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2. 16] 북한 핵 사태의 진상과 NPT 탈퇴의 배경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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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사태의 진상과 NPT 탈퇴의 배경
김승국
북한 핵 사태의 진상과 NPT 탈퇴의 배경 (1)
들어가는 말
정리; 김승국/ 도움말; 김용수(한양대 원자력 공학과 교수)
1994년 제네바 협정에 의해 첫 번째 고비를 넘긴 북한 핵 사태가 지난해 연말부터 불거지면서 두 번째 고비를 맞이했다.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은 1993~1994년의 첫 번째 고비는 농축 플루토늄의 군사적 전용에 관한 싸움(“북한이 보유한 농축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한다”)이다. 북-미간의 이와 같은 ‘제1라운드 핵 싸움’은 1994년의 제네바 협정이란 신사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일단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신사답지 못한 미국측이 주로 제네바 협정을 어기면서 북한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지난해 10월 3일 미국 특사 켈리의 방북 이후 ‘북한 핵개발 시인’ 논란이 증폭되면서부터 북-미간 핵 싸움의 제2라운드가 터지기 시작한다.
제2라운드는 ‘북한이 우라늄을 농축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우라늄이라는 핵물질의 군사적 전용)’는 미국측의 주장과 이에 맞선 북한측의 주장(‘미국의 압살 정책이 계속된다면 자위를 위해 핵개발 프로그램을 가질 권리가 있지만 현재의 단계에서는 핵물질의 경제적 이용 즉 전력 생산에만 주력하고자 한다’)를 둘러싼 것이다. 즉 제1라운드 때의 농축 플루토늄의 군사적 전용 시비와 달리 농축 우라늄의 군사적 전용에 관한 싸움이다.
제2라운드는 KEDO 협정의 중요한 약속인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이 중단되면서 본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북한은, ‘중유 공급 중단’이라는 미국쪽의 본격적인 압박에 대한 반응으로 영변의 핵시설 봉인을 뜯어낸 다음 NPT 탈퇴라는 마지막 카드를 던짐으로써 북-미 관계가 1993년 이전의 상태로 ‘원점 회귀’한다.
북-미관계의 시계바늘을 1993년 이전으로 되돌렸기 때문에 제1라운드와 같은 파동(1994년의 전쟁 일보직전 상태를 제네바 협정으로 미봉함)을 겪을지 어떨지 지금은 속단할 수 없다.
‘북한의 NPT 탈퇴’라는 제2라운드의 가파른 고개에서 내려오기 위해서는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전보장(불가침 조약 등을 통하여)이 필수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이 북한의 절실한 요망을 뿌리친다면 제1라운드 때처럼 전쟁의 지경으로 치닫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한반도에는 전쟁의 시한 폭탄과 제한 시간이 정해진 협상 가능성이 공존하는 매우 위험한 상태이다.
또 다시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선 ‘북한 핵 사태의 제2라운드’를 지혜롭게 헤쳐나오기 위해서는 북한 핵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북한이 NPT 탈퇴의 초강수를 둔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지혜 쌓기가 북한 핵 사태 해결의 밑거름이라는 판단에 따라 ‘북한 핵사태의 진상과 NPT 탈퇴의 배경’이라는 특집을 마련했다.
북한 핵 사태의 진상과 NPT 탈퇴의 배경 (2)
북한 핵 사태의 개요
1. 1994년의 핵 사태 해결
1) 1994년 북한 핵 사태
1985년 12월 북한의 핵비확산 조약(NPT) 가입과 1992년 1월 핵 안전조치 협정 서명에 따라 국제원자력 기구(IAEA)가 1992년 5월부터 1993년 2월까지 6회에 걸쳐 북한의 핵시설에 대해 임시 및 일반사찰을 수행한 결과 당초 신고된 내용과 중대한 차이가 발견되면서부터 촉발되었다(주1).
특히 미신고시설 2곳은 재처리한 핵폐기물 저장소로 추정돼 IAEA가 특별사찰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이 시설이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사찰을 거부하고 NPT 탈퇴를 선언(1993.3.12)함으로써 북한 핵 문제는 국제적인 현안으로 등장했다.
그 결과 핵비확산 체제를 주도해 온 미국이 1993년 6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북한과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 갈루치 순회대사와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현 외부성 제1부상)간에 기본합의문이 체결되면서 종료되었다.
2)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문
① 흑연 감속원자로 동결 및 해체, 경수로 원자로 발전 지원
미국은 2003년까지 2천 MW급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고, 미국은 국제컨소시엄을 대표해 북한의 흑연감속원자로 동결에 따라 상실될 에너지를 보전하기 위해 경수로 1기가 완공될 때까지 대체에너지로 중유를 제공키로 했다. 이 합의에 따라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KEDO)가 구성되었다.
② 북-미 정치?경제 관계의 완전 정상화
양국은 합의 3개월안에 통신 및 금융거래에 대한 제한을 포함, 무역 및 투자제한을 완화시키기로 했다. 또 양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상호관심사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양국 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했다.
③ 한반도 비핵화 노력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 불위협(不威脅) 또는 불사용(不使用)을 공식 보장하고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하기로 했다. 또 남북대화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④ NPT 체제 강화
북한은 NPT 당사국(NPT 탈퇴유보의 특수지위)으로 잔류하고 NPT 조약의 안전조치 협정이행을 허용키로 했다. 또 경수로 제공을 위한 공급계약 즉시 동결대상이 아닌 시설에 대해 북한과 국제원자력 기구 간 안전조치 협상에 따라 임시 및 일반 사찰을 재개키로 했다.
