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2] 김종일 현장팀장 최후진술서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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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최후진술서
- 사건 : 2011고합85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주거침입) 등(2012고합12 업무방해 병합)
재판장님!
지난 1993년 제156차 국방부 합동참모회의에서 제주해군기지 신규 소요가 결정된 이래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제주도는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익히 알고계신 것처럼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지난 2002년부터 화순과 위미에서 5년 동안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려다가 해당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투쟁과 제주도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건설을 포기한 바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학습효과를 얻은 해군당국은 2007년부터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온갖 편법과 탈법, 주민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 사법처리를 통해 해군기지 건설강행에 나선지도 벌써 5년째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육상, 해상 공사현장에서 불법적인 해군기지 건설강행을 막기 위해 주민들과 성직자들, 평화운동가들이 온 몸을 던지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경찰의 불법폭력으로 문정현 신부님이 중상을 당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왜 이런 사회적 대립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강정마을 주민 유권자 1,100명 중 87명의 찬성으로, 그것도 충분한 마을총회 고지와 토론을 통하지 않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해왔기 때문입니다. 해군기지 건설과정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주권, 국민의 행복추구권, 적법절차의 원칙 세 가지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추진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불법사업일 뿐입니다.
재판장님!
피고인의 공소사실 주요 요지에 대한 의견을 다음과 같이 개진합니다.
1.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여러 차례 확인되었듯이 검찰 측이 내세운 증인(주로 경찰관)들의 증언은 서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는 누군가 거짓증언을 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증인선서를 무색하게 하는 법정 모독행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술 내용조차 기억 못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수사자료에 첨부되어 있는 자신들의 채증사진조차 제대로 식별을 못하고 있는데도 검찰은 피고인을 공무집행방해치상으로 기소하였습니다. 검찰 측 증인들로 나온 경찰관들의 증언내용을 비교하여 살펴보신다면 그들의 위증사실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경찰의 불법적인 공권력 집행에 항의한 것을 공무집행방해치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는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피고인에 대한 발목잡기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잘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2. 작년 6월 20일 제주해군기지 사업단에 들어간 것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주거침입)으로 기소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오인입니다. 당일 피고인은 송강호 박사가 준설바지선 위에서 해군장교와 공사인부들에게 폭행을 당해 쓰러져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119구급차를 부르는 한편 직접 배를 타고 바지선으로 가서 송박사의 부상정도를 확인하였습니다. 이어 119구급대원들의 송박사 병원후송을 도왔고 함께 서귀포 열린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피고인은 부상정도가 심한 송박사의 응급처치과정을 다 지켜보았고 관찰이 필요하다는 담당의사의 소견을 듣고 송박사의 병실 입원수속까지 마무리하는 등 오후 6시까지 열린병원에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지킴이가 전화를 해와서 주민들과 성직자, 평화운동가들이 기지사업단으로 몰려가 항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귀포 열린병원에서 해군기지사업단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갔으며 피고인이 기지사업단 정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2-30분쯤 되었습니다. 도착 당시에 기지사업단 정문이 열려 있었고 경비원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객관사실이 그러함에도 검찰이 피고인에게 해군기지사업단을 공동으로 주거침입하면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을 위반했다고 기소한 것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피고인의 전화통화 내역을 조회하시거나 수사자료를 살펴보신다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병합된 사건(2012고합12)은 업무방해 사건입니다. 검찰은 작년 12월 26일 피고인이 김복철씨와 공모하여 위력으로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을 막아 주식회사 삼성물산과 주식회사 대림산업의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공사업무를 방해했다고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업무방해가 성립하려면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정당한 업무’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그렇습니까? 당시 해군은 계속해서 불법공사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서귀포 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하고 평화적인 연좌시위 방법으로 불법공사를 막으려 했습니다. 이는 정당방위입니다. 이미 제주도에서는 작년 11월 25일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 공유수면 매립공사에 따른 면허부관 이행지시’ 공문을 해군 측에 보내 공사장 내 침사지와 가배수로 공사를 먼저 시행할 것을 요구하며 불법공사 중단을 요청했고, 12월 8일에는 진행 중인 ‘15만톤 크루즈선박 입출항 관련 기술검토 1,2차 협의결과에 따른 합리적 조치’가 이루어질 때까지 방파제 건설과 관련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준설공사 보류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해군은 제주도의 요구를 받아들여 발파와 준설공사 등을 침사지와 가배수로 공사 이후로 미뤘던 것입니다.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레미콘 차량이 침사지 설치를 위한 외부사석 투하작업용이자 TTP(일명 삼발이, 방파제 등에 설치하는 콘크리트 구조물) 제작용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공소장 내용에 의거해서 보더라도 당시 레미콘 차량은 방파제 공사를 위해 불법적으로 동원된 차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당한 업무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4.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최근 정치권과 온 국민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으며, 심각한 국론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론분열을 심화시키는 본질적인 원인은 군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책사업이란 명분을 내세워 공권력을 동원하여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제주해군기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간 450여명의 연행과 구금, 19명의 구속, 수억원에 이르는 벌금, 수십명의 부상자 발생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 강정마을에서 주민들과 평화운동가, 심지어 성직자에게까지 자행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악순환에 빠지게 할 뿐입니다.
