫째, 군사 기지의 재분배 및 전력 전개의 수정, 둘째로 광역을 대상으로 하는 대테러 전쟁의 항구화, 셋째로 미국 자체의 새로운 군사국가화이다. 그래서 일본의 군사국가화, 전투국가화의 달성도는 미군재편에 의해 가늠된다. 따라서 미군재편의 달성은 자동적으로 일본의 정치 시스템 및 경제 시스템, 더 나아가서는 국민의식의 존재 양식을 더욱 규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점은 필지의 사실이다.

일미 신가이드라인 합의 기점으로서 「미군 재편에 관한 최종 보고서」 및 「공동 문서」에 의해서 결론지어질 수 있는 일련의 미 군사 전략의 수정 의도 및 목적은 미 정부 및 국방성 문서인 「동아시아 태평양 안전 보장 전략」(1995년 2월)에 제시되어 있다. 이 문서는 동아시아 지역에 전개하는 미군 병력을 10만명 수준으로 유지해야 할 “사활적 이익”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동아시아에 전개하는 미국 국적의 다국적 기업의 경제적 이익, 무기수출 지대로서의 이익(군산 복합체의 이익)의 확보가 목적인 점을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공헌’이니 ‘국제 평화’니 하는 ‘국제 공공 가치’를 위한 병력 배치도, 전력 전개도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확인해야 하는 점은 하시모토 내각 당시에 강하게 추진되어 왔던 ‘안보 재정의’와 관련한 일련의 작업이 냉전 구조 종언의 결과라고 하는 인식의 불충분성이다. 그것은 또한 일미 안보 조약 체결과 경찰 예비대 창설에서부터 안보대로 범위를 축소한 자위대 창설(1954년 7월)에 이르는 일본의 재군비가 “냉전의 산물”이라고 하는 역사의식의 과오와 같은 것이다. 안보 조약에 의한 일본 전 국토의 기지화는 일본으로서는 미군에 의한 자유시장 유지활동의 군사 거점화 구상으로부터 나온 것이었고, 일미 안보 체제를 탄생시켰던 미국의 전략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목적에 한정하지 않고 그 이상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세계시장 질서 형성과 유지라는 고도의 전략 목표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그 이후에도 미국의 이러한 전략 목표가 관철되어 온 것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전쟁 전의 나치와 일본 제국주의의 위협, 전후 소련의 위협, 리비아(아프리카)와 이란·이라크(중동), 중국·북한(동아시아)도, 미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행동을 방해하는 호감가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동질의 문제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이 같은 문제의 배경에는 냉전 종언에 의한 소련, 동구권, 중국, 베트남 등의 자유시장화로 확대하는 시장의 출현과 그 처리를 노리는 미국 자본주의(다국적 기업화한 미국 기업군)의 요구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미국 군부가 있다. 과도한 군사비 부담을 지속적으로 경감하고 미국 자본주의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서 일본과의 군사동맹 체제의 강화가 끊임없이 지향되고, 새롭게 획득 되어진 시장의 유지와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포스트 냉전 시대의 미국의 신전략(“봉쇄 전략으로부터 확장 전략”으로의 전환)이 <신 가이드라인 안보 체제>라는 결실을 맺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군 재편은 일본의 주체적인 관여로 달성되다.

