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문단은 26일 오후에 진행하려고 했다가 오사카 간사이 공항 측의 입국 저지로 연기한 한국인 원폭피해자 추모의식을 27일 오전 9시 10분, 히로시마 평화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탑에서 진행했습니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이 히로시마 영사관이 준비한 꽃을 희생자들께 드린 후 오바마 대톨령에게 전달할 서한을 낭독하는 것으로 추모인사를 대신했습니다. 방일단은 낭독이 끝난 후 책자로 만들어진 서한을 영령들께 바치고 술을 드린 후, "한국인 피폭자에게 사죄하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위령비 수호 거북상 위에 올려놓고 절을 올렸습니다.
한국인 원폭희생자 추모행사에서 심진태(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이 절을 올리고 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과 평통사 등 지원단체 참가자들이 위령비에 헌화하고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한국인 피폭자 심진태 지부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낭독하고 있다.
추모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외신 기자가 발디딜 틈없이 들어찼습니다. 추모의식을 마치자마자 강제숙 합천평화의집 운영위원 사회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는데, 현수막을 펼칠 새도 없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전 9시 40분 경부터 시작된 기자회견에서는 먼저 전날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일어난 방일단에 대한 일본 당국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경과보고가 진행되었습니다. 방일단의 일원인 김찬수 대구평통사 대표는 오사카(大阪)공항 입국관리국은 G7이 열리고 있어 보안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특별히 인터뷰를 요구하여 사실상 3시간 동안 '억류'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인터뷰 과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으며 특히 심진태 지부장의 경우 세관에서 다시 과도한 검색을 당한 일을 상세히 공유하고 일본정부의 납득할 만한 해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부장은 "3시간 부당하게 갇혀있는데도 분통이 터졌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수년간 얼마나 기막힌 세월을 사셨는지 실감이 났다."고 소회를 밝히고 "위령비 앞에 서니 이 위령비를 한국에 가져가고싶은 심정이 든다. 서러움 받는 땅에 이리 두어야 하나, 비통한 심정이다"며 일본 정부의 부당함을 다시 한 번 규탄했습니다.
한국인 원폭1세 심진태 선생과 원폭 2세 한정순 선생이 한국 피폭자들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면담을 호소했다.
다음으로 피폭 1세이신 고일국 피폭자협회 전 서울지부장의 발언과 2세를 대표하여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명예 회장의 발언이 진행되었습니다. 피폭 3세의 고통스런 삶을 사는 아드님 사진을 손에 든 한정순 회장은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태어나는 날부터 시작된 전쟁은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이 잔인한 모습을 여러분은 기억해야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모습을 보고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합니다"고 촉구했습니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
이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낭독은 이미 추모의식에서 낭독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기자들은 방일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방일단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돋보이게할 뿐 전쟁을 일으키고 식민지 지배와 억압을 일삼아온 일본의 죄, 그리고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 원폭 피해까지 입은 한국인 피폭자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밖이라고 지적하고 "원폭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 세계의 평화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원폭피해를 입은 한국인에게 사죄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왔다"고 방일목적을 소개했습니다.
또 한 기자는 북한의 피폭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지난 2007년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 피폭자 상황을 알게 되었다. 같은 피폭자이니 연대해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다른 기자는 일본 국민들은 오바마에게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전쟁을 일으킨 것은 정부이지 국민이 아니다. 일본 국민도 원자탄에 의해 희생되었으니 당연히 미국에 사죄를 요구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기자들은 오바마에게 어떻게 서한을 전달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방일단은 "오후부터 이곳이 통제된다고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언론사에서도 우리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히로시마 시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과 입장 발표
오전 10시 30분, 방일단은 히로시마 지역언론사와 기자회견을 위해 히로시마 시청 기자실로 이동했습니다. 이 기자회견에서는 피폭되신 분들이 개별적인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들은 역시 방일목적과 일정 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한 기자는 미국과 일본 각각에 대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질문했는데 방일단은 미국은 원폭투하자로서, 일본은 전범국으로서 각각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고일국 전지부장은 "북한 핵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핵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오전의 두 기자회견을 통해 피폭자들은 "핵이 있는 한 결코 평화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히로시마 평화성당에 있는 스톤워크 앞에서 다시 기자브리핑을 가졌습니다. 스톤워크는 피폭 60년인 2005년에 미국시민이 미국의 원폭투하를 사죄하고 원폭으로 인한 희생자와 모든 전쟁피해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 나가사키에서 히로시마까지 끌고온 평화기념석입니다. 기자브리핑에는 KBS, MBC, JTBC 등 한국 방송사의 특파원들이 참여했고 이번 일본방문단의 방일 취지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피력하였습니다.
