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5] 기고_안철수 후보께 드리는 고언(오마이뉴스, 고영대 상임연구위원)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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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께 드리는 고언
- 귀하는 미래 대통령을 표방하지만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바라보는 눈은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
평화․통일연구소 고영대 상임연구위원
안 후보가 흘린 눈물의 진정성은 어디까지?
안 후보께서는 지난 2일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하여 “…파괴와 폭력의 역사를 넘어 평화의 역사를 써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눈물에 “새로운 미래를 향해”(출마선언문) 나아가고자 하는 귀하의 진정성이 담겨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귀하의 진정성은 같은 날 방문한 강정마을에서 반토막 나고 말았습니다. “주민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제가 대통령이 되면 … 사과드리겠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이념도 성격도 다른 지난 정부들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며 정작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앞뒤가 맞지 않은 이중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강정에서는 여전히 해군과 경찰, 삼성․대림에 의한 ‘파괴와 폭력의 역사’가 써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계속되는 한 ‘평화의 역사’를 써나가겠다는 후보님의 약속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과거 4․3항쟁 당시의 파괴와 폭력 못지않게 4․3의 축소판인 강정마을에서 현재 자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자행될 ‘파괴와 폭력’에 대해서도 가슴 아파하고 이를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지 않는 한 후보께서 지향하고자 하는 “미래 가치”(출마선언문)란 그저 빛바랜 선거용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안 후보는 너무 섣불리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어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귀하의 근거 역시 과거의 “낡은 체제”(출마선언문)에 기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주해군기지는 후보께서 지적하신 대로 건설 과정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는 한 그 어떤 사업도, 설령 국책사업이라고 할지라도 정당성을 갖지 못합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마을 주민과 도민, 나아가 국민들의 정당한 의견수렴도 없이 국책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정부와 거대 자본이 불법과 폭력을 앞세워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낡은 체제”의 전형입니다. 그런데도 후보께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정당화하고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낡은 체제”의 유산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으로, 결코 미래 지향적 태도가 아닙니다.
후보께서는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김영삼 정부부터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서로 관점이 다른 4개 정부가 판단하고 같은 결론을”(『안철수의 생각』, 219쪽) 내렸으니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위 국책사업, 그것도 일국의 안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한 귀하의 편의적이고 피상적인 접근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일국의 안보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대통령 후보라면 스스로의 정책 판단을 통해 과거 정권의 정책에 대한 책임 있는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낡은 체제와 미래 가치가 충돌하고”(출마선언문) 있는 대한민국을 “미래 가치”로 인도하는 최소한의 전제입니다. 그런데도 후보께서는 제주해군기지 필요성에 대한 그 어떤 독자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과거 정권들의 판단에 기대어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후보께서는 자신이 주창하는 “미래 가치” 속에 제주해군기지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 밝혀야 합니다.
김영삼 정부 이래 역대 4개 정부가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하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 땅의 보수․수구세력으로부터, 특히 군과 안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후보께서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두 정부가 보수․수구세력의 아성인 국방부와 군을 개혁하는 데 실패했던 사실로부터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탈냉전 이후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적을 내세워 자신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대중 포위 전략과 이에 편승한 해군의 대양해군 건설이라는 이해가 맞아떨어져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1993년)되면서, 이러한 미국의 냉전적 이해가 “서로 관점이 다른 4개 정부”에 관통되어 작용해 왔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렇듯 제주해군기지는 국내외 보수․수구세력의 이해를 반영하여 제기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의 필요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그들의 냉전적 사고와 “기득권 보호”(출마선언문)에 동참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안 후보는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균형된 관점을 가져야
한편 후보께서는 역대 정부가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대해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국가안보 관련 자료와 근거들을 가지고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내렸을”(『안철수의 생각』, 219쪽)” 것이라면서, 이번 강정 방문에서도 “고급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역대 정부의 정책 판단을 따르는 이유를 고급정보의 부재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귀하의 추정은 그동안 해군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주장으로, 다소 엉뚱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설령 당국이 그 어떤 고급정보(?)를 근거삼아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더라도 그 정보는 국책사업에 반영되고 국민 앞에 정책으로 객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고급정보라는 것을 몰라도 국민은 정부가 제공하는 저급정보(?)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정부 정책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안 후보께서는 정체 모를 고급정보의 부재를 내세우며 책임 있는 정책 판단을 포기하고 역대 정부의 정책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녕 고급정보를 가져야 정책 판단을 할 수 있다면, 국민은 그 어떤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판단과 평가를 유보하거나 귀하처럼 정부 정책을 무조건 추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말씀을 듣고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다”는 귀하의 이야기는 그저 주민들 듣기 좋으라고 한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고급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 정책 판단을 한다는 말입니까?
