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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8] “후텐마기지가 그렇게 좋으면 도쿄로 가져가라”- 일본의 강정 오키나와를 가다(한겨레)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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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4356.html
  • “후텐마기지가 그렇게 좋으면 도쿄로 가져가라”

    등록 : 2012.12.07 20:48수정 : 2012.12.07 21:10
    오키나와에서 미 해병 수송기인 오스프리(맨 위 사진)가 한반도까지 단번에 날아올 수 있는 후텐마 기지. 오키나와에서 만난 미국 총영사는 “안보 측면에서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걸 한국 사람들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르포 2
    일본의 강정, 오키나와를 가다

    지난달 28일, 미국이 군사적 요충지로 손꼽는 오키나와에서 제주를 떠올렸다. 중국 <신화통신>은 제주를 “전투기로 두 시간 이내 인구 500만명 이상의 동북아 18개 도시에 닿을 수 있는 전략요충지”라고 표현한 적 있다. 37개의 미군기지가 전쟁을 예비하고 있는 오키나와도 원래는 제주도처럼 돼지를 키우며 무기 없는 공동체를 일군 평화의 땅이었다. 민·군 복합항이라고도 불리는 제주해군기지는 현재 미군 핵잠수함과 항공모함에 맞춰 건설중이다.
    지난달 28일 오키나와의 아침, 비가 내렸다. 거친 바람에 흐드러졌던 아열대 야자수의 가지가 춤을 췄다. 그 와중에도 쪽빛의 바다는 은빛물결을 잃지 않았다.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 않는 저 멀리로 엉덩이에 불을 단 F-15가 굉음과 함께 솟구쳤다. 가데나 미공군기지의 3.3㎞ 활주로를 내달은 F-15는 행선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가데나 기지는 총면적 445㎢, 오키나와의 남북을 가르는 중앙부에 위치해 섬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나마 섬의 절반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아열대 우림이다. 제주도 면적 3분의 2 정도 크기인 작은 섬, 미군은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유사시 전투기 2000대가 한국으로 몰려온다
    그 너른 기지의 활주로가 항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비 오는 활주로에 F-15 두 대가 이륙을 준비하는 동안 활주로나 지평선이 보일 듯 너른 개활지는 텅 비어 있었다. 비어 있다는 것은 태평양을 둘러싼 어느 곳도 ‘아직은 평화’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곳에 짙은 회색·녹색의 군용기가 운집하는 순간, 그것은 전쟁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그래서일까. 군산비행장 5배인 이 기지가 운용할 수 있는 군용기의 수는 비밀이었다. 그저 지금 100여대의 군용기가 이용하고 있다는 것만 확인된다. 미 공군 해외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다.
    남의 일이라는 듯 크로닌 소위는 얄궂게 “한반도 유사시 전투기를 포함해 2000여대가 가데나에서 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시간(항속기준)이면 우리 머리 위로 날아들어 영공을 까맣게 뒤덮을 수다. 대만, 중국, 필리핀 등 오키나와에서 동심원을 그려보면 동북아 주요도시들은 예외가 없다.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 폭력은 몸집을 부풀려 동북아 아열대의 작은 섬에서 정치를 만들고, 외교를 가공한다.
    브리핑을 맡은 미 공군 크로닌 소위는 “이곳에서 100년 동안 전세계의 분쟁지역으로 날아갔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에서 하늘을 지배했던 ‘쌕쌕이’도, 베트남의 밀림을 불태웠던 ‘팬텀’도, 이라크전·테러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F-15’도, 바로 지금 극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F-22’(랩터)도 이곳에서 날아올랐다. 지금 북한 로켓을 감시하기 위해 미국 네브래스카 본토에서 날아온 감시정찰기 ‘코브라 볼’(RC-135s)이 출격 대기 중인 곳도 바로 가데나 기지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오키나와를 ‘종석’(keystone)이라고 부른다. 주일미군 병력은 태평양함대사령부 예하의 7함대(1만1541명)를 포함해 5만명을 넘어선다. 주일미군의 핵심은 해·공군, 해병대를 중심으로 한 ‘신속’기동군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오키나와에 있다.
    가데나 기지만 전력의 핵심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지원하는 업무를 하는 유엔사령부 후방기지로 화이트비치와 후텐마가 있다(총 37곳). 화이트비치 기지는 매해 260여척의 해군함이 드나들고, 미국만이 아니라 태평양에서 합동작전에 참가하는 군함의 연료를 대는 병참기지다. 탄약고 81곳에서 전쟁에 필요한 1000만발 이상의 탄약을 공급하는 물자의 창고이자 비행장이기도 하다. 후텐마 기지는 미 해병 기지로, 24명의 완전무장한 최정예 해병을 태우고 한반도까지 단번에 날아가는 수송기 오스프리가 배치된 곳이다.