2. 북한 핵 사태 진행 과정
1) 북한 핵 사태 일지
# 1962년 1월; 북한, IRT-2000형 연구용 원자로 건설
# 1974년 9월; 북한, IAEA 가입
# 1985년 12월 12일; 북한, NPT 가입
# 1989년; 프랑스 상업 위성이 영변 지역을 촬영한 사진을 제시하면서 ‘영변에 핵시설 있는 듯하다’ 발표. 이 촬영사진이 전세계적인 매스컴을 타기 시작하면서 북한 핵문제가 눈 덩이처럼 커졌다. 물론 미국은 그 전부터 북한의 군사시설을 군사위성을 통해 계속 추적하면서 시비 거리를 찾아왔다. 북한 핵문제가 이렇게 매스컴을 타게 되자 미국은 잘 걸렸다고 판단하여 IAEA에 북한 핵문제를 다루도록 압력을 넣었다.
# 1990년 3월 6일; IAEA 이사회, 북한의 전면 안전조치 협정 체결 권고
#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서명
# 1992년 1월 30일; 북한, IAEA와 전면안전조치 협정에 서명
# 1992년 5월 4일; 북한의 최초 보고서를 IAEA에 제출함. 북한의 7개 시설과 1989년 결함 핵연료에서 재처리한 약 90그램의 플루토늄 보유를 신고. IAEA 일반사찰용으로 북한 당국이 ‘플루토늄 90그램 보유’를 보고했다. 그러나 92년 5월부터 93년 2월 까지 6회에 걸친 IAEA의 사찰 결과 몇 킬로 그램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자, 미국 등이 이 차이를 규명하라고 북한에 압력을 넣으면서부터 북한 핵문제가 증폭되기 시작했다. 과학적으로 볼 때 이런 ‘중대한 차이’는 근거가 있다. 북한의 핵시설중 방사화학 실험실은 대규모 재처리 시설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국의 Hanford 다음으로 큰 시설이다. 그래서 더욱 의혹을 받고 있다.
# 1992년 5월 23일; IAEA, 북한에 대한 사찰 실시
# 1993년 2월 10일; IAEA 사무총장, 북한의 2곳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 수용 촉구
# 1993년 3월 12일; 북한, NPT 탈퇴 선언
# 1993년 6월 11일; 북-미 1단계 고위급 회담에서 탈퇴를 잠정 유보. 북한은 이후 ‘탈퇴 유보의 특수지위’를 내세워 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하다가 1994년 6월 13일 IAEA를 탈퇴했지만 조약에선 계속 ‘탈퇴 유보’ 상태를 유지
# 1994년 5월; 북한, 5MW 흑연감속로에서 핵연료를 인출
# 1994년 6월 13일; 북한, IAEA 탈퇴선언 제출
# 1994년 6월 15~18일;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북한 방문
# 1994년 10월 21일; 북-미간 제네바 기본합의서(Agreed Framework) 체결
# 1995년 12월 15일; KEDO-북한간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
# 1998년 8월 10일; TIME지, 북한의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핵의혹 제기
#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 1999년 5월 18~24일; 미국, 금창리 방문단 현장 방문
# 1999년 5월 25~28일; 윌리엄 페리 미 대북조정관 북한 방문
# 1999년 8월 24일; 북한, 경수로 건설지연에 따른 긴급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
# 1999년 11월 3일; 미 공화당 정책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개발 계속 가능성 지적
# 1999년 11월 16일; 1999년분 중유 50만톤 북한에 제공완료
# 2000년 2월 2일; 북한, 경수로 지연에 따른 제네바합의 파기 가능성 경고
# 2000년 10월 12일; 북-미 공동 코뮤니케를 통해 북-미간의 갈등이 미봉됨
# 2002년 8월 13일; 북한 외무성 ‘제네바 합의문 파기 갈림길’이라는 담화 발표
# 2002년 9월 16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북한이 아마 1~2발의 핵무기를 보유(may have one or two...)’발언. 북한이 핵무기 한 발 내지 두 발을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럼스펠드의 발언이 ‘북한 핵무기 보유’로 왜곡되면서 북한 핵 사태가 더욱 확산됨. 럼스펠드의 위의 발언은 펜타곤의 공식 입장이지만, 엄중한 시기에 북한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발설함으로써 오늘날의 북한 핵 사태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흉이 됨. 이런 입장에 따라 북한에 핵무기 보유 여부를 이실직고하라고 압력을 넣기 위해 켈리의 방북이 이루어지고, 북한측도 ‘핵을 가지게 되어 있다’고 대응함. ‘ 가지게 되어 있다’는 영어로 번역이 불가능하므로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개발 시인했다’ 는 선전공세를 펼침.
여기에서부터 북-미 간에 ‘제2차 핵(우라늄 농축-북한 핵개발) 싸움'이 벌어짐. 1990년대 초반의 제1차 싸움은 북한의 플루토늄 농축에 관한 것이라면 제2차 싸움은 우라늄 농축에 관한 것임.