그러나 미 자본주의와 미 군부의, 이른바 군-산(軍-産)연대에 의한 신전략에, 일본이 단지 추종한다고만 보면 잘못이다. 전후 일본의 체질적 대미종속성이라는 요인과 함께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국적의 다국적기업이 미국 기업과 같이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점에서 즉, 일미 다국적기업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점에서 양국 공통의 과제가 있고, 이를 염두에 둔 미군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일미동맹 노선은 결코 미국에 의한 강제적 견인의 결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의 주체적인 선택으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화한 일본 자본주의의 구조적 전화, 즉 일미 경제마찰과 엔고의 결과로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로부터 해외생산으로 대폭 전환함에 따라 일본기업의 다국적 기업화 경향이 가속되고 있다. 그것은 유망한 수출처와 해외생산거점의 정치질서와 노동현장의 ‘안정’이 불가결의 요건이 된다. 일본에서도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선진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그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서는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해외 여러 지역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으로 과거에는 여러 개발독재 정권의 정책이 일본 수출시장의 ‘안정’을 위한다는 구실로 용인되었다. 거기에서는 사카모토 히로카즈가 ‘주변군국주의’ 이른바 ‘대체군국주의’라고 하는 것처럼 여러 개발독재 국가의 군사화가 일본 수출시장의 안정적인 확보로 이어지는 구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일본 국내에서는 그 사이에 수출상대국의 군부독재와는 대조적으로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경제발전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개발 독재 국가의 민주화 움직임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들 시장에서 기득권익의 확보가 곤란하게 된 일본은  물리적 강제력 즉, 군사력에 대한 의존경향을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냉전 종언으로 군대의 주둔이 바로 세계대전으로 직결되지는 않는 시대상황이 되었고, 이는 군대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것이기도 했다. 즉 군사주의의 채용이 용이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변용 속에서 이번에는 일본 자신이 군사화 함으로써 기존의 경제적 패권의 존속과 확장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에 있어서 일본의 우경화·군사화의 근본원인이다. 말하자면 ‘민주화’에 의해서 담보된 경제발전으로부터, ‘군사화’에 의해서 담보된 경제발전이란 전환이, 냉전시대 후에 일본이 선택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방침 혹은 일본 자본주의의 군사적 측면으로의 전환이야말로 일미 안보 재 정의로부터 개시된 일미안보의 아시아화 혹은 세계화란 문제이며, 그것에 의해 나타난 신군국주의 국가 일본은 유사법제(=군사법제)로서 주변 사태법, 무력침공 사태대처법, 국민보호법 등을 차례차례 제정하였다. 그와 같은 일본 정부 및 일본 자본주의의 노림수는 괴선박 소동과 납치문제, 이번 미사일 발사문제 등 북한의 동향과 야스쿠니 신사참배문제, 독도의 영유권문제를 둘러싼 일본과 한국사이의 알력, 거기에 경제발전이 두드러진 중국의 대두 등을 기화로 여론몰이를 통해 국방의식을 발양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반면에 다국적화가 현저한 일본 자본주의는, 해외에 단독으로 본격적으로 전개 가능한 자위대 군사력을 정비할 여유가 없어, 당장은 일미 군사동맹 노선의 길을 선택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외의 반전평화운동의 움직임을 회피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역동적인 군국주의화(臨戰국가)를 주도면밀히 우회하면서 당장은 미국 군사력에 의존·협력함으로써 해외의 이권 확보의 길을 찾는 방침을 채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미군 재편은 전후 일본정치의 보수재편과 군사화를 재촉한다.

본래 외교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민의 합의를 취해가면서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고 그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거기서 원칙은 국내안전과 국제평화일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현대정치는 국제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미국이 말하는 ‘국제평화’의 실현을 평화실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본은 납치문제와 미사일발사를 핑계로 북한의 위협이미지를 부각하고, 지금까지 신가이드라인에 의한 군사적 대응조치의 필요론을 환기시키고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의 법제화와 TMD(전역미사일방위)의 일미공동연구를 가속화 시켜왔다. 현실에서는 북한이 일본을 침공할 정치적 의도도 군사적 능력도 모두 없다는 일본정부 고관의 발언을 기다릴 것도 없이, 북한의 위협 이미지의 유포가 명확한 정치목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결국, 국내에 잠재한 국수주의의 부각과 군사대국화로의 ‘기분’(고이즈미 수상이 말한 ‘국민감정’)만들기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아시아 지역전체의 긴장완화와 평화공동체 구축의 전망을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최근에 일본정부는 특히 고이즈미 내각의 5년 반 동안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요청한 재계의 목적도 있고, 일본기업의 다국적 전개에 따라 아시아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증대시켜 왔다. 그것은 다국적기업이 현재의 불황에서 국제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써 국가기구와 경제구조의 발본적 개조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분명하다. 예를 들어, 대규모 점포법의 폐지, ‘중앙관청개혁법’의 성립, ‘노동법’의 개정 등, 규제완화와 행정개혁 등을 목적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단행, 그 귀결로서 군사국가 일본의 전면적 전개라는 실체가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 내각이 강행한 일련의 구조개혁은 그 의미에서 양극화 사회를 필연화 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군사사회의 고유한 현상이기도 한다.