    “솔직히 (오키나와 미군 주둔을) 한국 사람들은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같은 날 오키나와 미국 총영사관에서 만난 앨프리드 마글비 총영사는 “식문화와 복잡한 역사를 생각하면 한국과 오키나와는 닮았다”고 말했다. “안보 측면에서 오키나와에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 일본에서는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이어갔다. 한반도에서의 유사 상황이 생기면 곧바로 출동할 수 있는 전력이 바로 오키나와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군도, 미국의 외교관도 ‘컨틴전시’(contingency·만일의 사태)라는 단어를 반복해 말했다.
    오키나와의 미군정 경험, 주둔군지위협정 문제, 기지이전 문제 등은 우리가 모두 겪어온 질곡의 궤적 그대로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처음으로 물과 연료를 얻기 위해 들어온 이후로 30년이 안 돼 일본은 오키나와를 본토의 현으로 복속시켰다. 일제강점 당시 우리말을 쓰면 벌점을 주듯 오키나와 말을 없애기 위한 일본의 노력도 있었다. 2차대전을 맞이했을 때도 오키나와는 완전한 일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총영사는 “태평성대에 미국이 들어와서 망쳤다는 피해의식이 있다”며 “그중 가장 큰 것이 1945년의 기억이다. 미국은 당시 전쟁에 대한 조바심이 있었고 군사적 거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철의 폭풍’이라는 미군의 작전 속에 군인을 제외한 민간인 15만여명이 680만발의 총탄 속에 희생됐다.
    오는 23일 ‘오스프리 배치 반대 및 미군 병사 일본 여성 성폭행 규탄 대행동’을 준비하는 평화운동가 네 사람. 다카하시 도시오(오른쪽부터), 오키모토 히로시, 도미타 에이지, 도미야마 마사히로(휠체어 탄 이).
    제주보다 작은 섬 미군기지 37개
    한국, 베트남, 이라크전으로
    이곳에서 전투기가 날아올랐다
    북 로켓 감시정찰기 ‘코브라 볼’
    사고뭉치 수송기 ‘오스프리’도
    이곳에서 출격을 준비중이다 
    군용기 사고, 장갑차 사고, 성범죄…
    미군기지 때문에 불행하고
    위험하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9월 오스프리 반대 집회엔
    10만명이 운집해 기지를 에워쌌다
    “한반도로 단번에 날아갈 오스프리 몰아내자”
    그 희생과 황폐화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무기 없는 공동체 속으로 일본군이 왔고, 미군이 왔고, 이번엔 그렇게 모인 무기들이 한반도에서 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전쟁의 도구로 쓰였다. 미군기지 인근에서 벌어진 군용기 사고, 장갑차 사고, 미군 성범죄 등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미군기지 때문에 불행하고 위험하다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총영사는 “일부 주민들은 미군기지가 사라지면 태평성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무기를 갖고 있지 않은 왕국, 나폴레옹이 이상한 나라라고 말한 기록이 있는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향수를 주민들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문제의 분기점은 1995년이다. 당시 미 해병의 성범죄가 일어났고, 미-일 합의로 인구조밀지역에 있던 미 해병대 비행장인 후텐마 기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17년 동안 기지 이전은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내에서 옮겨야 한다는 절충안이 나왔다. 총영사가 “반대하는 소수”라고 말했지만, 이는 이방인의 시각이다. 후텐마 기지에서 기지반대운동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는 기록적이다. 지난 9월 오스프리 배치 반대 집회에는 10만명이 넘는 주민이 운집해 후텐마 기지를 에워쌌다. 오키나와에서의 미군기지 문제가 1995년 미 해병의 성범죄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고 얘기하는 것 또한 미국 엘리트 외교관의 시각이다. 미군이 상륙했던 1945년, 그 뒤로 무기 없는 오키나와, 평화로운 남도를 위한 운동의 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오스프리를 몰아내자!”
