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1]강정마을 소식-4.3항쟁계승 전국노동자대회,송강호 박사 폭력불법연행 등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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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1] 강정마을 소식 ㅡ 4.3 항쟁 계승 노동자대회, 송강호 박사 등 9명 연행 등
4월 1일 아침 일곱시부터 기지사업단과 공사장 정문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구럼비와 강정의 평화를 기원하는 백배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노동자대회가 예정되어있어서 그런지 오늘은 폭파가 없었습니다. 대신 엄청난 경찰병력이 마을에 깔렸습니다. 경찰 1500명이 최대규모로 육지에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코사마트 사거리에서 경찰에 항의하며 버스를 막아선 지킴이 여덟명이 순식간에 연행되었습니다.
열시부터 강정천 운동장에서 4.3항쟁 계승 노동자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공무원노조 등 육백여명위 노동자 동지들이 참석했습니다.
한라산이 또렷이 보이는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구럼비 가기 좋은 날입니다. 오늘 모든 분들이 구럼비를 가서 구럼비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구럼비 바위에 누워 있으면 아주 작은 소리, 우리 몸의 혈관처럼 바위 틈틈이 졸졸 흐르는 용천수 소리가 구렁구렁 들립니다. 햇빛 따뜻한 바위에 누워 물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 듣고있으면 이게 평화다라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해군과 삼성 대림이 불법과 폭력으로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만 우리는 노래와 춤으로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대회사를 했습니다. "제주 4.3사건 비극의 복사판인 제주해적기지 저지하기 위해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민간인 사찰 폭로로 이명박정권의 지난 4년간의 행적이 빙산의 일각으로 폭로되었다. 부도덕한 정권 심판이 4.3정신계승의 첫번째다. 해군기지 만들면서 수많은 사기를 쳤다. 관광미항이라고? 지구상에 아름다운 미군기지가 세상에 어디있은가? 구럼비를 그대로 두어라!! 제주 영리병원 막아내고 FTA폐기, 정권심판하자! 주민들과 함께 굳게 맞잡은 손 놓지 않고 투쟁하자!"
제주본부 본부장이 투쟁사를 했습니다. "지금 여기는 전쟁의 현장이다. 자본과정권과 99% 전쟁이 5년간 벌어지고 있다. 바리게이트를 걷고 구럼비을 점령하고 해군기지 저지하고 강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바로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다. 오늘 투쟁에 결의가 아닌 실천으로 함께하겠습니다. 민주노총이 나서면 해내고야 만다는 것 보여주겠다."
신나는 신자꽃밴 공연이 있었고, 고권일 주민대책위원장은 "구럼비는 이 땅의 가장 신음하는 상징이 되었다. 미소간의 강대국들이 이 국토를 분단시키려할때 제주 주민들이 이 땅의 주인은 우리다라고 했다고 제주도민을 무참히 학살했다. 또다시 이 땅은 모든 주권을 미국에 내주고 침탈과 굴종의 역사를 되풀이 하려한다. 미중간 틈에 끼어 전쟁의 불씨가 될 해군기지를 안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다. 해군기지 막아내는 길은 4.3의 재연을 방지하고 민중주권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안있어 4.3입니다. 이곳 강정마을에도 4.3희생자분들이 많습니다.
노동자들과 함께 외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면 된다. 우리는 해냈다! 질긴놈이 이긴다! 독한놈의 이긴다! 세계의 평화는 강정에서부터!"
보건의료노조 언론노조 조합원이 결의문을 낭독했습니다. "4.3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한미FTA폐기, 공공기관 민영화 및 영리병원 저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내기 위해 적극 투쟁하자"
노동자 대회가 열리는 도중에도 수명씩 공사장 정문과 사업단 정문을 지켰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같이 현수막도 만들고 율동도 배웠습니다.
대회를 마치고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포구로 가면서 일부 대오는 마늘밭쪽 펜스로 내려가 구럼비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해상에서도 카약을 타거나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구럼비로 향했습니다. 해군이 불법으로 쳐 놓고 서귀포시의 철거 명령에도 철거하지 않은 동방파제까지 가는 길도 불법으로 길을 막는 경찰들때문에 수월하지 않았지만 한명씩 한명씩 동방파제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참가자가 동방파제까지 가서 구럼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동방파제를 통해 구럼비로 들어가는 사람이 삼십명이 넘었습니다. 건설사와 해군은 침사지 벽에도 두세겹의 철조망과 삼발이를 쌓아놓아서 이전보다 구럼비까지 가는 길이 훨씬 험난 했지만 말대로 가시철망에 옷이 찢기며 거대한 삼발이를 암벽등반 하듯 타며 팔순의 문정현 신부님, 박상희 목사님 등이 구럼비에 갈 수 있었습니다. 김 모회원은 밤새 구럼비에 남아 있다가 새벽녁에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구럼비로 가신 분들 중에 철망안으로 들어간 송강호 박사님 등 네분이 연행되었습니다. 구럼비는 공유수면으로 출입금지구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경찰도 아닌 해군이 군용트럭을 이용해 이들을 연행한 것입니다. 전시도 아니고 계엄도 아닌데 해군의 행태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나머지 분들은 우여곡절 끝에 풀려났지만 송강호 박사는 연행과정에서 경찰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했습니다. 성곳니가 부서지고 목 부근 얼굴쪽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목숨에 위협을 느꼈다. 너무 두려웠다"고 응급실로 실려 간 송박사가 말했습니다. 지난번 해상에서 특수부대원들에게 살인적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는데, 해상시위의 핵심 역할을 하는 송박사를 특히 더 노리고 있다가 불법연행과 폭행을 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