지금이야말로, 미군재편의 실시과정에 있어서, 일본 재계를 주축으로 포진한 일본의 전후 보수정치가 새로운 단계를 맞고 있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군사사회의 도래를 피할 수 없는 정치체제의 구축이다. 바꿔 말해서, 고도의 군사사회에 의하지 않고서는 미군재편은 완결되지 않고, 미국과의 군사동맹 노선도 관철할 수 없는 것이다. 앞서 기술한 것과 같이 미군재편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결코 일본의 몰주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 내지 주체적인 관계가 절대 필요하다. 그 문맥에서 보면 미군재편은 일본의 보수구조의 군사화를 의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미국에 종속함으로써 미군재편도 보수재편도 실행가능한 성질의 것이다.

 

일본의 군사화를 요구하는 국내세력

미군재편을 기화로 일본의 보수구조의 개편 혹은 보수체제의 군사화를 지향하는 세력은 무엇일까? 그들이 스스로 군사화의 지향성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을까를 떠나서 객관적으로도 군사화란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 세력 중 현시점에서 선두에 언급되는 것은 자위대 제복조3) 일 것이다. 그들은 신가이드라인의 실질적 작성자들이며, 미국화한 군사합리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매우 강한 국방의식과 군사주의의 정당성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약 70%라는 자위대의 국민지지율과 미국으로부터의 입지확보를 배경으로 자위대 제복조는 자위대의 ‘신일본군’화를 시야에 넣으면서 가까운 미래에 있어서 자위대의 역할을 계속해서 모색하고, 확고한 군사관료기구의 정착을 노리고 있다. 그 기세는 현행 문민통제를 ‘문관통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의 논조를 지속적으로 깔면서, 사실상 문민통제의 형해화로 연계할 움직임을 감추지는 않는다.4)

그들은 결단코 제복조 단독의 행동패턴을 취하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일본 자본주의의 의향에 객관적으로 합치하는 선택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통막의장의 인정관으로 승격(국무대신화), 군령권(통수권)의 독립, 계급 호칭의 전전(戰前) 호칭에로의 부활, 방위청의 방위성으로의 승격 등의 움직임을 부활하고 있다. 그 제복조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정치가들의 존재에 기세를 얻고, 오늘날 통막 의장의 권한확대의 일보 전진이 실현되고,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방위청의 성 승격이 정치일정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일련의 유사법제(=군사법제)가 제정된 국내에 있어서 자위대의 움직임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나아가서는 이라크 특별조치법 등 시한입법이지만 법률에 의한 해외파병도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전투지역으로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육상자위대는 철수했지만, 항공자위대는 전투가 가장 치열한 바그다드 부근에서 수송 임무를 확대하고 있다. 그 같은 자위대의 정치이용이 미군재편 과정과 일미동맹노선의 강화 속에서 확대되고 있는 것은 필지의 상황이다. 거기에는 기세등등한 자위대 제복조의 발언력 또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위대 제복조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독점자본·다국적기업의 집단이다. 이미 기술한 것처럼 이들 집단은 해외에 생산거점을 둔 관계로 특히 아시아의 여러 국가내의 동향에 매우 민감해 하고 있다. 군사력에 의한 갈등·억압, 최종적 수단으로서 일미동맹에 의한 권익의 안정유지와 확보로의 관심은 강해지고 있다. 그와 같은 위치는 안보 내셔널리즘이 되기는 했지만, 그런 활동에 의한 국민동원시스템의 기동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그룹으로서 그들은 한통속은 아니다. 과잉의 군사력 강화가 주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게 불필요한 불안감과 경계감을 가져다줌으로써 안정된 시장으로 평가할 수 없게 되는 가능성을 알아챈 재계 사람들 속에는 일련의 유사법제도 자위대의 해외 파병에도 신중 내지는 반대의 태도를 표명하는 부분도 확실히 존재한다. 특히 전중파(戰中派) 재계인에는 전쟁 체험·침략 체험을 배경으로 군사력으로의 의존 경향, 혹은 일미 동맹 노선 강화에 의한 반미·반일 국수주의 기운이 아시아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의 경계감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계감은 당연하게도 현재 진행되고 있고, 그 의미에서는 일본 자본주의가 시종일관 군사주의로만 경도해 간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그들이 소수파가 된다고 한다면 현재 자위대와 재계와의 관계는, 오랜 기간에 걸친 방위력 정비 계획의 실시과정을 포함한다면, 현재의 경제환경을 반영하여 급속하게 깊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본과 군사에 내재하는 상호 보완성이 여기에 와서 표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전전(戰前) 일본에 있어서 재계와 군부는 준 전시체제로부터 전시체제로 이행 과정에서 소위 ‘군재 포합’라고 칭하는 밀접한 관계를 구축했고 군사와 자본의 연대가 진행해 왔다. 군사가 시장의 확대와 자본침탈의 이슬받이역을 담당하고 그 후에는 자본이 이익을 요구해서 참여한다고 하는 구도가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본과 군사의 접합관계가 이후 모든 구실에 의해서 구체화되어 갈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구체화를 보증하는 국가 정책이 “국제 평화에의 공헌”과 “국제 안전보장 환경의 유지”를 명목으로 내걸고 나가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는 또다시 자본과 군사의 접합이 군확이라는 형태로 전면화되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자본의 군사화> 혹은 <군사의 자본화>라는 본질이 재확인됨으로써 동시적으로 국민의식의 <군사화>가 현재화하게 될 것이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한 대응으로서 일본 정부가 유엔 안보리에 제출하려고 했던 군사력 행사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제재 결의안」에 대해, 거기에 내포된 군사주의에의 무조건 용인론에 대한 최소한의 반발이 미디어를 포함한 국민 여론 속에서 구현되지 않았다는 점도 국민의식에 내재하는 어떤 종류의 <군사화> 경향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그것은 납치사건에 대해서 ‘경제 제재’를 유지하려는 여론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이번 결의안에서 군사 제재 및 경제 제재를 의무화한 조항을 포함한 유엔 헌장 제 7장의 문장은 삭제되었지만 ‘제재 결의’에 분주한 일본 정부의 자세는 오히려 특히 아시아 여러 국민들로부터 불신과 경계감조차 불러 일으켰다.

