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07] 9.19 6자회담 공동성명 이후 동북아 정세 --- 리영희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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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10월 7일 평화·통일연구소 창립 1주년 토론회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및 평화군축 방안’을 지상중계한다. 이날 토론회는 리영희 명예이사장의 ‘9.19 베이징공동선언 이후 동북아 정세’ 강연에 이어, 1부 ‘한반도 군사적 신뢰구축과 평화군축 방안’, 2부 ‘한반도 평화협정의 상과 평화체제 구축 경로’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토론회 발제문의 전문과 전체 내용은 평통사 홈페이지(www.peaceone.org)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9.19 6자회담 공동성명 이후 동북아 정세1)
평화통일연구소 명예이사장 리영희
토론회 주제에 대해서는 이제 발제하실 전문가들이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고, 나는 9.19 공동성명과 6자 회담 전후 과정에서 느낀 소감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6자회담 공동성명에 대한 낙관은 금물 : 미국이 조약을 지킨 사례 없어
6자 회담 공동성명에 대해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굉장히 문제해결에 접근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데 비해 나는 오히려 걱정과 불안이 생기면 우리들의 높은 경각심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이번 공동성명 합의문 자체로만 본다면 대체로 우리가 원했던 바이고,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전반적인 사정에 비추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고,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타당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미국이 전혀 그러한 방향으로의 문제 해결에 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특히 그렇습니다.
미국 집권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이라크의 베트남화로 한반도에서 대북 전쟁의 가능성이 낮아졌고, 미국내 분위기도 마치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였던 1970년대 초의 그런 정치적인 역동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전쟁애호집단으로서는 북경회담에서 이루어진 그 방향으로, 동북아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6자회담 공동성명을 지킬 것인가? 에 대해서 나는, 미국이 조약을 단 한번도 지킨 사례가 없으므로, 이 사실로부터 출발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지역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판단의 단서를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북경회담 합의문을 보고도 걱정하는 까닭은 미국이 유엔결의 또는 국제적인 합의에 기초한 많은 협약과 조약들을 하나같이 거부하고, 백지화해버리고 자기들의 이익에 100% 부합하지 않은 한, 어떠한 국제적 의무도 거부해 왔기 때문입니다.
비핵보유국의 핵무기 포기에 상응하여 핵강대국의 핵 폐기를 위해 노력하기로 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역행하는 국가도 바로 미국이고, 이라크의 경우만 해도 1974년에 유엔에서 결의한 침략에 관한 결의의 모든 항목에 다 위반됩니다. 미국은 자기들이 유리할 때는 남의 나라에 대해 그 조항을 들어 침략이라고 규정하고 자기들이 할 때는, 같은 행위라도 유엔결의를 이용해 정당화했던 것입니다.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핵문제에 관한 협정의 단계적 집행조치들을 백지화하여 ‘미·북핵협정’을 사문화시킨것도 미국입니다. 북한은 이에 대한 자위수단으로 핵개발을 재개했고, 이때문에 6자회담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오늘 토론회 주제인 군축 문제, 평화협정, 미군주둔 문제만 하더라도 1953년 7월에 체결된 휴전협정 제60조에 다 규정되어 있는데, 이런 규정들이 미국에 의해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휴전협정에는 당시 남쪽과 북쪽에 있던 무기와 같은 종류의 무기로만 낡은 무기를 1대 1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규정에 의하면 재래식 무기가 아닌 무기, 즉 핵무기는 한반도에 들여오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휴전협정 체결 후 2년 만에 이의 폐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1956년 남한에 수백개의 핵무기를 비밀리에 배치했습니다.
평화협정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미국이 휴전협정의 의무조항인 평화협정 체결 문제, 통일한국을 위한 선거문제를 1954년 4월의 제네바 회담에서 거부했던 이유는 한반도에 영구히 미군을 주둔시키고, 남한을 군사기지화 하여 중국과 소련 봉쇄를 위한 핵전쟁 기지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케네디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입니다.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와 더불어 논의되었던 베트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베트남에서 전쟁이 끝나면 남북통일 선거를 실시해서 통일국가 수립한다는 합의에 서명하자마자 미국은 곧바로 이를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에 대항해 승리한 베트남 인민이 다시 총을 들게 된 것입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처럼 베트남을 포함해서 동남아 지역에서 ‘동남아방위조약’이라는 대공산권포위전략을 위한 군사동맹체를 만들려는 목적 하에 평화협정이나 통일을 위한 남북 통일선거를 거부한 것입니다.
