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보도] 평통사 “히로시마 ‘원폭 투하’ 국제법 위반…미국 책임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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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사 “히로시마 ‘원폭 투하’ 국제법 위반…미국 책임 묻겠다”
[짬] 원폭국제민중법정 준비하는 이기열·오혜란
기자김보근
- 수정 2024-06-03 19:16
- 등록 2024-06-03 16:52
오는 7~8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미국의 핵무기 투하의 책임을 묻는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 국제토론회’를 준비하는 이기열(왼쪽)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감사와 오혜란(오른쪽)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집행위원장이 지난 29일 서대문구 충정로3가 평통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해 6월7일 경북 합천에서 열린 제1차 국제토론회 자료집을 들고 원폭국제민중법정의 성공적 개최를 다짐했다.
“저희 원폭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미국이 1945년 히로시마에 핵을 터뜨린 것을 사죄하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전 세계 핵이 고철이 되는 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이기열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감사)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1945년 당시의 국제법으로도 위법하다는 것을 ‘원폭국제민중법정’에서 규명해내는 것이 원자폭탄을 없애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오혜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집행위원장)
지난 29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평화운동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평통사) 본부에서 만난 이기열 감사와 오혜란 집행위원장의 다짐이다. 두 사람은 오는 7~8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미국의 핵무기 투하의 책임을 묻는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 국제토론회’에 함께 참여한다. 이번 국제토론회는 2026년 뉴욕에서 열릴 원폭국제민중법정으로 가는 중요한 발판이다. 한국·일본·미국·스위스·호주·뉴질랜드 등지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이번 국제토론회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위법성을 정밀하게 살펴볼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후 2년 동안 보완점들을 점검한 뒤 뉴욕에서 미국의 위법성을 최종적으로 선고할 예정이다.
이 감사는 원폭국제민중법정에 미국을 고소한 원고이며, 오 집행위원장은 한국원폭피해자협회로부터 재판 진행을 의뢰받은 평통사를 대표해 민중법정 준비를 총괄하고 있다.
미국 핵무기 투하의 위법성 물을
2026년 ‘원폭국제민중법정’ 앞서
7~8일 히로시마 국제토론회 참여
일가족 7명 피폭된 이기열 감사
민중법정에 미국 고소한 원고
“핵 위법성 국제 인식 높아지길”
민중법정 준비 총괄 오혜란 위원장
“유죄 판결 뒤 민사소송 제기 계획”
이 감사가 원폭국제민중법정에 미국을 고소하는 것은 약 7만~10만명에 이르렀던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한’을 대변한 행동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징용 등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이다. 이 중 현재 생존해 있는 이는 1800여명에 불과하다. 생존자들도 대부분 한평생을 피폭 후유증에 시달려 왔다.
“1945년 3월 히로시마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철도노동자로 히로시마에 가셨던 아버지를 비롯해 어머니까지 일가족 7명이 같은 해 8월6일 모두 피폭됐습니다.”
이 감사의 가족은 해방 뒤 11월에 부산으로 귀국했지만 기다린 것은 가난과 피폭 후유증과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부모님 모두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사약에 쓰이는 식물인 ‘장록’ 등을 사용한 민간치료법으로 치료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돼 1970년대 중반에 68살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일본은 1957년 ‘원폭 피해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일본인 원폭 피해자의 치료를 도왔지만,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한정해 한국으로 돌아온 원폭피해자들을 외면했다.
“저도 4살 때부터 밤에 이불에 누우면 콧속이 아파서 잠을 못 잤습니다. 마스크를 써야만 겨우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엉덩이를 매일 소독해야 할 정도로 피부병을 심하게 앓았고, 또 코와 목에 난 혹 제거 등을 위해 수술을 7번이나 해야 했습니다.”
원폭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이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힘겹게 싸워나갔다. 일본 정부 등을 상대로는 28차례나 소송을 제기해 25번 승소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 피폭 후유증 치료에서 일본인과의 차별을 없애나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미국이었다. 원폭 투하 당사자인 미국은 그동안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에 1967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구성한 원폭피해자들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사과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영 대립 시기에 미국을 건드리는 것은 민감한 문제였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터뜨린 덕분에 해방이 빨라졌다”는 일부 여론도 걸림돌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심진태(81)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의 2015년 5월 ‘유엔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 연설은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당시 심 지부장은 “이제 피폭자들이 일어서서 다시는 핵무기를 못 쓰게 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며 “그 첫 번째가 미국이 자기 책임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 연설이 원폭국제민중법정의 출발점이 됐다. 심 지부장은 현재 이 감사와 함께 민중법정의 원고로 참여하고 있다. 이후 한국원폭피해자협회가 민중법정의 진행을 평통사에 의뢰해왔다.
평통사는 민중법정이 ‘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미국 국내법에 원폭 투하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 국제법으로 싸워야 하는데, 핵확산금지조약 설립 등 핵 관련 국제법에도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다. 동맹인 미국의 잘못을 따진다는 점에서 한국 보수진영의 반발도 클 수 있다. 오혜란 집행위원장은 “평통사 내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원폭피해자 어르신들이 하시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뒷받침을 안 할 수는 없다’며 ‘하자’고 결론을 냈다”고 했다.
제2차 국제토론회 포스터. 평통사 제공
원폭국제민중법정에서는 이 문제를 ‘인도법’ 등에 근거해 풀어갈 계획이다. 지난해 6월7일 경남 합천에서 열린 제1차 국제토론회에서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전시에 적용되는 국제인도법의 ‘기본원칙’인 구별의 원칙(민간인 공격 금지), 불필요한 고통 금지,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더라도 국가들은 공공 양심의 요구에 따라 민간인 보호 등 기존의 인도적 관습에 구속된다’는 마르텐스 조약 등을 위반한 불법”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올해는 이를 좀 더 정교화하면서, 1945년 이후 국제 인도법의 발전 등을 고찰해 ‘현재 시점에서의 원폭 사용은 더 커다란 범죄’라는 점을 명확히 할 계획이다.
“2026년 뉴욕 민중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어떤 계기가 온다면 미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국제 법률가들은 그 소송이 한 30년은 걸릴 거라고 해요. 긴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오혜란 집행위원장)
“민중법정을 통해 미국의 사과를 받아내고 핵 사용의 위법성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결국 북한 김정은 정권도 핵 사용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이기열 감사)
길은 멀지만 그 길을 완주해내겠다는 두 사람의 의지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글·사진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