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3. 14] 남북 장관급 회담 파행, 정상회담에도 악영향 준다.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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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장관급 회담 파행, 정상회담에도 악영향 준다
김승국 홍보위원장
남북 장관급회담의 파행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지 장기화할지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파국이 장기화된다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급 물살을 타던 남북관계를 이처럼 냉각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한·미 정상회담에 있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불신 발언이 회담 연기의 불씨가 되었다. 김정일 위원장을 중세기에나 있을 법한 전제군주로 묘사하는 막말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북·미관계가 순탄할 리 있겠는가. 북·미관계가 악화되면 자동적으로 남·북관계도 덩달아 나빠질 게 틀림없다.
이런 악순환이 장관급 회담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사태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한반도 주변 정세가 제네바협정 이전으로 되돌아갈지 모른다.
장관급회담 연기의 속사정을 알 수는 없으나 북한 쪽의 뿌리 깊은 대미 불신과 민족공조 대신 한·미공조에 매달린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불신이 함께 작용한 것 같다. 북을 때리는 미국보다 북 때리기에 동조한 김대중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이 회담 연기를 작심하게 한 듯하다.
미국의 북 때리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부시 정부 등장 이후 그 증세가 심각하다. 미국 공화당 강경파의 북 증오심이 북 붕괴론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미운 털이 박힌 북에 대한 미국 지배층의 편집증이 북 붕괴 강박증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강박증이 '깡패국가 북 말살' 노이로제를 낳고 대북 불신의 심리적 기제로 되어 있다. "북이 미우니 망했으면 좋겠다"는 놀부 근성을 부시 정부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북·미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평양 방문 직전에까지 갔던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접근을 하루아침에 번복하여 북 목조르기에 나선 부시 정부의 놀부 외교를 성토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제네바합의의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고 10·12 북·미 공동성명을 폐기하고자 하는 부시 정권의 약속 위반 움직임은 북에 대한 배반이다. NMD(국가 미사일 방어계획)나 북의 재래식 전력 감축 제안은 북의 군대의 무력화를 노린 것이다. 이러한 협공을 모의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북쪽의 불만이 장관급회담 연기로 나타난 듯하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보인 김대중 대통령의 외세공조는 북한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했다. 미국의 상호주의 수용, NMD 동조, 평화선언 포기 등 미국에 추종하는 인상을 주는 김 대통령의 외교에 대한 북의 불신감을 헤아려 볼 만하다. 러시아를 등지고 미국의 NMD노선에 접근한 김 대통령의 표변은 미국 추종의 상징이다. 이러한 외세공조·외세추종은 북의 지론인 민족공조와 어긋나며 6·15 선언과도 배치된다. 6·15 선언의 핵심인 자주 정신(제1항)을 김 대통령이 과연 실현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힌 북이 장관급 회담 불참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남북이 김 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맞춰 준비해온 평화선언(요미우리 신문 3. 13.)을 돌연 중단한 조치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있을 법하다. 평화선언이 주한미군의 조기 철수론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한 미국의 견제에 김 대통령이 승복(?)했는데, 이러한 대미 추종외교도 북한 쪽에 불만을 가져왔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6·15 선언에 따른 남북화해 분위기와 한·미 군사동맹의 강화는 모순된다. 북과 화해·교류하는 뒷켠에서 한국군의 전력증강 사업을 위해 10조원을 쏟아 붓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러한 군사적인 모순도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비롯한 장관급 회담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장관급회담에 재를 뿌린 외세공조를 지양하고 민족끼리 마주 앉아 통일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민족공조와 외세공조는 양립할 수 없다. 힘으로 북을 협살하려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동조하는 것은 외세공조다. 동족인 북을 터무니없이 깡패로 몰아붙여 NMD를 강행하는데 동조하는 것도 외세공조다. 정부는 장관급 회담을 시급히 재개하여 민족공조의 길을 모색하길 바란다.(2001년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