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도입, 군수물자 조달, 군시설 공사 등의 업무를 총괄적으로 다룰 ‘방위사업청’(가칭)이 내년 1월 신설되는 등 국방획득제도가 크게 바뀝니다.
한때 획득청으로 알려졌던 방위사업청은 인력의 60% 이상이 공무원과 민간인으로 채워집니다. 또 특정 기업만 방위산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던 방위산업 전문화·계열화 제도가 2007년 폐지됩니다. 이는 전차·함정·항공기 등 각종 방산물자 조달이 사실상의 수의계약에서 완전 경쟁체제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방산업계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사안입니다.
국방획득(獲得)제도의 개선은 군의 문민화, 무기 도입의 투명성 강화 등 현정부 국방 개혁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국방비의 절반인 연간 10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무기·군수물자 구입 과정에서 비리가 끊이지 않자 이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무기·군수물자 구매체계 전반에 대해 처음으로 큰 ‘수술’을 한 것입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국방획득제도 개선 방안 보고회를 주재하면서 “국방획득제도 개선은 본래 부패 방지제도, 부패 방지 방안의 일환으로 출발했다”며 군내 비리가 이번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됐음을 밝혔습니다. 이번 획득제도 개선은 이날 보고회를 통해 확정됐습니다.
이번 개선안의 핵심은 종전 군이 ‘독점’해오던 무기 소요 판단부터 기종(機種) 선정까지의 모든 과정을 군(軍)과 민(民)이 적절히 나눠 갖도록 해 상호 견제토록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기종 선정 등 주요 정책 결정은 민이 주도하고, 사업 관리는 전문성과 무기체계 운용 경험을 살려 군이 담당, 문민 엘리트 중심으로 운용한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무기·군수 조달 관련 인력 2500여명 중 일반직 공무원은 5%(12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현역·군무원·연구원 신분입니다. 이것이 현역 대 민간인 비율이 4대 6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일각에선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한다고 하니까 과연 그럴 만한 민간 전문가가 있는가, 비전문가가 일을 망치지 않겠는가 라고 우려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기존의 군 획득관련 기관 및 부서 인원들이 소속만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초대 방위사업청장(차관급)의 경우도 민간인이 임명될 예정인데 그렇다고 대학교수 등 순수 민간인보다는 획득 분야에서 전문성과 도덕성을 인정받은 예비역 장성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금년초 전역을 앞둔 현역소장 A씨 등이 초대 획득청장으로 군내에서 거명되고 있다.
무기체계 소요 제기 기능은 각군과 합참이 변함 없이 갖게 되지만 군 전력 증강 5개 년 계획인 ‘국방 중기 계획’은 앞으로 방위사업청이 짜게 된다. 방위사업청 신설에 따라 조달본부를 비롯, 국방부 획득실장과 획득정책관실, 연구개발관실, 분석평가관실, 육·해·공 각군 전력개발단, 조함(造艦)단, 항공사업단, 지휘통제(C4I) 사업부서, 국방품질관리소 및 국방과학연구소, 합동참모본부의 일부 부서 등이 통·폐합됩니다.
즉 조달본부 등이 방위사업청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또 육군 위주의 의사 결정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방위사업청과 합참 내 무기 소요 관련 보직에 육·해·공군을 1대1대1로 맞추기로 했습니다. 국방대학교 내에 국방획득대학(가칭)을 설립하고, '국방 획득 및 방위산업 육성 등에 관한 법률'(가칭)도 제정됩니다. 국방획득대학은 기존의 획득교육 과정을 발전시킨 것으로 정식 대학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획득 병과의 신설도 계속 거론되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방위사업청은 조달본부 등이 맡아왔던 일반 군수물자 중 정부 물자와 조달원(업체)이 동일한 의약품, 일반 장비, 피복류 등을 조달청에 위탁 구매토록 하고, 30억원 이상 대형 공사 계약 업무도 조달청에 이관하게 됩니다. 조달청에 이관해 비리 소지를 줄인다는 것인데요, 이에 대해 군내에선 일부 냉소적인 반응이 있습니다. "민간에 넘긴다고 무조건 비리가 없어질 줄 아느냐. 오히려 군이 맡았을 때 상대적으로 비리가 적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식의 반응이지요. 한 관계자는 "군 조달업무를 민간 부문으로 넘긴 뒤 군에서 맡았을 때보다 더 많은 비리가 적발된 전례가 있다. 앞으로 군의 '억울함'이 입증되기를 바란다"고 하더군요.
1983년부터 시행돼오다 24년만에 폐지될 방위산업 전문화·계열화 제도는 방산업체에서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안입니다. 상당수 기존 방산업체들은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작용과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정부 당국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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