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4. 4] [오마이뉴스 기사 퍼옴]심층분석-한 가구당 1백만원을 보잉사에 지불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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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난장판같은 전투기 도입
국방부 기종결정 권한 박탈해야
<심층분석> 한 가구당 1백만 원을 보잉사에 지불하는 셈
김종대 기자 geong2002@yahoo.co.kr
좌절하는 청년장교들
영공에 대한 푸른 꿈을 안고 공군에 입대한 미래의 조종사들은 세계에서 퇴물전투기를 조종하는 '삼류군대'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F-15K 전투기를 도입하면서 세상 유례없는 행운을 누리는 세력이 있다. 한국 국민 1인당 13만4880원, 전체 5조8천억 원을 빨아들인 세력들이다.
먼저 공급회사인 미국의 보잉사의 경우를 보자. 예일대를 나온 시애틀의 목재업자 윌리엄 보잉이 세운 이 회사는 엄청난 조립라인에서 나오는 고용창출로 미국의 대표적 국민기업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보잉사의 경영난은 최악이다. 민항분야에서 여객기 판매감소, 군용기 분야에서는 미 국방부의 합동전투기사업(JSF)에서 보기좋게 탈락했다.
그나마 이런 악화된 경영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8년 3월 한국은 IMF 직후 금싸라기 같던 달러 20억 달러를 보잉사의 747 여객기 20대를 사는 데 지출하는 것을 선뜻 동의했다. 98년 3월, 김 대통령 미국 방문시 계약이 체결되고 나서 전세계 주문량이 급감하는 가운데도 한국으로부터는 매년 달러가 꼬박꼬박 송금되어 왔다.
1999년 한국 국방부는 보잉사의 아파치 롱보우 공격헬기 도입에 2조3천억 원, 역시 보잉사의 F-15K 전투기사업에 4조3천억 원의 예산을 국회로부터 승인받는다. 물론 예산승인 당시 기종이 보잉사 제품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었으나 계획 자체가 보잉사를 전제로 한 계획이었다.
이렇게 김대중 정부 5년간 한국이 보잉사 제품만 총 8조6천억 원 어치를 사주는 셈이 됐다. 물론 아파치 헬기 도입은 현재 유보된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해 "전 간부는 차세대 공격헬기 도입을 신념화하라"는 육참총장의 지휘서신을 고려할 때, 언젠가는 부활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보고 있다. 여기에다 그간 물가상승, 환율변동으로 차기전투기 사업비는 4조3천억 원에서 5조8천억 원으로 뛰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일개 한 회사가 한국에서 뽑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돈이 군수와 민수 합해서 10조1천억 원이다. 우리나라 한 해 국방비의 63%에 해당되는 규모다. 대한민국 국민 1인당 23만4800원을 보잉사에게 지불하는 셈이다. 한 가구당 1백만 원이다.
이러한 국부유출은 미국 방산 노동자 10만 명의 고용창출을 보장하고 그 가족까지 40만 명을 부양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같은 시기 우리의 대학 졸업자 4명 중 3명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매년 2천여 명에 달하는 항공관련 전공 졸업자들조차 국내 항공산업보다 외국업체를 우선시하는 군의 획득정책 때문에 갈 곳이 없다.
독점의 심화, 종속의 심화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필자는 다른 글에서 미국의 5개 방산재벌이 지난 10년간 한국 무기시장의 총62%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소수 군수 기업에 의한 독과점 구조의 형성, 그리고 이에 기생한 대미 국부유출 세력이 국방부 내 친미 실세 주류인맥을 형성하여 하부로부터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0년간 국방부가 대미 군사교역을 통해 미국에서 수입한 금액이 미국에 수출한 금액의 234배에 달한다는 사실도 밝힌 바 있다. 적어도 무기획득 정책으로 인해 국방부는 한국 국민보다 미국 국민을 30배 이상 더 먹여 살려 왔다. 이를 시정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대해 이들은 항상 국적이 의문시되는 퇴행적 사상과 논리로 자신들을 방어해왔다.