# 2002년 10월 3~5일; 미국 켈리 특사, 북한 방문.
# 2002년 10월 16일; 미 국무부, 켈리의 귀국 보고에 따라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했다’고 발표
# 2002년 10월 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미국이 핵 불사용을 포함한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한다면(북-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다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고 밝힘
# 2002년 11월 3일;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한성렬 차석 대사,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폐기 용의와 국제사찰 허용 검토’ 밝힘(여기에서 ‘프로그램’은 ‘직접 핵무기 제조에 임하는 것’은 물론 ‘마음 속의 핵개발 ’ ‘한번 핵개발을 해볼까’라는 뉴앙스도 포함된다). 미국이 중유를 다시 제공하고 북한 체제의 생존을 보장한다면 위의 프로그램(핵개발 의욕, 핵개발 의지)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
# 2002년 11월 14일;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12월부터 대북 중유 지원중단 결정
# 2002년 12월 12일; 북한 외무성, 중유제공을 전제로 취했던 핵동결 해제 선언/ IAEA에 의한 핵시설 봉인과 감시카메라의 제거를 요구
# 2002년 12월 22일~24일; 핵동결 해제 1단계 조처로 원자로, 폐연료봉 저장시설의 봉인을 제거하고 감시 카메라를 돌려놓음/ 방사화학 실험실, 핵연료 제조공장의 봉인을 제거
# 2002년 12월 25일; 핵 동결 해제 2단계 조처 본격화/ 5MWe 원자로, 방사화학 실험실 재가동 준비 등
# 2002년 12월 28일; IAEA 사찰관 추방
# 2003년 1월 10일; 북한 NPT 탈퇴 선언, IAEA 안전조치 협정 탈퇴
3. 북-미간 주장의 차이
국제적인 현안으로 번진 북한 핵 사태는 사실상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이므로 양국간 주장의 차이를 알아본다.
1) 미 국무부 성명 전문
켈리의 방북 이후 북한 핵문제의 발단이 된 미 국무부 성명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이끌고 간 미 특사단은 북한이 제네바 협정 등과 같은 핵무기 협정을 위반하고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우라늄을 농축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미 당국이 최근 입수했다는 점을 북한 측에 전달했다. 북한 관계자들은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했다. 북한의 비밀 핵무기 계획은 제네바 협정과 핵확산 금지조약(NPT), 국제원자력 기구(IAEA)합의, 남북 공동 한반도비핵화 선언 등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추측컨대 켈리가 북한쪽에 ‘너희들 핵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하고 윽박지르니까, 북한은 ‘미국이 우리를 계속 압살한다면 우리도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응답한 듯하다(이 ‘프로그램’이란 말의 뉴앙스는 위에서 거론함).
2) 북한의 주장
북한은 ‘미국의 가중되는 핵압살 위협에 대처하여 우리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 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켈리에게 분명히 말해주었다’고 응수했다.
4. 주요 쟁점
그러면 이와 같은 쟁점을 정리하는 가운데 핵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1) 북한 핵 사태의 발단
1993~1994년의 제1차 북한 핵 사태는 플루토늄 생산시설에 대한 의혹에서 출발해 외교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최근의 제2차 북한 핵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북한의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측의 추궁과 북한의 인정 발언이지만 실제로는 제네바 북미 합의 이행 지연과 약속 불이행에 대한 상호 불신이 더 중요한 근본원인이다. 현재 사태의 진실보다는 추측과 과장으로 그 심각성이 증폭되고 있다.
2) 북한 핵 사태의 진실
북한 핵 사태의 진실을 밝히기 이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갖고 있을까? 있다면 그 프로그램의 유효성은 얼마나 될까?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을 통해 핵무기를 제조할 가능성은? 현재 핵무기 보유 현황은? 북한의 변화와 이번 북한 핵 사태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바라보아야할까?
북한 핵 사태의 진상과 NPT 탈퇴의 배경 (3)
북한 핵 사태의 과학기술적 이해
1. 핵무기 원료; 농축 우라늄 vs. 플루토늄
1993~1994년의 제1차 북한 핵 사태(제1라운드)는 농축 플루토늄을 에워싸고 벌어진데 반하여 최근의 제2차 북한 핵사태(제2라운드)는 우라늄 농축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면 농축 우라늄과 농축 플루토늄은 어떤 경로를 통해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지 알아본다.
연쇄 핵분열 반응을 이용해 핵무기/핵발전에 쓸 수 있는 주요 재료는 U235와 Pu239이다. 천연 우라늄에는 U235가 0.71%밖에 없어 90% 이상의 농축이 필요한 핵무기에 쓰기 위해서는 농축이 필요하다.
플루토늄(Pu)239의 경우 U238이 중성자와 반응해 생성되는 인공원소로 원자로의 가동에 의해서만 생성된다. 농축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후 (폐)연료를 재처리해서 추출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화학적 분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농축하며 물리적 방법인 우라늄 농축보다 간편하다.
핵폭탄의 형태에는 포신형(Gun-Type)과 내폭형(Implosion-Type)의 두가지가 있다. 플루토늄239로는 포신형 핵폭탄을 제조할 수 없다. 우라늄 235탄은 제조하기 쉽고 사전 폭파실험 없이 실전 배치가 가능하다.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 임계질량은 순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우라늄은 1킬로그램 미만, 플루토늄은 약 300그램 정도인데 적정 규모의 핵폭탄 1개를 만들려면 이보다 수십배의 양이 필요하다.
이처럼 농축 우라늄 U235은 물리적 방법으로 농축하지만, 우라늄 농축은 굉장히 힘들어서 골치가 아프다. 한편 플루토늄 Pu239은 원자로 안에서만 만들 수 있으며 화학적인 분류가 쉽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이 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으로 핵무기 1개를 만드는데 필요한 양은 얼마나 될까?
① 현재 북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제시하는 기준은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실제로 투하된 핵무기를 기준으로 계산하고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핵폭탄 Little Boy는 90% 이상의 농축/ 120파운드(60Kg)의 우라늄이 장전되었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플루토늄 핵폭탄인 Fat Man은 16파운드(8Kg)의 고농축 플루토늄이 장전되었다.
② 무게 60킬로그램의 Little Boy의 1.3%만이 핵폭발을 일으켰다.
