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군축

[2002. 10. 29] 2003년 국방비 증액에 대한 반대 성명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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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민중 복지에 역행하는

국방비 대폭증액 지시를 즉각 철회하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8월 30일 내년도 예산안 편성 방향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국방비가 상대적으로 위축된 점을 감안해 국방비 증가율을 재정규모 증가율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같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6-7%정도 늘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내년도 국방비는 올해의 17조1천억원보다 6-7%(금액으로 따지면 1조 200억원 내지는 1조 1천 9백억원) 늘어나게 된다.

우리는 대통령이 가뜩이나 생활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의 짐을 덜어주고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도모할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졌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국방비 상향 지시는 아마도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국방비 비율이 1997년 21.3%(결산)에서 2002년 16.1%(예산)로 줄어든 사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데 우리는 이 같은 국방비 증액 논거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우리 나라 국방예산은 최근 2000년 8.4%(결산), 2001년 6.5%(예산), 2002년 6.5%(예산)로 3년 동안 계속해서 재정 증가율과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해 왔다. 다만 98년, 99년 두 해 동안 국방비 증가율이 전체 예산 증가율보다 낮았기 때문에 국방예산의 비중이 97년 21.3%에서 2002년 16.1%로 줄어든 것뿐이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경제력을 감안할 때 우리 나라 국방비는 전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다. 2002년 현재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국방비 비율 16.1%는 우리 나라와 경제력 수준이 비슷한 브라질 3.1%, 아르헨티나 3.2%, 이란 8.5% 보다 2∼5배에 이르며 선진자본주의국가인 영국 7.1%, 프랑스 7.0%에 비해서도 두 배 이상이다. 남한의 국방비 비율 16.1%는 북한의 14.4%(2002년 기준)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다.

여기서 예로 든 다른 나라 국방비 비중은 모두 1997년 통계수치로 그 이후 더욱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나라 국민과 나라 경제가 과도한 국방예산으로 큰 고통과 압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과도한 국방예산을 대폭 감축한다면 얼마든지 민중들의 복지 향상과 국가경제의 내실을 기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나라 국방비는 대폭 감축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정부는 국방비의 실질적인 감축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는 이번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따라서 국방비 비중이 일시적 요인으로 약간 줄어든 것을 근거로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 우리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과도한 국방예산으로 고통받고 있는가를 철저히 외면하는 사고이자 세계적인 국방비 감축 추세에도 역행하는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번 대통령의 국방비 상향조정 지시는 '미래지향적 군사력 건설' 운운하며 내년도 국방예산을 터무니없이 12.8%나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국방부의 주장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우리는 이를 엄중히 규탄한다.