    같은 날 오키나와 나하시 교육복지회관을 찾았다. 200여명이 모여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오키나와의 평화운동단체, 장애인단체, 여성단체, 지역 노조, 교원단체 등의 대표자가 모인 ‘오스프리 배치 반대 및 미군 병사 일본 여성 성폭행 규탄 대행동 실행위원회 결성 총회’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12월23일 오스프리 운용 반대, 미군기지 이전을 주장하는 주민들의 뜻을 모아 2만명이 후텐마 기지 정문을 행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오키나와 지역 텔레비전과 지역 신문도 취재중이었다. “안전하다”는 미 당국자나 일본 정부 관계자의 설명과 달리 오스프리의 사고는 알려진 것만 최근 7차례다. 특히 후텐마 기지는 활주로 너머로 곧바로 민간인들이 살고 있어 위험성은 더 크다. 주민들이 기지 이전 반대운동이나 오스프리 배치 반대운동에 공감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를 넘어선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후텐마 미군기지 폭음소송단 사무국장 다카하시 도시오(59)와의 인터뷰는 약속시간보다 한시간여가 지체됐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열띤 토론 때문이었다. 현장에서는 질문자를 위해 준비된 마이크 앞으로 지역 공무원노조, 교원단체, 평화운동단체, 학생 등 세대, 정파, 성별을 아우르는 대기자가 끊이질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소개한 도미야마 마사히로(57), 평화활동가 도미타 에이지(63), 통역안내사 일을 하는 오키모토 히로시(66) 등과 자리를 함께했다.
    “이제 미군기지 반대를 넘어 자치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는 더이상 미군의 것도, 일본의 것도 아닌 오키나와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리는 “원전이 그렇게 좋다면 원전을 도쿄로 가져가라”라는 주장과 논리를 같이한다.
    “원전처럼 미군기지도 도쿄로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미군이 평화를 지켜준다면 오키나와가 아니라 도쿄로 기지를 옮겨가서 한번 겪어보면 알 것입니다. 전쟁도, 그로 인한 상처도.”
    다카하시는 단호했다. 하지만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비해 말이 많지 않았다. 그가 낡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팸플릿을 꺼냈다. 제주, 강정, 낯익은 단어들이 보였다. “제주도도 걱정입니다. 오키나와와 제주도는 닮았습니다.”
    35년간 싸운 평화운동가… 소음소송에서 승리
    국영통신사 직원인 도미야마도, 뒤늦게 대학에서 오키나와 지역학을 공부중이라는 도미타도 한국에 대한 인연이 남달랐다. 지난 9월 세계자연보전 총회에서 ‘동아시아 미군기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심포지엄’ 발표자로 입국하려 했다가 인천공항에서 강제추방당한 것이다. 다카하시는 “10번을 방문했지만 아마도 지난 2월 해군기지 건설반대 투쟁 때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한 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네 사람은 앞다퉈 오키나와의 상황을 설명했다. 오키나와에 대한 설명은 미 총영사의 것과 사뭇 달랐다. 미군기지 반대운동은 진보·보수를 포괄했다.
    그의 차에 올랐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사이 후텐마 기지 옆을 지났다. 낮이면 오스프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기지는 이미 어둠에 싸여 있었다. 매일 정문과 후문에서 평화운동가 10여명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운동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35년요.”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죠.”
    다카하시는 환하게 웃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오키나와로 온, 말하자면 그도 본토 사람이었다. 평화운동, 장애인운동에 헌신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말 뒤로 한참의 침묵이 이어졌다. 선문답 같은 그의 말과는 달리, 다카하시가 이끈 평화운동은 후텐마 기지 이전 약속을 이끌었고, 미군기지에서 발생하는 소음(폭음) 소송을 승리했다.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민간인 지역에 가까운 쪽에 전투기가 날지 않는 것도 모두 이들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신독재가 한창이던 때 한국에 처음 갔었죠. 기억이 선합니다. 벌써 그 딸이 대통령 후보네요.”
    박근혜라는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며 이어간 한국에 대한 각별한 기억들은 그의 시선이 지역에 머물지 않고 평화라는 대의를 향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와 손을 맞잡고 다음 기회를 약속했다. 오키나와에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12월 초부터 오스프리를 본격 운용할 것이다.”
    다음날 29일, 모리모토 사토시 일본 방위상의 얼굴이 오키나와 지역 방송 첫 꼭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뒤따른 보도는 미 공군기지의 폭음(소음) 시연이었다. 화면 안에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참가자들의 표정이 생생했다. 미군기지와 관련된 뉴스는 이어졌다. 교통사고를 낸 미 해병이 체포됐다는 소식이었다. 같은 시각, 주민들이 본토라고 부르는 도쿄에서는 오키나와와 관련된 뉴스는 나오지 않거나 단신으로 처리됐다.
    한편, 6일 현재 후텐마 기지의 오스프리는 시험운용을 마치고 현재 본격적으로 작전에 투입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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