이러한 자료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농축 우라늄 U235 15~30킬로그램이 있으면 우라늄 핵폭탄 1개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무게 8킬로그램의 Fat Man중 1그램만 핵분열에 성공하여 핵폭발한 것을 기준으로 보면 8킬로그램 이상의 Pu239가 있어야 플루토늄 폭탄 1개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 제조의 실력에 따라 U235와 Pu239의 필요량이 달라진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핵실험을 1,050회 정도하면서 기술을 최대한 확보했기 때문에 3킬로그램 정도의 Pu239로도 플루토늄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북한처럼 핵무기 제조 경험이 부족한 경우 최소한 20킬로그램 안팎의 Pu239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더욱 제조과정에서 유실될 량(loss)를 감안한다면 50킬로그램(?) 정도의 Pu239가 있어야 플루토늄 핵폭탄 1개를 만들 수 있을 것같다.
그럼 현재 북한이 50킬로그램의 Pu239를 보유하고 있느냐가 첫째로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에 관한 설왕설래하고 있으나 ‘북한이 50킬로그램의 Pu239를 보유하고 있다’는 말은 거의 없음. 그러므로 북한이 핵무기(플로토늄 핵폭탄)를 만들 수 있다는 설(說)에 일단 의문 부호를 붙인다.
2.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추출
1) 우라늄 농축
① 기체 확산법; 다수의 소공이 있는 격막을 통하여 UF?가스를 보낼 때 가벼운 동위원소(U235)가 더 많이 통과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이 때의 전력 소모량은 2,300~2,500kWh/SWU이다. 그리고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얻기 위해서는 3천단계 이상이 필요하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기체 확산법을 이용하는 나라는 없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이용한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이 방법을 이용해야한다. 그런데 북한이 이 방법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난관이 있다.
ⓐ 핵무기 제조에 쓰일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얻기 위해서는 3천 단계 이상이 필요한데 북한이 미국, IAEA 등 국제적인 감시망을 피해서 이런 고난도의 단계마다 성공할 수 있는지?
ⓑ 기체 확산법은 어마어마한 전력을 필요로한다. 북한의 전력 생산량보다 많은 전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전기가 없어서 허덕이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위해 이렇게 막대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엄청난 전력을 총동원하여 기체 확산법을 시도할 경우 금방 발각이 되고, 이를 쉽게 감지한 미국, IAEA 등이 즉각적으로 제동을 걸기 때문에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 미국에서 플루토늄 핵폭탄 1개를 만드는데 12억 달러가 든다는데 이런 경비를 북한이 감당할 수 있는지? 그러므로 북한이 우라늄 핵폭탄 제조 프로그램을 갖고 있더라도 유효성에 의문이 있지 않을까?
② 원심 분리법; 원통속의 UF?가스를 고속회전시켜 원심력을 이용하여 분리하는 방법으로 무거운 U238은 회전통의 바깥쪽으로 밀려나가고 가벼운 U235는 안쪽으로 모이는 원리를 이용한다. 전력 소모량은 50kWh/SWU이다. 한국은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③ 레이저 법; U235원자에만 흡수되는 레이저를 투사시킨 후 여과된 (+)U235 원자를 자장에 통과시켜 (+)U235이온을 (-)이온판에 집적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전기가 엄청나게 소요되거 아직 상용화(商用化)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북한이 레이저 법을 이용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한다는 것은 엉터리 주장이다.
2) 높이 1~2미터 지름 20센티미터 크기의 원심 분리기 하나의 분리능력은 연간 약 5SWU이다. 이 하나의 분리기의 경우 약 250kWh의 전력으로 핵무기급 우라늄 약 30그램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1,000기로 1년간 운전하면 약 30킬로그램을 추출할 수 있다.파키스탄의 경우 2천여기로 연 60킬로그램의 우라늄을 추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U235를 통한 북한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① 앞에서 지적한 대로 손실(loss) 예상분 까지 고려할 때 50킬로그램의 U235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북한이 50킬로그램의 U235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장기간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요원한 일이다;
a) 엄청난 전력이 소요되는데 전력난으로 고전하고 있는 북한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전기를 공급할 수 있나?
b) 원심 분리기는 엄청나게 비싸고 국제적으로 엄혹하게 감시(감시의 정도가 심할수록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오름)하므로 몰래 도입할 수 없다. CIA의 주장에 의하면,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관(棺) 속에 원심 분리기 100개를 넣어 몰래 들여왔다는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런 주장에 한술 더 떠서 영국의 『The Times』가 ‘북한이 들여온 원심 분리기로 10킬로그램의 U235를 보유할 수 있고 3개월 안에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는 데 이는 뻥튀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북한이 핵폭탄을 만들려면 최소한 원심분리기 1,000기를 들여와야 하는데 원심 분리기 1,000를 돌리기 위해 엄청난 장소가 필요하며 천문학적인 전력이 필요하다. 1,000개의 원심 분리기를 몰래 들여와 북한에 있는 거의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여 몇 년간 돌려야 원자폭탄 1개를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설령 북한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더라도 실물 핵폭탄을 만드는데 커다란 한계가 있다. 마음 속에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으나 그 이상을 뛰어 넘는게 가능할까?
따라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제2차 북한 핵 소동(우라늄 핵폭탄 개발 논란)은 ‘금창리 사건’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사찰단이 금창리에 와서 텅빈 동굴만 보고 황망하여 되돌아갔듯이 ‘북한 핵 개발 프로그램’을 추적하는 끝에 결국 ‘유령’만 확인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미국, IAEA가 ‘북한의 우라늄 핵폭탄 개발’의 유령만 확인하게 된다면, 이는 북한의 고도의 심리전인 NCND전략이 또 다시 성공(?)하고 미국은 망신을 당하는 꼴이 된다.