국방부는 지난 7월 '미래를 대비하는 한국의 국방비 2002'를 발간하면서 "국방비가 적어도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내년도 국방예산을 무려 12.8%(금액으로는 2조 1천8백억원)나 인상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종기 국방부 계획예산관은 발간사에서 "우리 국방비는 GDP의 2.8%로 세계 평균 3.8%에 못미쳐 미래 지향적 군사력 건설에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다양한 안보위협에 능동 대처하기 위해 GDP 3% 이상의 국방비가 보장돼야 하고 우선 2003년도 국방예산 요구안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방비가 GDP의 3%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국방부의 말은 지극히 자의적인 근거에 의거한 것으로 기득권 확대를 위한 숫자 놀음일 뿐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국방비'를 국방부 소관 예산으로만 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정부 재정 상 '방위비'로 분류되는 경찰청 소관의 전투경찰비 및 해양경찰청의 해양경찰비, 병무청 소관의 병무행정비와 국방부 특별회계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약 군사비 추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나 스웨덴 전략문제연구소(SIPRI) 등이 채택하는 이른바 NATO 방식으로 한국의 방위비를 산출하면 국방부 산출 국방비에 약 10∼20% 정도가 추가되어야 한다.
이 기준에 맞춰 1999년 국방비를 계산하면 국방부 소관 예산 110억 달러보다 훨씬 많은 약 150억 달러에 달하게 된다. 물론 'GDP의 3%'라는 것은 아무런 타당성도 없는 오로지 국방비를 늘리기 위한 궤변이고 자의적 주장일 뿐이지만 국방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 나라 국방비는 GDP의 3%를 넘고 있다는 점에서 국방부의 주장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국방비를 GDP의 3% 이상으로 하려면 내년도 국방비를 정부 예산 증가율 6%의 두 배가 넘는 12.8%나 인상시켜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국방비의 비중은 현재의 16.1%에서 17.1 %로 다시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의 무거운 어깨 위에는 더욱 무거운 짐이 실려지게 될 것이며 나라 살림 또한 생산적인 경제활동, 민중복지 향상에 자원을 돌릴 수 없게 되는 등 어려워지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반면 국방부 수뇌부는 늘어난 국방비로 F-15K, KDX-Ⅲ, SAM-X, 다목적 헬기, 조기경보기 도입 사업 등 각종 명목의 불요불급한 무기도입에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돈은 미국의 군수업체에 흘러 들어가고 그 대가로 그들과 결탁한 국방부 수뇌부, 관료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지향적 군사력 건설' 운운은 국방비 증액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확대하기 위한 국방부의 허울좋은 명분일 뿐으로, 국민의 세부담, 국가경제의 어려움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후안무치하고 오만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 같은 국방부 수뇌부의 오만과 전횡, 불법과 비리를 척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거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인 국방비 대폭 증액을 지시하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국방비 대폭 증액 지시를 철회하고 국방비의 대폭 삭감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방비 상향조정 지시는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이 땅의 많은 서민대중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데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만약 대통령의 말대로 국방비를 6-7% 늘리게 되면 그만큼 교육비나 민중복지 예산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국방비 증액분 1조 1천억원이면 이번 루사 태풍으로 인한 손실 1조 200억원을 보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국방비를 10%--17조원의 10%면 1조 7천억원이다--만 줄여도 그 돈으로 건강보험 재정적자 1조 8천억원을 메꿀 수도 있다. 이 같은 점을 보더라도 이번 대통령의 국방비 상향 지시는 온갖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는 민중들에게 더욱 큰 경제적 멍에를 지우고 나라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안겨주는 독단적이고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국방비 증액 지시는 6·15 공동선언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규탄하며 국방비의 대폭 감축을 요구한다.
늘어난 국방비가 F-15K, 에이태큼스미사일 등 각종 고성능 살상무기들의 구입에 쓰여질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바로 이같은 첨단전쟁무기들이 같은 동족인 북을 겨냥하여 도입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과 남북 대결은 더욱 고조되게 된다.
더구나 2001년 현재 남한의 국방예산이 118억 달러로 세계 12위에 해당하는 반면 북한의 군사비는 13억 달러로 세계 36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국방비 대폭 증액은 아무런 타당성도 명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과 대결을 부추길 것이 명백한 군사비 증액을 지시했다는 것은 6·15 공동선언에 대한 명백한 부정인 것이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과 기대를 저버리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진정으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여 남북 간 대결과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추진할 의지를 갖고 있다면 마땅히 국방비를 감축하고 평화군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듯 대통령이 아무런 정당성도, 명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국방비 대폭 증액을 지시한 것은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군부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들과 야합함으로써 정권재창출과 나아가서는 퇴임 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리는 국민들이 국방비 대폭 증액 지시의 철회를 다시 한번 대통령과 정부에 촉구한다. 그러나 끝내 대통령과 정부가 이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국민들과 함께 강력히 투쟁하여 반드시 국방비를 대폭 감축시키고 한반도 평화와 민중 복지를 우리 힘으로 이룰 것임을 밝힌다.


2002년 9월 3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대표 : 문규현, 공동대표 : 변연식, 서경원, 임종철, 홍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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