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2010/01/09] 용산 철거민 장례식 참가 과정을 보고합니다.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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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용산 철거민 장례식 참가 과정 보고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55일 만에 철거민 다섯분의 장례식이 1월 9일 범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유가족들과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순천향병원과 서울역광장, 용산참사 현장에서 각각 발인식·영결식·노제를 열었다.
평통사에서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배종열 상임대표, 변연식 공동대표, 전주 이석영 대표를 비롯하여 서울, 인천, 부천, 경기남부, 대전충남, 전주 등에서 많은 회원들이 장례식에 참가하였다. 또한 평통사는 139명의 장례위원 명단을 제출하였다. 장례위원회에 배종열, 홍근수 상임대표가 고문, 문규현 상임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 등으로 참가하였다.
이성수(당시 51세)·윤용헌(49)·이상림(72)·양회성(58)·한대성(54) 열사 다섯분의 발인이 오전 9시 유가족들과 수많은 사람의 애도 속에 순천향병원에서 엄숙하면서도 애통하게 치러졌다. 열사들의 관이 거의 1년여 만에 운구되자 유족들은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기 오열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눈물을 흘리며 고인들의 넋이 영면하기를  기원했다.
서울역광장 영결식장으로 이동 중 유가족들은 명동성당에 들러 수배중인 전철연 남경남 의장과 용산 범대위 박래군,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나 그동안의 수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세 명의 수배자들은 용산 철거민 삼우제 후 자진출두 할 예정이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낮 12시부터 서울역광장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유족들과 장례위원, 정치인,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인사 등 5천여명(경찰 추산 2천500여명)이 참가했다. 장례식 참가자들은 고인들의 넋이 이제는 구천을 벗어나 부디 철거가 없는 세상에서 편안히 쉴 수 있기를 염원하였다. 아울러 영결식 내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는 살아남은 자들이 고인들을 대신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되었다.  
영결식은 개식선언·열사약력보고·경과보고·조사·조가·진혼무·유가족인사·분향과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강실 상임장례위원장은 조사에서 "355일 동안 유가족들도 힘들고 어려웠지만 고인들도 차가운 냉동고 안에서 춥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며 "아직 끝은 아니지만, 남은 과제는 산자에게 맡기고 편히 가시라"고 고인들을 위로했다. 공동 상임장례위원장을 맡은 조희주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 대표는 "참사 이후 용산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망루로 다시 우뚝 섰다"며 "용산참사와 같은 아픔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살인적 재개발을 없애는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도 장례식 장소를 찾았다. 배 회장은 "서울역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인 것처럼 마석 모란공원에 묻힌 민주·민족·노동열사들의 영혼도 공원 앞에 모여 고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고인들은 이제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중가수 박준씨와 안치환씨가 조가를 부르고 김미선씨가 진혼무를 펼치자, 일부 참가자들은 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으며 탄식을 쏟아 내는 모습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영결식 이후 용산 참사현장까지 행진이 시작되었다. 경찰의 사전 양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행진에 돌입하려고 하자 압박을 가해온다. 장례식 날까지 끝끝내 악역을 자처하는 경찰들을 보면서 서글픔과 분노가 교차한다. 이 때문에 용산 남일당 현장에서의 오후 3시 노제가 2시간 가까이 지체되었다.
장례식 분위기는 엄숙했다. 하지만 억울함과 분노가 가시지 않은 탓에 격한 이야기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백기완 선생은 "분명한 죄를 지은 우리 사회 최대 부자 이건희는 사면되고, 죄 없는 철거민은 테러리스트와 폭도로 몰려 숨지고 구속됐다"며 "참사가 아닌 학살인데, 이명박 대통령이 이 자리에 나와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했는데, 이 시대에 우리는 해방 직후부터 민주주의·통일·해방을 위해 싸웠던 60년의 역사를 잃어버렸다"며 "1년간 견뎌 주고 싸웠던 것에 감사하지만, 그 힘으로 더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학살주범 이명박 정부'·'열사여 편히 가소서'와 같은 문구를 적은 수백 개의 만장이 눈보라 세찬 바람 속에서 힘차게 펄럭였다. 마치 수많은 사람들이 고인을 보내기 위해 손을 흔드는 모습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유가족들도 "장례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용산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의 사과와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싸우겠다"는 뜻을 전했다.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는 "고인들이 돌아가신 것도 억울했지만, 도심 테러리스트로 몰릴 때는 분노가 치솟았다"며 "땅바닥에 떨어진 고인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또 "용산참사와 관련해 감옥에 수감되고, 수배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며 "진실을 밝혀 이들이 풀려나도록 국민께서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전씨의 아들 이충연 용산4구역철거대책위원장은 장례식 참석을 위해 구속집행정지로 잠시 풀려났다가 이날 오후 늦게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다. 이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서울지법 1심 재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문정현 신부님은 용산참사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린 노제에서 "용산학살은 철거 세입자에 대한 도전이었지만 우리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며 "사법처리된 분들은 석방돼야 하고 재개발도 끝나야 한다"고 결기를 세워 강조했다. "용산 철거민 다섯 분의 유가족들이 중심이 되어서 투쟁을 한 결과 지금까지 투쟁이 이어져올 수 있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구속자 석방, 수배 해제'를 위해 끝까지 싸우자"며 노제 참가자 모두에게 호소하였다.
유가족들은 오후 6시30분께 노제를 끝내고 경기도 마석으로 이동, 오후 10시께 다섯 분의 열사를 마석 모란공원에 묻는 하관식 행사를 끝으로 모든 장례일정을 마쳤다. 하관식은 평통사 김종일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모든 장례 일정을 마치고 용산 남일동 현장에 도착하니 어느새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다섯 분 열사들의 외침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산 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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