3. 플루토늄을 에워싼 쟁점; 1994년 북한 핵 사태의 경우
원자로 안에서 우라늄(U238)이 중성자를 흡수하면 Pu239로 전환되며 원자로를 일정 기간 가동하면 Pu239가 축적된다. 축적(생산)되는 Pu량은 원자로의 열출력과 운전기간에 따라 다르나 일반 경수로의 경우 사용후 연료의 1% 정도가 Pu이다. 흑연 감속로의 경우는 상용 가압 경수로형의 경우보다 Pu량은 더 적게 생성되나 순도가 높다.
재처리는 사용후 핵 연료에 남아 있는 유효성분(주로 Pu)을 화학적으로 추출해내는 작업을 의미하며, 사용후 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 물질이다. 특히 Pu는 방사설 물질이므로 재처리 작업 때 Hot Cell, Glove Box와 같은 특수한 방호시설을 필요로한다.
최근 북한이 핵시설의 봉인을 뜯어냄으로써 기존의 농축 플루토늄 비축분의 군사적 전용(핵무기 생산에로 전용됨)을 우려하고 있으나,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플루토늄은 기본적으로 재처리하기 쉽지만 북한의 핵시설을 모두 가동해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4. 북한 핵시설에 관한 관점 정립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따라 동결된 북한의 핵시설은 다음과 같다;
# 평북 영변의 5MWe 원자로(가동 중단). # 95년과 96년 각각 완공을 목표로 건설중이던 영변의 50MWe 원자로와 평북 태천의 200MWe 원자로(공사 중단). # 플루토늄 재처리가 가능한 영변의 방사화학 실험실(가동 중단). # 5MWe 원자로에서 추출한 ‘사용후 핵연료봉’ 8천여개(360개의 기체관에 넣어 밀봉).
미국, IAEA, 국내외의 언론은 대체로 위의 시설에서 핵무기를 만들어낼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판단이 옳은 것인지를 규명하는게 북한 핵 사태를 해결하는데 중요하다.
먼저 해결의 열쇠를 찾기 전에 ‘북한은 기본적으로 자립형 경제구조를 추구하므로 에너지의 자립을 모색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의 순환을 이룬 것이 이들 핵시설이다. 북한 안에 있는 자원(우라늄 등)을 이용하여 자립형 원자력 생산 복합단지를 영변에 세우려고한 구상’을 소홀히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면 이들 북한 핵시설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1) 영변 5MWe 원자로
이 원자로는 전기 생산 실험용이며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플루토늄도 생산할 수 있다. 전세계의 핵 강국인 영국이 1956년 처음으로 가동한 것이다. 그러나 열 효율이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 원자로 집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이 원자로 모델은 세계적으로 널리 공개된 것이므로 북한이 배우기 쉽다.
② 천연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므로 북한에 무진장하게 매장된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③ 냉매로 CO2를 사용하므로 냉매 구하는데 문제가 없다.
④ Moderator도 북한에 있다.
⑤ 만약 핵무기를 만들 경우 실력이 없어도 제조할 수 있다. 상업용으로 쓰일 경우 경제성이 떨어지나 적은 돈으로 원자로를 운용할 수 있다. 경수로에 비하여 농축이 쉽고 농축 우라늄의 순도가 높다. 재처리가 쉽다. 따라서 북한에 소재한 자원을 이용하여 적은 돈으로 핵무기용 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다. 이런 매력이 있기 때문에 5MWe 원자로를 선택한 듯하다.
그러나 이 원자로는 다음과 같은 단점이 있다;
① 마그네슘이 잘 산화(부식)된다.
② 열효율이 낮다.
③ 안전에 문제가 있다.
* 이 원자로에서 나온 8,000개의 연료봉을 IAEA가 밀봉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안에 부식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북한이 부식 여부를 확인하고자 연료봉을 꺼냈을 수도 있다(연료봉 빼낸 이유중의 하나일 가능성).
* 이 원자로에 있는 냉각탑(Cooling Tower)이 있는데, 이 시설은 발전시설이지 무기 생산 전용 시설이 아니다. 이 점에 주목해야.
* 이 원자로에서 열이 나올 때 굴뚝 연기가 보인다. 그런데 굴뚝 연기가 안 나오면 재처리를 위해 원자로 가동을 일시 중단한 것으로 이해된다. 미국, IAEA 등은 북한을 향해 “굴뚝 연기가 70일 동안 안나왔는데 너희들 그 기간에 재처리 했지”라며 재처리 혐의를 씌우자 북한은 90그램을 재처리했다고 시인함. 그러나 제네바 협정 이후 IAEA의 사찰결과 몇 킬로그램의 플루토늄이 확인되어 문제가 됨(‘과거 핵’ 문제)
2) 영변 50MWe 원자로는 짓다가 말았다.
3) 평북 태천 200MWe 원자로는 짓다 말았다.
4) 방사화학 실험실
세계 최대의 Hanford 재처리 시설에 이은 세계 두 번째의 규모를 갖춘 재처리 시설이어서 의혹을 받고 있는 시설이다. 그러나 핵 쓰레기를 처리하는 폐기물 처리 시설이 없는 점으로 보아 핵무기 제조용인지는 의문시됨. 이 시설은 한 마디로 ‘화장실 없는 큰 집’이다. 즉 용량은 크지만 과연 가동될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음(현재 70%의 공정이지만 완전가동 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듯). 폐기물 시설도 없는데 이 시설에서 1년에 수십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등 내일 모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는 것은 억측이다.