그러면 이렇게 미국 일변도로 무기를 도입한 결과 무엇이 남았는가. 국방부가 해외 무기도입을 하면서 절충교역(off-set)이라는 제도를 시행해왔다. 이 절충교역은 기술이전, 부품 역수출 등 각종 구매국의 혜택이 보장되는 제도다.
그러나 91년부터 97년까지 국방부의 절충교역 실적을 보면 총 무기도입 금액의 약30% 수준에서 미국과 절충교역이 이루어졌다. 반면 유럽국가인 프랑스는 50% 이상, 독일은 40% 수준, 영국은 40% 이상이다. 미국의 절충교역 비율이 가장 낮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보면 30%마저도 대부분 사양기술이다.
이 때문에 기술이전과 계약조건에 유리한 유럽제 무기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무기도입 다변화는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이래로 천명된 국방의 지고지선 가치다. 노태우 대통령도 미국과 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제 스팅거 미사일이 아니라 불란서의 미스트랄 미사일을 도입하고 미국의 집요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독일로부터 잠수함을 도입했다.
지금 김대중 정부의 친미 주류군맥은 그 당시와 비교해도 무소신, 무철학, 무능력의 관료주의 정치군인이다. 이번 F-15K의 경우 기술이전에서 절충교역 의무비율 미달(67%)로 인해 핵심기술 이전이 어렵게 되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은 우리 항공산업의 백년대계를 그르친 이적성 선택이다. 창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고 불려진 1991년의 한국형전투기사업(KFP)에서도 우리는 직구매 대비 10억 불을 미국에 추가 지급하면서까지 핵심기술 이전에 매달려왔다.
그러나 이번 F-X사업에서는 기술이전에 대한 평가 가중치를 5.51%에 국한시켜 기술이전으로 인한 기종선택 변별력을 말살시켰다. 약2백여 개에 달하는 평가항목으로 평가내용을 세분화시켜 핵심 목표를 식별하기 어렵게 하고 무엇보다 조작이 용이한 평가방법이 되고 말았다. 핵심 목표에 대한 명료한 지향성을 상실하고 수많은 항목으로 하향평준화되는 결과를 초래한 이 평가방식을 'AHP 방식'이라고 한다. 한국 항공산업의 미래를 암담하게 하는 최악의 평가다.
이러한 눈속임으로 진행된 기종평가에서 1단계에서 1.1% 앞선 유럽제 전투기 기종이 2단계에서 탈락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 확실시된다. 필기시험에서 1등을 하고 면접시험에서 탈락하는 격이다. 물론 유럽제 전투기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워낙 미국제 전투기가 고물인데다가 기술이전/계약조건도 엉망이어서 유럽제가 유리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러한 대국민 사기극이 천연덕스럽게 진행됨으로써 미국 중심의 일극주의 군사질서, 미국의 극소수 방산기업을 중심으로 한 독점구조의 심화가 불가피해졌다. 우리의 국가이익과 자주적 의사결정의 틀이 무너져버렸다. 그대신 미국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이라는 논리의 비약과 굴절이 나타났다. 미국식 패권주의를 무리하게라도 뒷받침하는 것이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실체라는 점도 드러났다. 이러한 기종결정은 1백 년 전 을사5적의 매국행위에 비견되는 현대적 의미의 식민정책이다. 이로 인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시장의 질서도 교란되었다.