정확하게 측정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안전에의 침해 행위에 대해서 냉정 내지는 가능한 한 객관적인 시점으로부터 분석과 토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전 보장 환경’의 유지 및 창출을 위해서라도 철저히 평화주의에 기초한 평화적 수단의 행사가 무엇보다도 확실한 안전 획득에의 방도 임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억압을 내재한 군사 제재와 경제 제재를 쉽게 선택하려는 자세야말로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면 이번 군사화는 자위대 제복조, 자본, 여론의 삼위일체의 관계 속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배경으로 하면서 정책화하고 있는 것이 정권, 여당 및 거기에 포진하고 있는 일군의 관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일개의 역사연구자로서 다이쇼 민주주의라는 전전(戰前)형 민주주의 사조가 활발했던 1920년대에 있어서 오히려 일본의 군사화가 용이했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한일합방에서부터 만주사변까지의 역사과정에의 분석을, 예를 들어 ‘일중 15년 전쟁 전사’ 혹은 ‘만주 사변 전사’의 제목으로 집필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거기에서의 기본 기조는 <군사화>를 유인하는 <민주화>와 <근대화>라고 하는 문제이다. 실지로 민주주의 태내에 군사주의가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문제의 탐구 없이는 그 당시에 있어서 일본의 <군사화>도 오늘에 있어서 급속하게 진행하고 있는 <군사화>의 분석도 불가능할 것이고 생각하고 있다.

그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2006년 현재, 1920년대부터 1930년대의 시대를 탄생시킨 현재의 우리들이 대체 어떤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인가, 역사를 교훈에 맞게 고치는 것도 또한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론의 한편에서는 유사법제(=군사법제)와 일미동맹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스스로의 <군사화 경향>이 전면적으로 전개되는 것도, 군사주의가 발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오히려 지배적인 견해가 되고 있다. 그와 같은 무자각함은 현대 군사주의의 특질을 거꾸로 도드라지게 상징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 현대의 군사주의 혹은 군국주의 혹은 파시즘은 극히 세련된 현상 형태를 동반하여 표출하는 것이며, 그런 까닭으로 ‘미소 띤 파시즘’이라든지 ‘배경이 넓은 군국주의’라고 불린다. 현대인의 감성에 부합하면서 시민 사회를 한 단계 한 단계 침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군사화가 무통각인 채로 동시에 극히 가벼운 언어표현을 통해서 확산하고 있는 특징을 인식한다면, 또한 현대의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군국주의라는 시점을 명확하게 한다면, 우리들은 무엇을 진정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지 스스로 해답은 분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5. 평화 구상과 평화실현을 향하여

 

미군재편을 지렛대로, 한층 더 선제공격전략과 단독행동주의를 기조로 하는 미국의 동향은 국제사회에 있어서 평화구상을 상정하고, 국제평화사회를 구축하며, 평화실현을 향한 국제사회가 의사의 일치를 보려는 경우에 거대한 장애이다. 미국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로부터 이탈하여,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불참하는 등, 국제협조노선으로부터 일탈하고 있고 유엔헌장과 국제법 혹은 국제규범을 경시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일본의 요구로부터 나온 북한 「제재결의안」에는 북한에 대한 봉쇄를 노린 UN외교를 전개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받고는 타협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것은 UN외교에로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이용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UN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국제협조주의에는 일관해서 부정의 입장을 계속해서 취하고 있는 것은 대 이라크전쟁 등에 대응하는 태도로부터 알 수 있다.

