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군축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토론회] 6/7 히로시마 평화발자국 등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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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히로시마 평화발자국 등

- 2024년 6월 7일, 히로시마 평화공원  -

 

6/6 해외게스트 환영행사

6/7 히로시마 평화발자국

6/7 원폭국제민중법정 조직위원회 구성 좌담회

6/7 한국원폭희생자 위령제

6/8 토론회 오프닝과 인사말

6/8 토론회 1주제

6/8 토론회 2주제

6/8 토론회 3주제

6/8 마무리 상징의식

 

 

6월 7일 이른 아침을 먹고 해외 참가자들과 평통사 회원들은 4개의 그룹으로 나눠 히로시마 평화발자국을 시작했습니다. 박석분 팀장, 유영재 팀장, 대구 김찬수 대표가 해설사로 나서 원폭투하가 남긴 참상과 한국원폭피해자의 의미에 대해 해설했습니다. 


 

평화발자국 코스

 

평화발자국은 애초 미국이 표적으로 삼았던 아이오이교(상생교)를 출발하여 실제 원폭이 폭발한 상공의 그라운드제로인 시마병원 - 히로시마 원폭의 대표 이미지로 알려진 원폭 돔 -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공양탑을 지나 한국원폭희생자위령비에서 마무리 하는 순서로 진행했습니다. 


타겟포인트인 아이오이교(상생교)와 타겟포인트에서 250여미터 떨어진 폭심지인 시마 병원의 존재는 트루먼 정부의 원폭 투하가 국제인도법의 명확한 위배 임을 증명합니다. 1907년 헤이그협약 육전규정 25조는 방어되지 않는 도시에 대한 공격, 포격을 금지하고 있으며 육전규정 27조는 설령 방어된 도시라 하더라도 병원이나 학교, 유물 등은 피해를 면하게 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간인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구별의 원칙'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조항입니다. 

 

폭심지 시마병원 앞에서 대전충청과 수도권 회원들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상징적 이미지로 알려진 것이 원폭 돔 입니다. 원래는 히로시마현산업장려관이었던 이 건물은 일부 철골을 바탕으로 한 벽돌 건물로 유럽풍의 건축물입니다. 1966년 히로시마시의회가 돔의 보존을 결의한 후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핵무기 폐기와 평화를 상징하게 됩니다. 하지만, 왜 원폭이 투하됐는지, 누가 투하했는지에 대한 기술이 없습니다. 결국 일본이 전범국가라는 가해자성을 가리고 원폭피해국이라는 피해자성만 부각하는 데 이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설사들은 "미일 동맹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라는 원죄와 미국의 대일본 원폭 투하라는 반인도적 응징이 서로를 상쇄하면서 동맹의 심리적 기초를 마련했다. 역사적 가해와 고통의 상환 방정식 위에 미일동맹이 서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 동맹을 통해 특히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이웃 사회들에 대한 일본의 역사반성의 필요성을 면탈했다”라고 쓴 이삼성 교수의 1차 토론회 발표문을 인용하며 "강제병합하고, 식민지배하며 한국인들을 강제동원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 일본과 반인도적 대량파괴무기로 민간인들을 무차별 살상한 최초, 유일의 핵무기 사용국 미국은 서로 면죄부를 주는 가해국 동맹을 맺은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고, 한국 원폭 피해자들이 핵시대의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은 일본과 미국의 중첩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해설했습니다. 

 

원폭 돔 앞에서 청년 회원들

 

한국원폭피해자들은 전체 피해자의 10%가량 차지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조차 실태조사에 손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원 한켠에 자리잡은 공양탑은 희생자들 중 신원이 밝혀지지 않거나, 가족이 몰살되어 따로 장례를 치를 이가 없는 희생자들이 합사된 곳입니다. 원폭 투하 당시 화상을 입은 피해자들은 그 뜨거움을 견디다 못해 강물에 뛰어들곤 했는데, 강에서 건져 올린 시신만 수만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 원폭 희생자들 일부도 이곳 다수 봉안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이곳을 찾아 참배하는 한국인 피해 유족도 있다고 합니다. 

 

공양탑 앞에서 부산과 광전, 전북 회원들

 

참가자들은 공양탑 옆 한국인원폭희생자 위령비를 마지막으로 평화발자국을 마쳤습니다. 

 

위령비는 한국 원폭피해자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공원 안에 설치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6년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수천의 한국인들'의 피해사실을 사상 최초로 인정하는 발언을 하면서도 끝내 위령비 참배는 외면했고, 2023년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이 곳을 참배했지만 바다 건너 간 한국원폭피해자들의 참배는 막아서는 납득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원폭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해외 게스트들과 발표자들

 

평화발자국을 마친 해외 참가자들과 평통사 회원들은 평화자료관을 둘러보았습니다. 

 

한편, 평화공원 내 자료관은 평화기념자료관 동관에 있던 한국인의 강제동원과 원폭 피해 전시가 2017년, 2019년 아베 정권에 의해 관련 내용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베 정권은 피폭 당시 피해자들의 피부가 녹아내리는 장면을 묘사한 밀랍 인형 전시도 철거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한 한국 피폭자의 존재 지우기와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인한 피폭의 참상 지우기가 의미하는 바는 결국 일본의 원죄와 미국의 원죄를 가리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히로시마 평화기념비의 “잘못은 되풀이되지 않을테니”라는 문구가 그 잘못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것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참가자들은 이날 일정을 통해 왜 한국 원폭피해자들이 미국의 책임을 묻는 원고가 될 수밖에 없는지, 되어야 하는지를 실감하며 타국땅에서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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