또 사용후 핵연료로 재처리할 경우 엄청나게 독한 방사선이 나오는데 함부로 재처리하여 핵무기 제조로 전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기 전에는 이 실험실의 가동이 불가능하다. 시스템을 완벽히 갖춘 뒤에도 오랫 동안 핵무기 제조를 위한 실험을 해야 하므로 곧장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낭설이다.
이 실험실의 재처리 시설인 ‘glow box'는 대학 실험실용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바, 세계 두 번째 크기의 재처리 시설에서 애들 장남감같은 용기를 이용하여 재처리한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의 핫셀에서도 로봇 팔로 작동하는데 수동식의 용기로 얼마나 재처리 해낼지 의문이다.
플루토늄 농축의 경우 재처리 결과를 속일 수 없다. 해당국이 IAEA에 소속되어 NPT 체제에 머물러 있는 한 재처리를 숨기더라도 들통난다. IAEA에 가입하고 NPT조약을 준수하는한 숨길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미국은 북한의 플루토늄 농축에 대해서는 걱정을 않는다. 모두 계산(역추적)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NPT에 머무는 한 핵무기 만들 수 없다. 프랑스, 중국도 NPT에 가입하고 있지 않으니까 핵보유의 실상 파악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자들이 마구 떠들어 대면서 오늘 날의 북한 핵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북한 핵 사태의 진상과 NPT 탈퇴의 배경 (4)
북한의 핵시설은 핵무기 제조용인가?
이를 판단할 기준은, 북한의 핵시설을 세운 기본적인 발상이 원자력 주기(원자력 발전 순환)를 위한 것이지 핵무기 제조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관점을 세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1) 북한에는 질이 높은 천연 우라늄 2,600만 톤이 매장되어 있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모든 연계 시스템을 처음부터 갖췄다.
2) 북한은 주체 사상에 따라 자립경제 체제이므로 에너지도 자립체제를 구상했을 것이며 마침 세계 최대의 질 좋은 우라늄이 있으므로 그것을 잘 가공하면 자손 만대로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시켜 국가경제 발전을 도모하려고 했을 것이다.
북한은 자립경제을 위한 에너지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을 생각하고 영변에 원자력 발전 단지(원자력 발전 cycle 시설)을 세웠다.
그러나 1994년 제네바 협정을 통해 북한은 영변 원자력 단지(원자력 발전 cycle)을 포기하고 미국제 경수로(KEDO)를 선택했다. 그러나 미국은 제네바 협정에서 약속한 북한 체제의 생존권도 보장하지 않고 북한 붕괴 움직임을 계속 진행해왔고, KEDO 완공 년도인 2003년 초에 공기의 20% 정도에 머물러 북한은 모든 것을 잃었다고 판단하고 극도의 반발을 한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야심적인 경제발전 대계가 미국의 방해로 무산되고(KEDO 경수로 완공시기 늑장) 이윽고 중유까지 공급받지 못하게 되자 북한이 생사를 건 도전장을 미국에 내면서 봉인을 뜯어내고 IAEA 사찰관을 추방한 것이다.
3) 북한의 국익의 관건은 쌀과 에너지이다. 쌀과 에너지 자체가 북한의 사회주의이다. 사회주의 발전을 위한 고육지계를 외세(미국 등)이 방해하니까 이판 사판으로 핵시설의 봉인을 제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易地思之하는 가운데 북한이 왜 저런 행동으로 나오는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실태를 다시 점검한다;
① 만약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농축 플루토늄을 보유했다고 해도 핵무기 만들거나 운용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플루토늄과 작약을 모두 합성하다라도 핵무기의 무게가 약 2톤 정도될 것이므로 발사 할 수 없다. 둘째, 핵무기를 만들었다해도 폭발 능력이 없다. 핵무기를 터뜨리기 위해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데 북한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플루토늄 핵폭탄의 폭발 능력을 완비하기 위해 2.000번이나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셋째, 요즘은 기폭실험을 모두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통해 하므로 국가 전체 차원에서 고도의 과학 기술이 상존해야한다. 미국 등의 감시가 엄중한 상태에서 시뮬레이션을 가장 선호할테지만 불가능하다. 만약 시뮬레이션이 아닌 원시적 방법으로 하다가 발각되면 전쟁(미국의 영변지역 공습 등)을 각오해야한다. 이런 모험을 하겠나?
② 핵폭탄 만들려고 마음 먹었다면 농축 플루토늄을 선택하지 우라늄 재처리를 선택할리 없다.
③ 북한은 현재 8~12킬로그램 정도의 농축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플루토늄은 IAEA에 의해 봉인되었으나 최근의 봉인 제거 조치로 북한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이 이 정도의 농축 플루토늄을 갖고 있더라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④ 이런 상황을 잘 아는 미국쪽의 판단('아마 북한이 핵무기를 1~2개 보유했을 것이다(may have)' '가지고 있을 확률이 51%이다‘)가 북한 핵무기 보유 여부의 정설로 보아야한다. 그렇다면 이런 모호한 추정만으로 ’제2차 북한 핵 소동(최근의 농축 우라늄 보유 소동)‘을 벌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따져보아야한다. 추정되는 이유는 ’북한을 기어코 붕괴시키려는 미국 강경파들이 켈리를 평양에 보낸 다음 인위적으로 ‘북한 핵 보유 시인’ 소동을 벌인 다음 중유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1993~1994년과 같은 전쟁 위기를 만들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움직임을 누구 보다 잘아는 북한이 미국의 이런 술수를 미리 간파하여 미국의 급소를 찌르며 미국의 딜레마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부시 정권이 북한의 핵문제를 잘못 다루다가는 전쟁 지향적인 일반주의 대외정책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최근 수습책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이라크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다독거릴 필요도 있으나 이는 소극적인 해석임). 미국이 이라크를 속전속결로 이긴 다면 ‘제 3차 북한 핵 소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⑤ 최악의 북한 핵 소동이 초래할 전쟁을 예방하는 유일한 길은 미국이 중유를 제공하고 북한에 대한 생존권을 보장하며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는 것(북-미 대사급 수교)를 하는 것이다.