히로시마 평화의성당에서 기자브리핑. KBS, MBC, JTBC 등 한국 방송사 특파원들이 취재를 나왔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3시 30분, 방일단은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히로시마평화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평화공원으로 가는 길목마다 경찰이 배치되어 있고 평화공원 앞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하는 인파가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평화공원 정문 쪽으로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없이 방일단은 오후 4시 30분 경 평화공원 건너편 평화탑 앞에서 네 번째 기자브리핑(회견)을 진행하고 5시 경에는 차도 가까이 인파 쪽으로 나가 피켓팅을 벌였습니다. 경찰들이 매우 긴장하며 피켓팅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티셔츠 등 뒤에 적힌 "사죄와 배상"요구 구호 때문에 우익들이 공격할 것이라고 하면서 티셔츠 등에 있는 글자를 가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요구에 응하지 않자 경찰은 방일단 등에 있는 글자가 보이지 않게 밀착해서 동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 히로시마 방문 시간이 다가오자 평화공원 주변에 차벽이 설치되고 일반인 출입이 봉쇄되어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입장발표와 피켓팅을 진행
이러는 사이 5시 27분. 오바마 대통령이 평화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방일단은 봉쇄와 경찰의 밀착 동행 때문에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방일단과 함께 있던 한국 언론사 기자들이 생중계되는 일본 방송을 보여주어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피폭자는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포옹했지만 한국인 피폭자는 공원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아베 총리와 원폭 돔이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서 한 동안 원폭돔을 향해 서있었지만 그곳에서 100미터 정도 되는 곳에 있는 한국인 원폭희생자위령비 쪽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인 피폭자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죄는 하지 않으면서 한국인 피폭자를 거론한 것은 한미일 동맹을 추구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국민들을 의식한 계산된, 면피용 발언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일단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 언급은 향후 피폭자 문제에 대한 미, 일의 책임을 묻는 활동에서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일본은 더 이상 자신이 유일한 피폭국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받기까지 7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심진태 지부장은 이 정도의 언급이라도 나온 것은 지난 해 NPT에서 전세계를 향해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알린 성과라며 평통사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심 지부장 뿐 아니라 이번에 함께 하신 피폭1세, 2세 분들 모두 평통사와 시민단체의 지원과 협조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결국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방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공원 진입도 못한채 밖에서 울분을 삼켜야 했습니다.
오후 6시 30분. 오바마 대통령 일행이 떠나자마자 평화공원에 둘러쳐진 봉쇄망은 순식간에 해제되었습니다. 방일단은 다시 평화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 앞에서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심진태 지부장은 방일단을 대표하여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인정한 점을 평가하면서도 사죄를 하지 않은 것과 한국인 피폭자들의 요구를 외면한 점에 대해 규탄했습니다.
기자들과의 만남을 마친 후 방일단은 위령비 앞에 서서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심진태 지부장은 "우리가 힘이 없어 겨우 인정받는 데 그쳤습니다. 기어이 사죄받고 배상받겠습니다. 핵없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인사하고 방문단 일행과 같이 영령 앞에 절을 올렸습니다. 한정순 회장이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셨겠냐"며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고향의 봄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다 방문단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이 메어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한국인 피폭자들. 심진태 지부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방문단은 일본 전국의 반핵평화 활동가들이 모인 '핵무기 폐기에 역행하는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의 의미를 묻는' 시민 심포지엄에 참석하여 인사를 드리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하는 서한을 나누어드렸습니다.
핵무기 폐기에 역행하는 오바마 하로시마 방문의 의미를 묻는 시민 심포지엄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입장을 전하고 있다.
방일단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긴장도 풀지 못한 채 강행군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어려운 일정들을 모두 소화했습니다. 이번 일정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수고하신 사무처 성원들과 일본 현지에서 통역과 생활 등을 도와주신 분들, 응원해주신 회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방일단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28일 귀국합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히로시마 돔 -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한된 당시 건물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