일본정부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한다고 말하면서 동맹의 본래의 의미에 있어서 대등성을 이해하지 않고, 종속성이라는 왜곡된 관계에 스스로를 몰입해 왔다. 일본이 진정으로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말하려면, 미국의 군사우위전략이 결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미국에 대한 총체적 반발을 살 것임은 필지의 사실이고, 현실에서 반세계화 바람이 세계 각지에서 전개되며, 세계 시민이 미국을 ‘포위’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 같은 한계에서 미국은 세계로부터 고립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정부 및 그 주변에서는 예를 들어 과거 미국의 이라크 선제공격의 시비를 둘러싸고 벌이는 발언에서, “일본에는 일미안보조약이 있다. 이라크문제는 미국에 협력하여 ‘부채’를 만들고, 북한위기의 시기에 미국으로부터 ‘되돌려’ 받으면 좋다”(사사준 유키모토 전 내각안전보장실장, 매일신문, 2003.2.28)라든가, “어쩔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일본은 미국의 몇 번째 주와 같은 것이므로”(쿠마 전 방위청장관, 아사히신문, 2003.2.1)라고 하는 등, 극히 굴욕적인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 정치가가 있다. 이런 종류의 발언과 감각은 두려울 정도로 현재의 일본정부 주변 및 국민의식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북한은 미국의 이라크 선제공격 시에 “국제여론도 UN헌장도 이라크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강력한 군사적 억지력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전쟁을 막고, 국가와 민족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이라크 전쟁의 교훈이다”(2003. 4. 6)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덧붙여 “우리에게도 핵 억지력을 준비할 권리가 있다”(노동신문, 2003.6.1) 등 핵무기와 미사일보유에 의한 ‘억지력’을 공언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의 태도야말로 이번 미사일발사 실험의 배경이라고 한다면, 이라크 선제공격의 충격이 더욱이 군부를 중심으로 한 북한정부에게는 일종의 방위수단으로써 억지력효과의 향상과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도 더 중요하다 라고 통감하게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북 미사일발사의 위험성과 문제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군확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미국을 필두로 미사일 및 핵보유국 모두가 발사실험과 임계전 핵실험을 포함한 모든 실험을 동결하고, 군사 대결관계가 아닌 평화공존관계를 구축하는 전제로서 어떤 형태에서 상호신뢰를 배양시켜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합의 내지는 공유가능한 평화구상으로 다양한 곤란함을 극복하여 실현시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장 안정성 높은 정책제언과 군사주의에의 의존을 거부하는 평화의식의 확인을 반복하여 행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은 확실히 미군재편에 의한 일미군사동맹의 강화 및 일미 운명공동체론이 이 나라의 언론계와 여론에 한층 깊이 뿌리박은 결과가 되고 있다. 평화구상과 평화실현에의 방도를 설명하는 것이 동시에 북한에 대한 융화론과 동정론으로 인식되고 마는 위험성 속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내지 물리적 제재를 배재해서는 안된다는 ‘진보적 지식인 들’조차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핵무장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는 언론인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래서 이같은 여론의 응원을 받은 많은 정치가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건에 대하여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군확과 군사주의에의 지지를 얻기에 분주하고 있다. 이처럼 다른 나라의 ‘위협’을 핑계 삼아 사실상의 「임전국가」화에의 공감을 부채질 하는 것은 평화실현의 방도를 위하여 토론을 다하는 노력을 방기하는 행위와 같다. 그것은  1940년대 대정익찬회5)적 시대상황과 지나치게 비슷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우선은 <군사화>를 무의식 속에서 수용하고 마는 <내재하는 군사주의>의 극복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 의미에서 미군재편문제란 단지 군사문제도 정치문제만도 아니다. 우리들 자신의 <군사화>의 수준이 어디쯤인가를 묻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번역 ┃ 김분석, 김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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