북한 핵 사태의 진상과 NPT 탈퇴의 배경 (5)
북한의 NPT 탈퇴 성명서 해설
김승국
앞에서 전개한 논리에 따라 북한의 NPT 탈퇴 성명서를 해설한다.
지난 10일 발표된 북한 정부의 ‘NPT 탈퇴 성명’ 요약문은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이 1993년 6월 11일부 조미 공동성명에 따라 핵위협 중지와 적대의사 포기를 공약한 의무를 일방적으로 포기한 조건에서 공화국 정부는 같은 성명에 따라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간만큼 일방적으로 임시 정지’시켜 놓았던 핵무기 전파방지 조약으로부터의 탈퇴의 효력이 자동적으로 즉시 발생한다는 것을 선포한다.
둘째,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핵무기 전파방지 조약에서 탈퇴함에 따라 조약 제3조에 따르는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의 구속에서도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선포한다.
셋째, 핵무기 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압살책동과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다.
넷째, 우리는 핵무기 전파방지 조약에서 탈퇴하지만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으며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다.
다섯째,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압살 정책을 그만두고 핵위협을 걷어 치운다면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조미 사이에 별도의 검증을 통하여 증명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요약문을 중심으로 항목마다 해설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항목 해설
1989년부터 이어진 미국에 의한 제1라운드의 핵 공방(‘북한이 농축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들려고 한다’)에 시달린 북한은 마침내 1993년 3월 12일 ‘NPT 탈퇴’ 선언을 한다. 이에 경악한 미국과 북한은 그해 6월 11일 제1단계 고위급 회담을 개최한다. 회담 결과 양국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핵위협을 중지하고 적대의사를 포기(북한의 체제 생존권 보장)하는 조건 아래 북한의 NPT 탈퇴를 잠정유보하는 조미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이 성명에 따라 북한은 ‘NPT 탈퇴 유보의 특수지위’를 지니게 되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특수지위를 유지하는 동안 미국의 태도 즉 미국이 북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지를 예의 주시해왔다. 그러나 부시 정권 등장 이후 북한에 대한 핵선제공격 계획을 담은 NPR(핵태세 수정 보고), 부시 독트린을 연이어 발표하는 것을 보고 이 특수지위마저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미국의 처사에 항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을 향한 제2라운드의 핵공방(‘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한다’)을 벌이자 특수지위를 포기하는 선언으로서 ‘NPT 탈퇴’ 성명을 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첫째 조항의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간 만큼 일방적으로 임시정지’시켜 놓았던 핵무기 전파방지 조약(NPT 조약)으로부터의 탈퇴의 효력이 자동적으로 즉시 발생한다는 것을 선포한다”는 문구에 잘 나타나 있다.
두 번째 항목 해설
북한이 NPT 탈퇴 선언을 함에 따라 NPT조약의 이행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담보협정(안전조치 협정)의 구속에서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참고로 IAEA의 안전조치 협정과 관련된 NPT 조약 제3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핵무기 비보유 조약당사국은 원자력을, 평화적 이용으로부터 핵무기 또는 기타의 핵폭발장치로 전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본 조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이행의 검증을 위한 전속적 목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 규정 및 동 기구의 안전조치 제도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와 교섭하여 체결할 합의사항에 열거된 안전조치를 수락하기로 약속한다. 본조에 의하여 요구되는 안전조치의 절차는 선원물질 또는 특수분열성 물질이 주요 원자력시설내에서 생산처리 또는 사용되고 있는가 또는 그러한 시설외에서 그렇게 되고 있는가를 불문하고, 동 물질에 관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본조에 의하여 요구되는 안전조치는 전기 당사국 영역내에서나 그 관할권하에서나 또는 기타의 장소에서 동 국가의 통제하에 행하여지는 모든 평화적 원자력 활동에 있어서의 모든 선원물질 또는 특수분열성 물질에 적용되어야 한다.
② 본 조약 당사국은, 선원물질 또는 특수분열성 물질이 본조에 의하여 요구되고 있는 안전조치에 따르지 아니하는 한, (가) 선원물질 또는 특수분열성물질 또는 (나) 특수분열성물질의 처리사용 또는 생산을 위하여 특별히 설계되거나 또는 준비되는 장비 또는 물질을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 여하한 핵무기 보유국에 제공하지 아니하기로 약속한다.
③ 본조에 의하여 요구되는 안전조치는, 본 조약 제4조에 부응하는 방법으로, 또한 본조의 규정과 본 조약 전문에 규정된 안전조치 적용원칙에 따른 평화적 목적을 위한 핵물질의 처리사용 또는 생산을 위한 핵물질과 장비의 국제적 교환을 포함하여 평화적 원자력 활동분야에 있어서의 조약당사국의 경제적 또는 기술적 개발 또는 국제협력에 대한 방해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④ 핵무기 비보유 조약당사국은 국제원자력기구규정에 따라 본조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또는 다른 국가와 공동으로 국제원자력기구와 협정을 체결한다. 동 협정의 교섭은 본 조약의 최초 발효일로부터 180일이내에 개시되어야 한다. 전기의 180일 후에 비준서 또는 가입서를 기탁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동 협정의 교섭이 동 기탁일자 이전에 개시되어야 한다. 동 협정은 교섭개시일로부터 18개월 이내에 발효하여야 한다.