5. 피고인은 재판장님께 별도의 의견서를 통해 5점의 첨부자료와 3종류의 동영상이 담겨 있는 CD 1점을 제출하려 합니다. 의견서에 첨부된 자료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특히 과거 64년 전 4.3의 아픔을 겪은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도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게 될 것인지 공정한 입장에서 심사숙고하여 검토해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재판장님!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은 강정마을 주민들에게는 물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실현하고 강정마을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호하며 국방예산의 낭비를 막는 투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군축 실현의 중요한 고리가 되는 투쟁입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필요성에 대한 정부의 주장은 ▲북의 도발을 억제하고 해양영토 보호를 위한 기동전단 수용기지 건설, ▲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 확보 절실, ▲기존 기지들은 기동전단 수용이 부적합 하므로 추가기지 건설 이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과 제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해군 스스로 밝힌 기지 위치 선정원칙인 지리적 인접성과 배치됩니다. 또한 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 확보 때문이라는 주장도 해양 분쟁에 군이 나서지 말라는 유엔의 권고에 배치되며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해상봉쇄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논거가 군색합니다. 또한 말라카 해협 등 아시아지역에서의 해적 발생 빈도는 저감·안정화되고 있으며 해적이 출몰한다 해도 일일이 이를 해군력으로 제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오히려 외교적 문제만 야기할 뿐입니다. 또한 해저자원의 확보 역시 국가주권과 외교 역량이 좌우하는 것이지 해군기지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며 군의 개입은 군사적 긴장과 대결만 초래할 뿐이고, 이는 결국 동북아 주변국가의 끊임없는 군비경쟁으로 귀결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2)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해군전략에 편입되는 과정으로서 ‘안보 실현’은 커녕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안보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9.11이후 미군은 ▲해양타격(Sea Strike), ▲해양방어(Sea Shield), ▲해양기지화(Sea Basing)의 3대 해양전략을 담은 ‘해군력 21’이라는 군사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중 ‘해양 기지화’ 전략은 “해양으로부터 공세와 방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주둔국에 제한받지 않고 배치와 철수가 용이(flexibility)한 해양기지를 구축할 방안을 마련한다”는 의미입니다. 전 세계 동맹국의 본토나 섬에 고정된 해공군기지를 두지 않고도 미국본토와 하와이, 괌 같은 전략적인 허브기지에서 항공모함과 이지스함, 핵잠수함을 핵심전력으로 하는 일정 규모의 기동전단을 세계 각지에 파견함으로써 전 세계의 바다를 해양기지화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우방국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군수지원이나 단순한 기항지만을 제공받고도 얼마든지 연안작전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미 해군은 기항지만 보장된다면 제주도 서남방 해양에서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이지스함을 동원하여 중국을 바다로부터 봉쇄하고, MD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은 이라크, 아프간 전쟁으로 자국의 군사력 운용이 어려워짐에 따라 동맹국의 해군력 동원을 극대화하여 미국 주도의 제해권을 유지하려는 해양전략을 펼치고 있고, 이를 보장하는 것이 이른바 ‘글로벌 해양 파트너십’입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이후 2009년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선언하고 ‘지역·세계안보 수요’에 공동대처하기로 하면서 한미동맹의 지역적·지구적 협력, 특히 해양에서의 협력을 더욱 구체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 해군이 표방하는 해양안보론과 대양해군정책은 미국의 해양패권전략과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해양에서의 안전과 협력을 확대하기보다 미국과 다른 역내 국가들 간 갈등을 유발하고 해양의 군사화를 촉진시키는 위험한 정책이자 미국의 해양패권 추종론에 다름 아닙니다. 현재 제주해군기지는 기동전단 수용기지로 건설되고 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이 한국군사시설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제주해군기지는 미군의 기동전단이 사용하는 기항지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미국은 전략적 중심축을 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고 있으며 이미 해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더 많은 해군기지와 기항지 확보가 절실한데 오키나와의 경우 대부분의 기지가 공군기지와 해병대 기지이고 3천톤 이상의 선박을 정박시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지스함 등 대형함정 20척 및 15만 톤 급 크루즈2척의 동시 계류가 가능한 대규모의 기지로 계획된 제주해군기지는 결국 중국을 겨냥한 군사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동아시아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필연적으로 중국과 군사적 갈등에 휘말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재판장님!
피고인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고 있는 현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북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북의 남침에 대비한다고 하면서 왜 최남단인 서귀포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지, 민군복합관광미항이라면서 왜 민은 배제하고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을 적으로 대하는지, 강정마을 중덕해안을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해놓고 왜 환경파괴에 적극 나서는지, 평화를 깨뜨리면서도 여전히 평화를 지킨다고 말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강조하는 ‘한반도의 평화’가 폭약과 중장비를 동원하여 구럼비 바위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전쟁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라면 피고인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백지화 될 때까지 목숨 걸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의 모습은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양심의 눈으로 균형있는 판결을 하라”는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사법부는 강정 해군기지와 관련해서 너무나 편파적인 판결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법치주의의 근간이 무너질 것입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피눈물을 쏟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피눈물을 닦아주는 정의로운 판결을 호소합니다.
지난 밤 총선결과를 애타게 지켜보며 크게 상심하셨을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함께 “그래도 끝까지 싸우자”는 말씀을 전하면서 최후진술을 마칩니다.
2012년 4월 12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재판장님 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