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2003. 9. 20] [한겨레 특별기고] '점령군' 동참 안될말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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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미국 코넬대학 교수 (국제정치학)


‘점령군’ 동참 안될말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도덕적, 법적, 정치적으로 모두 문제를 안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해도 파병은 해서는 안될 일이다.
파병을 결정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의 이라크 사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라크가 내부적으로 치안부재와 혼란의 상태에 있고, 이러한 이라크를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미국이 곤경에 빠져있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라크와 미국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혼란의 본질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이은 군사점령에 있다.

미국은 국제관계에서 군사력의 사용과 위협을 금지하고 있는 유엔헌장 제2조 4항을 위반하면서 군사력으로 후세인 정권을 권좌에서 밀어냈을 뿐 아니라 현재 이라크를 군사점령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과도 통치위원회를 임명하기는 했으나 실질적인 주권을 쥐고 있으며 이라크인에 주권을 이양하라는 이라크와 국제사회의 여론을 무시하고 있다.

최근 바그다드를 방문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성급하게 주권을 이양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구실로 권력 이양 일정표를 제시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이와 동시에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9월7일 대국민연설에서 이라크 통치에 필요하다며 미 연방정부의 교육예산보다 1.6배 이상이나 많은 870억달러를 요청, 미국의 정책이 조속한 권력이양보다는 장기적 군사점령을 지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870억달러 중 700억달러 이상이 군사작전·안보용이라는 사실이 점령정책의 군사성을 여실히 반증하고 있다.

미국이 미 국민과 세계인을 거짓말로 호도하고 선제공격으로 이라크를 침략한 후 군대로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것, 이것이 이라크 사태의 본질이다. 현재 미국이 이라크에서 겪고 있는 총체적 어려움은 이러한 본질에서 비롯된다. 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정보보고서도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적대감이 보통 이라크인들에게 깊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계속 늘기만 하는 미군의 인명피해는 광범위한 적대감이라는 토양이 배출하는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토양은 바로 미국의 점령정책이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곤경에 빠진 혈맹 미국을 위해 한국이 해야 할 일은 파병이 아니다. 이라크에 전투 군사력을 증파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인명피해를 낳을 것이며 더 큰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결과 미국과 미국의 점령정책에 동참하는 국가들은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파병은 현재 미국이 빠져 있는 수렁을 더 깊고 넓게 파는 결과를 초래, 미국에도 더 큰 손해를 안길 수 있다. 한국은 동맹국 미국이 이러한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철군과 조속한 권력이양을 권고하고, 이라크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복구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미국을 돕는 길인 것이며, 이라크를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의 국익은 이러한 과정에서 챙겨지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도 대한민국 헌법도 이러한 조처를 촉구하고 있다. 상호방위조약은 제1조에서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할 것을 규정하고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하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 헌법은 제5조 1항에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는가. 한국 헌법은 물론 유엔헌장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는 행위가 될 파병은 하지 않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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