세 번째 항목 해설
북한은 이제 이러한 NPT-IAEA의 안전조치 협정(사찰제도)로부터 벗어나 영변의 핵시설을 이용하여 원자력 발전을 함으로써 에너지난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가 세 번째 항목에 잘 나타나 있다.
네 번째 항목 해설
북한이 에너지난을 해소(영변의 핵시설을 재가동함으로써 원자력 발전을 준비)하기 위해 NPT 탈퇴를 선언하므로 ‘핵무기를 생산하기 위해 NPT를 탈퇴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NPT 탈퇴 이후의 영변 핵시설 가동은 평화적 목적 즉 전력 생산에 국한됨을 믿어달라는 호소이다.
다섯 번째 항목 해설
미국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1993년 6월 11일의 조미 공동성명과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한 압살 정책을 그만두고 북한체제의 생존보장(핵선제공격 계획 포기)을 한다면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있음을 증명해보이겠다는 다짐이다.
북한 당국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농축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핵개발 의지)으로 핵무기의 실전배치가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프로그램은 미국으로부터 생존권?경제제재 해제를 보장받음으로써 국가발전을 도모하려는 협상카드일뿐이다. 이러한 협상카드를 비장의 무기로 사용해온 북한 당국은 핵개발 프로그램이 있는체 하면서 NCND(핵 프로그램이나 핵무기 보유에 대하여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정책)를 구사해왔다.
북한의 뜻은 위의 협상카드와 미국의 북한 체제 보장 카드를 맞바꿔치기 하자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의했다.
이제 북한의 NPT 탈퇴 선언으로 공이 미국으로 넘어갔으므로 미국쪽에서 북한의 요구사항에 대하여 응답할 차례이다.
북한 핵 사태의 진상과 NPT 탈퇴의 배경 (6)
NPT체제의 성격과 문제점-①
원저자; 이삼성 (카톨릭대학 교수)/ 정리; 김승국
NPT는 처음부터 미소 두 핵강대국들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이 조약의 핵심은 기존의 핵무기 보유국가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지 않는 반면, 핵무기를 갖지 않은 비핵국가들은 IAEA의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핵보유국가들이 이 조약상 지는 유일한 의무는 핵감축을 위해 성실히 노력한다는, 구체적인 구속성을 갖지 않는 약속일 뿐이다.
(따라서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은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를 지닌 NPT 체제의 모순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핵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파열구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도 대화도 선택하지 못한채 안절부절 못하는 배경에 이러한 사연이 있다. 앞으로 북한은 미국의 이러한 딜레마를 더욱 파고들면서 북한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다음 제2의 제네바 협정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으로 예측된다; 편집자주)
1. NPT 운영상의 불공정성
NPT 체제는 또 한 가지 놀라운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조약상으로는 핵보유국가들은 NPT에 가입한 비핵국가들에게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기술을 제공하되 비가입국에게는 그러한 기술이전을 제한하고 있다(북한의 NPT 탈퇴가 기정사실화 되면 KEDO를 통해 미국이 북한에 건네주려고 한 핵기술 제공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KEDO협정은 자동적으로 폐기되며 제네바 협정은 사문화된다. 따라서 북한의 NPT 탈퇴 이후는 ‘제네바 협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정세’가 아니라 ‘북-미간의 협상을 통해 영변의 핵시설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조건 아래에서 제2의 제네바 협정 및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는 불가침 협정 등을 체결하는 정세’이다; 편집자 주).
결국 NPT에 가입한 비핵국가들은 사찰을 받는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하였으되, 비가입국에 비하여 하등의 이득을 얻는 것이 없었다(제네바 협정의 이익 즉 체제보장?경수로 완공을 얻지 못한 북한이 보기에 NPT체제의 비핵국가로 남아있다가는 공연히 미국의 핵공방에 말려들어 핵사찰 시비-유엔 안보리 상정-유엔 또는 미국의 전쟁 선포-한반도에서의 전쟁-북한 체제 붕괴로 나아가는 것보다 NPT를 탈퇴한 비가입국으로서 자유롭게 전력을 생산하는 편이 훨씬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더욱이 NPT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들도 해당 시설에 대한 사찰에만 응한다고 약속하면 원자력 발전 시설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은 마음 놓고 ‘NPT 탈퇴’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
NPT에 가입한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하여 핵시설 유통상의 특별한 이득은 없으면서도, NPT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에 비하여 전면적인 사찰을 받는 상대적 불이익을 받고 있는 셈이다(이러한 모순이 북한의 NPT 탈퇴를 유발했을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그렇다면 NPT를 유지하고 있는 힘의 원천은 핵무기 확산 금지에 대한 공정한 원칙들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아니라 NPT의 선별적 운용에 기득권을 가진 기존 핵보유국가들의 강제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NPT 체제 유지의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국제원자력 기구가 비핵국가들에게 사찰을 강제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은 두 가지에 기초한다. 첫째는 미국의 군사력 위협이다. 둘째는 유엔 안보리가 경제 및 군사제재 등의 여러 가지 제제조치를 결의해서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러한 뒷받침이 없이는 국제원자력 기구가 사찰 요구를 제대로 관철할 수 없다. 국제원자력 기구의 힘은 미국의 군사력, 그리고 미국과 함께 핵무기를 독과점하고 있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들의 기득권에 의하여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의 ‘편집자 주’ 부분을 제외한 본문은 이 삼성 지음 『한반도 핵문제와 미국 외교』(한길사, 1994) 273~275쪽에서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