무기도입, '도깨비 난장판' 같은 복마전
놀랍게도 이번 F-X 사업과 같은 난맥상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사례만 보자. 1991년 기종이 결정된 한국형전투기사업(KFP)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강압적 지시에 의해 미 제네럴 다이내믹스사의 F-16으로 기종이 결정되었다. 이 F-16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F-15, F-18 다음으로 고려한 세 번째 시나리오였다. 공군이 제일 기피했던 기종이다. F-16 기종선정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1993년 미 국방부는 F-16 추가구매 중단을 선언했다. 한국이 도입하니까 미국은 즉시 생산라인을 폐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뿐인가. 불법 로비와 검은 돈의 군 유입, 또한 이 검은 자금은 문민정부 대선자금으로 흘러가면서 문민권력 창출에 톡톡히 한몫 했다. 이렇게 기종결정을 하자 공군은 좌절했고 뒤이어 문민정부 출범 벽두에 전직 공군참모총장의 양심선언이 터져나왔다. 이때만이라도 군의 무기도입 문제점을 제대로 개혁했더라면 F-X 사업에서와 같은 난맥상은 재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1991년 군은 이미 생산이 중단되어 라인이 폐기된 록히드의 P3-C 해상초계기를 도입한다. 경쟁기종인 불란서의 아틀랜틱Ⅱ는 우수한 기종임에도 이미 생산이 폐기된 기종에 밀려 탈락한다. 국방부는 P3-C를 도입하면서 라인 재복구비로 8천만 불을 추가지급하였으며, 도입회사인 대우는 이면계약을 통해 불법 중개수수료를 도입비에 계상하였으나 록히드는 이마저도 돌려주지 않는다. 록히드의 사기극은 국제재판까지 제소되었으나 국방부의 안이한 대응으로 7백만 불을 사기 당한다.
5년 후인 1996년, 국방부는 대북 감청용 정찰기도입, 일명 '백두사업'을 추진하면서 공군 시험평가단이 가장 낙후되어 부적합한 기종으로 평가했던 미국제 호커 800을 기종으로 선정한다. 이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희대의 로비스트인 린다 김이 동원되고 국방 수뇌부가 이 여성과 스캔들에 빠져 들었다. 듣기에도 생경한 '몸 로비'라는 용어도 이 때문에 생겨났다. 결국 이 정찰기 운용부대인 정보사령부 산하의 [9125부대]는 1998년 가을에 '반란'을 일으켰다. 이런 구식 항공기로 정찰 활동을 하다가는 부하들 다 죽인다는 것이 당시 이 부대 참모장의 절규였다.
같은 시기 국방부는 군의 수송기로 인도네시아 CN-235기 도입을 추진하는데, 이 또한 최악의 선택이었다. 최근까지 인도네시아 측의 계약위반 사항이 확인되면서 업체 및 기종선정에서 최악의 결과를 빚었다는데 전문가들의 견해는 일치한다.
이 수송기 도입을 추진하면서 국방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재정권인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과 야합을 한다. 인도네시아 측이 한국에 수송기를 파는 대신 사간 한국제 무기들은 당시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민중항쟁의 유혈극에 그대로 동원된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조카가 운영하는 항공회사에 우리 군 수뇌부가 수시로 드나들면서 민중탄압의 유혈극을 서슴지 않는 독재정권과 밀월관계를 쌓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고 있었으니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차기전투기사업(F-X)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기종을 선정했다고 말하는 동안에도 공군 조종사 출신 고급장교가 국방부로부터 미국제 F-15K를 밀어주는 '외압'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처음에는 이 장교의 불확실한 '기억력' 때문에 그 진위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3월 27일 발표된 국방부의 1단계 기종평가 결과를 보면 이 장교의 양심선언 내용이 대체로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제 F-15K 구입이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공군은 또 좌절한다.
국방부의 기종결정 권한 박탈해야
단 한 번도 군이 항공기를 도입하면서 제대로 된 의사결정은 없었다. 청와대-국방부-무기중개상이 어우러진 '도깨비 난장판' 같은 복마전이 그간 우리의 전투기 도입의 산 역사다. 이러한 '반역'과 '비리'의 무기도입사는 황사보다 더 심각하게 대한민국의 영공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러한 기종결정의 악순환을 종식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비전문가인 육군 출신 장성으로 완전 장악된 국방부의 기종결정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 기종결정의 권한은 무엇보다 최종수요자인 소요군 위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회와 국민의 투명한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특정 평가요원이나 상급자의 의지에 따라 기종결정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으로서 기종이 결정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제는 기종결정에 대한 시비를 넘어 군의 최고 지휘부를 세대교체하고 제도와 구조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이 국민적 열기를 승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국가안보의 백년대계도 없으며, 우리가 자주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다. 국민은 이에 대해 깨어나 말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사이버 참여연대(www.peoplepower21.org)에 실린 것으로, 필자와 참여연대측의 양해를 얻어 옮겨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