규정, 조약, 합의사항, 협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 되는 까닭은 미국이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50년 동안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미국이 조약을 지킨 일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한미동맹 해소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나의 견해
우리가 앞으로 미국과의 문제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2000년 615정상회담 전에 나는 통일된 뒤에도 통일코리아에 미군주둔을 허용한다는 한미간의 합의를 전제로 남북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민족에 대한 배신일 수 있다고 비판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를 군사적 하위동맹이라는 예속적 위치에서 친선우호관계조약으로 대치하면서 그 거리만큼 중국과 러시아에 가까이 가면서, 남쪽에 상응하는 같은 전략과 정책으로 북쪽의 도움과 협조해 가는 방향을 모색하도록 평양에 가서 말씀하시면 어떻겠는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미군철수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근본적 수정 내지 폐기 방향으로의 노력과 관련하여 15년 계획을 말씀드렸는데, 우선 5년간은 군사관계를 제외한 민간 전 분야에 걸쳐서 남북화해, 상조, 개혁을 추진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의 군사력에 대한 위협을 느끼지 않게끔 상황을 만들면서 환경을 조성한다. 그 즈음 미국에게 주한미군의 상당부분을 축소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휴전선에 배치된 유엔군대를 중립국가 군대로 대치해 나간다.
다음 5년 사이에는 북한과 군축문제를 논의하면서 실제로 남북간의 군사적 충돌이나 전쟁위기가 존재할 수 없는, 또 그것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국제적인 감시도 받으면서 미국으로 하여금 거의 대부분의 무기와 병력, 기지를 철수할 수 있는 준비단계를 한 10년 사이에 완료한다. 한국군대에 대한 미국의 작전통제권도 이 단계에 이양받는다.
나머지 5년은 그런 단계에 오면 이미 평화협정을 체결할 충분한 토대가 될 터이니 그때에 미국이 거부해 온 휴전협정 60조에 의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구함으로서 15년쯤 지나는 시점이 오면 미군주둔이 해소되고, 기지는 철폐되고 동시에 동맹관계는 군사동맹관계에서 평화적 우호 관계로 대치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이 상당히 불쾌해 했습니다. 그 시기에 이런 구상이라는 것이 먹혀들어갈 수 있는가 상당히 의심스러울 수 있는 데, 이와 같은 절차를 거쳐 지역 강대국 누구에게도 불안을 주지 않으면서 한반도 상황을 개선해 나간다면, 충분히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그와 같은 요구를 할 수 있는, 세계여론으로 하여금 미국이 거부하기 어려운 상태까지 한반도 정세를 끌고나가 동북아 정세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런 것이 방법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공동성명의 의의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우리 민족이 같은 목소리로 강대국들과 발언했다는 것: 남북 화해를 통해 전쟁의 빌미를 미국이 쥐지 못하도록 공동으로 노력해야
그래도 북경회담을 보며 한 가지 변화가 있구나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남북이 하나의 뜻과 하나의 전략과 하나의 목적으로 강대국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발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9세기말 이래 한반도를 요리하기 위한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수많은 회담에 민족과 국가의 대표가 단 한 번도 참석한 일이 없던 지난 110여년의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발언이라도 할 수 있었던, 그렇게 해서 말이나마 그러한 성명을 도출했다는 것. 여기에 처음으로 하나의 전진, 민족의 전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라파에서의 모든 전쟁과 정세불안의 요소가 됐던 발칸반도와 같이 우리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불찰로 말미암아 모든 동북아의 불안과 논쟁의 초점이 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역으로 말하자면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냐, 전쟁이냐 이런 문제는 우리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 민족 자신의 대응에 달려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동북아시아 세력권, 지배권 다툼을 위한, 미일군사동맹과 중국과의 전쟁위기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만 문제를 놓고 중국과 미국이 흥정을 하는 과정에서 마치 과거의 카스라-테프트처럼 필리핀을 주고 조선을 주고받고 하는 이런 경우도 일단은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강대국은, 그 극치는 미국이지만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최종적인 결정의 전제는 자국의 이익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만과 북한 문제가 동북아에서 패권주의적 국제관계의 해소에 평화적으로 도움되느냐 아니면 전쟁위기로까지 상황악화가 지속될 것인가? 특히 중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강화 될 때, 미국 자본주의와 미국 자본주의의 통치 집단이 대만 독립을 부추기면서 중국과의 위기 시국이 전개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군축문제에 있어서 탱크가 몇 대고 비행기는 몇 대여야 한다는 이것은 장기적 안목으로 검토해야 하지만, 정세를 총체적으로 전망한다면 우린 더욱 경계를 분명히 하고 민족간 화해를 통해서 전쟁의 빌미를 미국이 쥐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것에 당분간은 힘을 쏟아야 할 것이지, 북경회담 합의문이라는 종이조각을 토대로 해서 상황을 판단하고 우리 민족의 행동을 규정할 때는 아직은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정도의 높은 경각심을 가지고 사태를 살피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1) 이 글은 토론회에서의 강연을 녹취, 발췌한 것임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