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78년간 이어진 '삼중의 외면' 한국원폭피해자 1·2세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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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금지조약(TPNW: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2차 당사국회의가 11월 27일(월) 개막했습니다. 평통사는 11월 27일(월) 오전 11시 30분부터(현지시간) 유엔본부 컨퍼런스룸 A에서 ‘정의를 위한 외침 : 한국원폭피해자와 원폭국제민중법정 최근 현황’을 주제로 사이드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관련 경향신문에서 보도된 기사를 게시합니다.
[경향신문] 78년간 이어진 ‘삼중의 외면’···한국 원폭 피해자 1·2세의 눈물
한국인 원폭 피해자 한정순씨(가운데)와 이기열씨(오른쪽)가 지난달 2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핵무기금지조약(TPNW) 제2차 당사국 회의의 부대행사에 참석해 증언하고 있다. ICAN(핵무기폐기국제운동) 제공 (사진출처: 경향신문)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1945년 8월, 한정순씨(64)의 어머니는 임신 중 피폭을 당했다. 다음 해 낳은 아들은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숨졌다. 이후 태어난 한씨와 남매들은 그렇게 한국인 원폭 피해자 2세대가 됐다. 고통은 대를 넘어 이어졌다. 한씨의 아들도 태어나자마자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한씨는 “원폭 피해 3세대인 아들은 평생 일어나보지 못하고, 신발 한 번 신어보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야 한다. 원폭 피해 1세대부터 3세대의 굴곡진 삶이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주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씨를 비롯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 5명은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1일(현지시간)까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핵무기금지조약(TPNW) 제2차 당사국 회의에 참석해 원폭 피해 상황을 증언했다. 경향신문은 핵무기의 위험성을 강조한 원폭 피해자 1세대 이기열씨(78)와 2세대 한정순씨, 이태재씨(64)를 지난 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세 사람은 누구도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원폭 투하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5개월 난 갓난아기였던 이기열씨는 “우리는 3중의 피해자다. 미국의 원폭 투하, 일본의 식민 지배, 한국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78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1945년 원자폭탄에 피폭된 재일 한국인 수는 약 10만명으로, 이 중 5만명이 사망하고 약 4만3000명은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는 “이번에 미국에 와서 보니 ‘한국에 원폭 피해자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면서 “나조차도 가족들이 받을 시선이 걱정돼 대외적으로 원폭 피해자라고 말하기 시작한 지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고 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한국인 원폭 피해자 이기열씨가 핵무기금지조약(TPNW) 당사국회의 기간 열린 부대행사에 참석해 피폭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ICAN 제공 (사진출처: 경향신문)
이들은 후손들을 위해 핵의 위험성을 기억하고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한씨는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만이 전쟁이 아니다. 원폭 피해자들은 후손이 태어나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플 것을 두려워하며 보이지 않는 전쟁의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면서 “정부가 아픈 고통까지 대신 가져갈 순 없지만 사과와 책임, 배상은 인간된 도리로서 다해야 한다”고 했다. 이기열씨는 “죽기 전 제일로 원하는 것은 ‘원폭 투하는 잘못되었다. 미안하다’는 사과”라며 “피폭에 대한 원죄적 책임이 있는 미국이 사과하도록 국제 민중법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 동포를 만났고 지난 9월 추석에는 원폭 피해 재일동포를 오찬에 초청했다. 그러나 원폭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가 지난 78년간 외면한 피해자들을 위해 노력할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1세대 피해자들은 그간 30여 번의 소송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의료비 지원을 받고 있지만 2세대 이하 피해자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씨는 “우리 정부는 2세대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우리를 초청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렇게 소외된 채로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것이 몸이 아파 겪는 고통보다 더욱 아프다”고 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핵무기금지조약(TPNW) 당사국회의에 참여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이태재씨. 본인 제공 (사진출처: 경향신문)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한·미·일 정부가 TPNW에 참여해 반전·반핵을 실천해야 한다고도 했다. TPNW는 핵 보유 예외를 인정한 기존의 핵확산 금지조약(NPT)과 달리 핵무기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2021년 1월 발효됐지만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등 핵 보유 5개국과 한국·일본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태재씨는 “한·미·일 정부는 평화를 운운하면서 군사 관계를 강화하고 전쟁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를 파기한 것도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행위인가”라며 “이들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선 현존하는 피해자들의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원폭뿐 아니라 핵실험과 원전 피해를 당한 전 세계 피해자들과 연대할 계획도 밝혔다. 이태재씨는 “이번 회의에서 마셜군도, 카자흐스탄, 몽골 등 세계 각국에서 온 3·4세대 피해자들을 만났고 핵실험 등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로 고통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다시 한번 핵은 절대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물질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핵이 세대를 이어 악영향을 미친다는 심각성을 더 알리기 위해 세계 피해자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기 위해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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