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5. 24] 조주형 대령 재판 참관기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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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형 대령 재판 참관기
조주형 대령에 대한 첫 공판이 5월 22일(수)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충남 계룡대에 위치한 공군본부 보통군사법원 대법정에서 100여 명의 방청객들이 방청하는 가운데 김성두 공군 준장을 재판장으로 하여 권기대, 김덕중 군판사로 구성된 3명의 재판부의 주재로 열렸습니다.
이미 9시 20분 경부터 공군 본부 정문 앞은 수백 여 명의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서울, 청주, 전주, 익산 등에서 올라온 조대령 친, 인척 및 지인들과, 특히 조주형 대령이 다니고 있는 유성성당 신자들이 재판 방청을 위해 대거 몰려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군 본부 측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방청권이라는 것을 발행하여 100명에 한해서만 방청을 허용하였습니다. 대법정이 100명밖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100여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방청을 하지 못하고 공군본부 정문 앞에서 기도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방청 문제로 예정 시간보다 30여 분 늦게 시작된 재판은 일반 법정과 달리 헌병이 재판장에게 개최 신고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인정신문에 들어가기 전에 변호인단을 대표하여 유현석 변호사가 군검찰의 공소는 무리한 것이니 지금이라도 공소를 포기할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군검찰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인정신문에 이어 조주형 대령의 모두진술이 약 10여분간 진행되었습니다.
조대령은 국방부가 지난 4월 19일 차기전투기로 F-15K를 선정, 발표한 데 이어 4월 30일 제리 데니얼스 보잉사 사장에게 F-15K의 가격을 라팔 가격 이하로 내릴 것과 절충교역 비율의 상향 조정 및 미 정부 차원의 장기 후속군수지원 보장 등을 요구한 것은 최소한이나마 국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던 바, 자신이 지금 이 법정에 서게 된 것도 바로 국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때문이라고 진술을 시작하였습니다.
다만 국방부는 F-15K로 결정한 후에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고치려 했던 것이고, 조대령 자신은 3월 초에 가격도 비싸고 조건도 나쁜 F-15K를 선택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까지 동원하는 국방부의 잘못을 지적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어서 기무사로 연행되어 군인 복무규율 위반과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 경위, F-X 사업 추진 과정, 그 과정에서 국방부의 보잉사 편들기와 힘이 없다고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일부 지도층에 대한 실망, 자신의 양심선언으로 추가협상에서 그나마 2억 달러 이상의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점, 추가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받아냈어야 했다는 아쉬움, 특히 사업 추진 과정에서 기밀을 누설하거나 특정업체를 돕는 행위를 한 적이 전혀 없다는 것, 요구사항을 강조했고 가격인하를 위해 애썼을 뿐이라는 것, 자신의 애국심과 사명감이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릴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나라와 공군을 위해 바쳐진 자신의 노력이 쓰레기처럼 취급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등을 담담하게 피력하였으며, 그런데도 사실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사항을 가지고 법정에 서 있으며, 따라서 재판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며 모두진술을 마쳤습니다.
모두진술에 이어 검찰신문이 약 1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군검찰은 조대령이 주로 시험평가단 부단장 시절(2000년 7월∼2001년 8월)에 이영우(조대령의 공군 선배이자 동기의 형, 라팔 에이전트) 씨와 7차례 만나 100∼200만 원씩 뇌물을 받았다는 것, 직무상 기밀 누설 혐의 2가지, 군 기밀 누설 죄 등 총 10가지 혐의 사실에 대해 심문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조대령은 돈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영우 씨는 동기의 형이자 공군 선배로서 사업과 관련하여 그에게 어떤 이득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돈을 받을 당시의 정황을 들어가며 반박하였습니다. 공군에서 근무해 온 30년 동안 이영우 씨를 자주 만났으며, 가끔 용돈도 주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보잉사가 제시한 가격을 이영우 씨에 누설했다거나 보잉사의 능동 전자식 주사 배열 레이다의 가격을 김영철(라팔사의 고문) 씨에게 제공하였다는 등의 직무상의 기밀 누설과 군 기밀 누설 혐의에 대해서도 군검찰은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주로 정황을 들어서 혐의를 입증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대령은 자신의 업무일지의 기록과 보잉사에서 보내온 공문 일자 등의 구체적 자료를 가지고 군검찰 주장의 부당성을 논박하였으며, 그들과 나눈 대화도 신문 등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소재 삼아 이야기한 것이며,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의례적인 대화에 불과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2시 경에 검찰신문이 끝나고 방청객 중 일부는 돌아가고 나머지 50여 명은 군부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부대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중국 음식을 시켜서 노상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노상 식사를 마친 후 부대 밖에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돌아간 사람들을 대신하여 1시부터 속개된 공판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재판은 변호사 반대심문으로부터 속개되었습니다.
밖에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약 80여 명이 방청한 가운데 유현석 변호사로부터 4명의 변호인단(최영도, 이덕우, 장유식)의 반대심문이 이어졌습니다.
변호인단들은 먼저 조대령의 양심선언이 국가와 국민, 그리고 군과 공군을 위한 정당한 행위였음을 밝힌 다음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검찰 심문 내용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230여 항목에 달하는 반대 심문을 진행하였습니다.
변호인단은 예를 들어 공군 참모총장이 F-X 사업의 취지와 ROC, 가격, 절충교역 등에 관해서 언론에 이야기하면 정당한 것이고 같은 내용을 조대령이 언론에 이야기하면 기밀 누설죄가 되느냐고 따졌으며, 김영만 대령을 무리하게 구속하였다가 40여 일만에 무혐의 처리한 것이나 조달본부 군납 비리자들에 대해 전역지원서를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예를 들어 형평성을 잃은 검찰의 무리한 법 적용을 질타하였습니다.
또한 변호인단은 기무사가 조대령을 연행할 당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으며, 불법 연행과 감금을 자행했다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변호인단은 2001년 8월 마이클 라이언 미 공군 참모총장이 이억수 한국 공군 참모총장에게 F-15K를 구매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편지나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 등이 주미 한국 대사관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을 담은 조대령의 비망록 등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였습니다.
변호인단은 다시 한 번 군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철회하도록 촉구하면서 3시 반 경에 2시간에 걸친 반대신문을 마쳤습니다.
변호인단의 반대심문에 이어 군판사 2명과 재판장의 심문이 이어졌습니다. 군판사 2명은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미처 알지 못한 듯 하였으며, 군검찰의 기소 내용을 지루하게 반복 질문하였으며, 재판장은 정치적 성격의 질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재판은 4시가 조금 넘어 끝났으며, 재판 전 과정은 국방부가 F-15K를 선정하기 위해서 조주형 대령을 어떻게 희생양으로 삼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70여 명의 방청객들은 조주형 대령을 격려하면서 재판정을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