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연대사] 17차 평화홀씨마당에 보내는 히라오카 다카시 전 히로시마 시장의 연대사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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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평화홀씨마당 연대사

 

히라오카 다카시 전 히로시마 시장

 

히라오카 다카시 전 시장은 원폭국제민중법정 국제조직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한국원폭피해자들의 미국 책임 촉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결같이 활동하시는 평통사 여러분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1945년 7월 16일, 미국 앨라모고도에서 일어난 핵폭발에 이어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됨으로써 인류에게 악몽의 핵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중국인, 미국인 등이 피폭되었습니다. 핵시대란 인간이 남녀노소, 국적의 구분 없이, 전시든 평시든 상관 없이 방사선의 피해를 입는 시대를 말합니다. 이후 79년 동안 핵은 군사적 이용, 상업적 이용을 막론하고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는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전쟁의 향방에 따라 핵무기가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피폭자들은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의 첫 번째 희생자이자 핵무기의 잔학성을 몸소 체험하였기에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핵무기 폐절과 세계평화 확립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피폭자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 미국의 원폭 공격의 피해자로서 그 고난에 찬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했습니다. 

 

핵무기의 비인도성은 무차별적인 대량학살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도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보유국들은 핵억제력을 신봉하며 핵폐절을 촉구하는 국제 여론을 무시하고 핵무기를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1만 2,000여 발의 핵탄두가 있지만, 핵무기로 국민의 생명과 평화로운 삶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핵억제력에 의존하는 것은 핵 군비경쟁을 초래할 뿐입니다. 게다가 이 세상에는 약 50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전쟁은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은 미국의 핵정책에 있습니다. 1946년, 제1차 유엔총회의 의제는 핵무기의 국제관리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핵 독점의 태도를 바꾸지 않은 탓에 국제관리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으로 핵무기 확산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으로까지 확산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가진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국제정치를 움직여 2017년 핵무기금지조약이 채택되었습니다. 그 비준국이 70개국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기에 이 조약에 가입하려 하지 않고, 이러한 사실에 히로시마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핵무기 폐절의 첫걸음은 그 비인도성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미국은 79년 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국제인도법을 위반한 핵무기 사용의 책임을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이 과거 원폭 사용을 정당화하고 사죄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미국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했지만 사과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런 책임 회피를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미국의 원폭 공격에 대한 책임을 추궁해야 합니다. 미국이 원폭 사용은 잘못이었다고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는 한, 핵보유국은 핵을 지속적으로 보유할 것이며 ‘핵 없는 세상’은 실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당시 일본은 ‘악’이었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원폭을 사용했다. 그것은 정당한 행위였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논리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저는 일본의 경우 과거 식민지 지배와 전쟁 책임에 대한 반성을 전제한 후에 미국의 죄를 규탄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일방적 피해자인 한국피폭자와 입장이 다르지만, 미국의 원폭 공격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피폭자가 연대하는 것은 가능하며, ‘핵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피폭자를 중심으로 한일 양국의 민중이 단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는 피폭자도 포함시켜서 운동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에서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습니다. 남북의 대립은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릴 지도 모릅니다. 그 틈에서 고통받는 것은 피폭자입니다. 피폭자는 늙어가고, 생존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과 한반도의 불행한 역사를 바르게 공유하고 진정한 화해를 함으로써, ‘미래지향’이 슬로건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피폭자 연대의 형태로 ‘핵 없는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특히 동아시아의 평화를 확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입니다. 민중법정의 활동이 피폭자들의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고, 핵무기 폐절의 전망을 열어주기를 기대합니다.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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