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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2] 두 번째 강정마을 생명평화축제, 해군 SSU 송강호 박사 폭행, 대학생 11명 공사장으로 진입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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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소식 - 두 번째 강정마을 생명평화축제, 해군 SSU(해난구조대) 송강호 박사 폭행, 대학생 11명 공사장으로 진입
2011년 10월 1일(토)
두 번째 강정마을 생명평화축제가 강정포구 일대에서 열렸습니다. 강정포구로 가는 길만 열어둔 채 수 백 명의 경찰은 공사장 주변을 철통같이 에워쌌습니다.
오후 3시부터 행사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강정포구로 모였습니다. 강정포구에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먹을거리를 준비한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부스가 설치되었습니다.
오후 5시가 되면서 제주도 전역에서 평화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중문에서는 중문성당 앞에 모인 지역 참가자들이 중문 하나로마트 앞까지 약 1.5km정도를 행진하며 가두시위를 한 뒤 중문성당 평화버스를 타고 강정마을로 출발했습니다. 중문 참가자들이 중문성당 신부님의 선창으로 구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자, 상인들과 길을 가던 시민들, 자가용을 타고 가던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하거나 주먹을 쥐며 '화이팅'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성산에서도 그 동안 지역에서 흩어져 활동하던 농민회 회원들과 교인들, 시민을이 평화버스에 올라 인사를 나누며 앞으로도 강정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는 뜻을 나누었습니다.
제주도시에서 참가한 평화버스 탑승자들은 오후 3시 결의집회에 참가한 후 강정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오후 7시, 본행사가 시작되자 강정포구에는 약 1천여 명의 참가자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평화비행기를 띄우지 못해 육지에서는 많은 분들이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을 태운 평화버스는 9월 3일 1차 행사때보다 일곱 대가 늘어 스물 다섯 대가 들어왔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탑승자들이 적었지만, 더 많은 지역에서 평화버스를 보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 윤병용 선생이 사회를 맡았네요.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정감 넘치는 사회자입니다. 문예공연이 위주가 된 이번 행사는 제주도민들이 강정주민과 함께 해군기지 백지화 투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습니다.
평통사에서는 배종열 상임대표, 고영대, 김창환, 서창호 공동대표, 명진 스님, 부산평통사 김홍술 대표, 그리고 서울과 부천, 인천, 대전, 김제, 광주, 무안, 안동 평통사 회원 등 4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행사는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 강정포구 가는 길 입구부터 경찰병력이 주둔(!) 하고 있습니다. 안쪽 골목에 사시는 할머니는 경찰들이 용변을 함부로 봤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계셨습니다. "죄없는 마을 사람들은 잡아 가두면서 왜 남의 화장실은 멋대로 지저분하게 해놓느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경찰들은 건성으로만 미안하다고 합니다.

△ 해군이 만든 장벽 - 공사장 펜스

△ 서울 등에서 온 육지 손님들, 황금연휴 기간이라 제주행 배표와 비행기표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많이는 못 내려왔답니다. 대신에, 제주 전역에서 평화버스 26대가 운행되어서 제주도민들이 많이 참여하셨습니다.

△ 구속되어 있는 강동균 마을회장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편지를 낭독한 후 주민들이 참가자들에게 큰 절을 올렸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강정 마을 어린이들이 "고향의 봄"을 합창했습니다. 해군 펜스에 막혀 못가는 구럼비 바위는 아이들의 놀이터였죠.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한진노동자들이 단상에 올랐습니다. 막가파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가장 핍박받는 한진과 강정이 손을 잡았습니다. 2일에는 펜스를 넘어간 학생들이 연행되는 것을 보고 항의하다가 한진노동자 4분도 같이 연행된 일이 있었습니다.

△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풍등을 띄웠습니다.

△ 풍등이 바람을 타고 포구 동쪽 구럼비 해안쪽으로 날아갑니다.

△ 밤새 영화제와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 새벽 6시, 구럼비 바위쪽을 보며 어김없이 108배 명상이 진행됩니다. 어슴프레 동이 터오고 있습니다.

△ 집집마다 깃발도 새로 단장하고, 포구쪽에도 깃발을 새로 달았습니다.

△ 오탁방지막 설치를 하는 배. 해군은 오탁방지막 설치도 안하고 공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제주도의회에서 진행한 행정조사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되었지요. 오만한 해군은 환경파괴자!

△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한라산이 뚜렷이 보입니다. 설문대 할망이 머리를 풀고 누운 형상입니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해군의 펜스와 삼발이가 훼손하고 있습니다.

△ 포구쪽에서 구럼비 바위를 보았습니다. 포크레인이 구럼비바위를 많이 깼다고 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아직 대부분은 살아 있습니다.

△ 오직 인간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파랑새 조형물이 보입니다.

△ 사진을 확대해 보았습니다. 아직 괜찮죠?

△ 포구에 가까운 방향입니다

△ 남쪽 바다에 가까운 방향입니다.

△ 고기잡이 배가 바다로 나가고 있습니다. 범섬이 예쁩니다. 
해군기지 공사가 아니면, 주민들은 이처럼 평화로운 아침을 맞겠지요?

2011년 10월 2일(일)
오전에 구럼비 바다로 헤엄쳐 간 송강호 박사가 해군에 의해 폭행당했다는 소식입니다. 해군은 송박사를 바다에서 해안으로 나오지 못하게 밀어넣는 등 살인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기진한 송박사는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했습니다.
한편 30일 연행되셨던 문정현 신부와 예수회 이영훈 신부 등 세 분의 신부님들이 오전 10시 경 석방되어 오전 11시 공사장 정문 앞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 미사에서 이영훈 신부는 경찰의 폭력이 초법적인 수준이라며 개탄하였습니다.
이영훈 신부의 말씀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경찰들은 미사가 봉헌되기 시작하자 바로 옆에 있는 경찰버스 시동을 걸고 에어콘을 틀어 소음을 내면서 미사를 방해했습니다. 고병수 신부 등의 항의를 받고서야 소리를 낮추는 야비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오후 6시, 10여 명의 학생들이 농로삼거리 팬스를 넘어 공사장 안쪽으로 넘어들어갔습니다. 구럼비를 되찾기 위한 활동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의로운 투쟁입니다.
경찰과 해군이 곧바로 이들을 연행했고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삼거리로 달려가 경찰들과 대치했습니다.
자정 넘어까지 이어진 대치 과정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다시 연행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서귀포서로 연행되었으며 여학생 한 사람은 실신하여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해군이 공사를 중단하고 백지화에 나서지 않는 한 구럼비를 향해 달려가는 투쟁대오의 행렬 또한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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