안 후보께서 진정으로 고급정보에 접할 수 없어서 정책 판단을 할 수 없었다면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앞뒤가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안 후보께서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에 섣부르게 기우는 것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기본적으로 정부의 발표를 믿”(『안철수의 생각』, 159쪽)고 보는 것처럼,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사실적 접근 이전에 귀하의 관점이 이미 정부 쪽 주장으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은 아닌지요? 이는 귀하가 강조하는 ‘균형’(출마선언문)이 아닙니다.
안 후보는 제주해군기지가 군사적 측면에서 전혀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제주해군기지 필요성에 대한 정부의 근거는 바로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사업 목적으로 내세우는 남방해역 및 해상수송로 보호 등입니다. 그러나 남방해역과 해상수송로를 둘러싼 주변국들과의 갈등은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에 역대 정권도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해 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군사기지를 짓고 첨단무기를 들여와 무력으로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군비 확장→대결 확대→군비 확장’으로 이어지는 냉전시대의 전형적인 악순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장하고, 안보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위태롭게 만들 뿐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이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남방해역에 주변국들보다 기동력 있게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목포 3함대 기지에서 출동하더라도 이어도를 포함한 남방해역에 일본이나 중국 함정들보다 빨리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센카쿠 열도나 난사군도 등 동․남중국해는 우리 해군에게는 원양작전이 되어 이 지역에서 근해작전을 수행하게 되는 중․일 해군에 전략․전술적 열세에 처하게 됨으로써 제주해군기지에서 몇 시간 빨리 기동한다고 해도 군사적 의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말라카 해협이나 호르무즈 해협에 해군 함정을 파견하는 데는 목포에서 출항하든 제주에서 출항하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 같은 제주해군기지 무용론은 약간의 군사적 상식만으로도 얼마든지 알 수 있으며, 정부가 그 어떤 고급정보를 들이밀더라도 바뀔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안 후보께서는 이에 대해서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안 후보는 개발독재시대의 막가파식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용인하려는가?
이밖에도 제주해군기지는 기지 건설로 인한 마을공동체 붕괴, 환경․생태계․문화재 파괴, 함정과 선박의 접․이안과 입출항시 안전사고 위험 등 군항으로서도 민항으로서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운 문제부터 최근 케이슨 불량 제작에 따른 방파제 부실시공 문제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는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막가파식 개발과 건설의 폐해가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주해군기지 필요성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떠나 조금이라도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서 일단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에 강동균 마을회장이 수차례에 걸쳐 후보님에게 공사 중단 입장을 표명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드렸습니다. 그러나 후보님은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마을 주민과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균형’ 감각을 잃은 후보님의 행보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막가파식 건설로 인한 폐해를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안 후보는 제주해군기지의 백지화를 공약화함으로써 ‘미래 가치’를 실현해야
안 후보께서는 대선에 출마하면서 한 작가의 말을 인용하여 “미래는 이미 와 있다”고 갈파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취한 입장에서는 미래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저 “낡은 체제”의 망령과 잔재만 보일 뿐입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에서 “미래 가치”를 찾는 길은 군사적 효용성도 없고 건설과정에서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제주해군기지를 백지화하는 데 있습니다. 안 후보께서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보다 균형된 관점을 찾고 구체적 사안들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성찰한다면,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문제들 속에 산적한 “낡은 체제”의 유물을 거두어 내기 위해서는 결국 제주해군기지를 백지화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안 후보께서 강조하는 바대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공감’을 나누며 ‘정의’가 세워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