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2006/02/16] SPI 대응 현지투쟁 보고 4-괌(GUAM) 미군기지를 돌아보다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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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SPI 대응 현지투쟁 보고 4-괌(GUAM) 미군기지를 돌아보다

WE SUPPORT OUR TROOPS!
오전 10시 15분, 전날까지 공식적인 SPI 대응 투쟁 일정을 마무리한 괌 현지투쟁단은 차모르 네이션(CHAMORU NASION) 성원인 네비의 안내로 괌의 미군기지를 돌아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네비는 우리를 섬의 북쪽으로 안내했다. 서태평양 상 필리핀 해에 길쭉하게 나있는 괌섬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미군기지들은 대부분 북쪽과 서쪽에 위치해 있다. 동쪽은 아메리카 방향이고, 북쪽은 일본을 향하고 있으며 서북쪽은 중국, 아시아 방향이다. 해군기지들은 서쪽 해안에 위치해있고, 공군기지는 북쪽 끝에 바다로 향한 절벽을 끼고 위치해 있다. 함대와 전투기가 서북쪽을 향해 쉽게 발진할 수 있게 한 기지들의 배치 구도는 괌이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허브가 되기에 손색없는 천혜의 요새임을 입증하고 있다.
[괌 지도]
북쪽을 향해 달리던 우리는 A.B.Won Pat 국제공항 전면에 “WE SUPPORT OUR TROOPS!"라고 씌여진 구호를 보았다. 괌에 오던 날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괌의 현재 위상을 상징하는 구호다.
얼마 안 가 곧바로 기지가 보인다. 괌섬의 북쪽 끝 오른편에 위치한 것이 Andersen Air Force Base고 왼편에 위치한 것이 U.S. Naval Communication Station이다.
[길 오른편이 앤더슨 기지, 왼편이 NCS 기지]
네비의 설명에 따르면 이 양쪽 기지를 가로지르는 길을 통행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전부터라고 한다. 이곳은 미군이 들어오기 전에는 사슴, 곰, 산돼지 등이 많아서 40대 후반의 네비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오기도 했는데, 그 동안 미군들이 다 잡아먹어서 지금은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단다.
네비는 북쪽 해안 끝까지 우리를 데려갔는데, 이곳은 NCS 기지의 일부로, 미군이 차모르인들에게 반환한 기지라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은 주일미군 해병대를 이곳으로 이전시켜야 한다며 다시 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괌이 미일동맹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비는 이곳을 반환받기 위해 수천 명의 차모르인들이 그들의 지도자(cheif) 엔젤 상투스(Angel Santus)와 함께 투쟁을 했다고 설명했다. 엔젤 상투스는 그 투쟁의 와중에 구속되었고, 석방된 그는 알 수 없는 병고에 시달리다가 2003년 타계했다는 것이다. 네비는 “그들(미국)이 Good Man(엔젤 상투스)을 죽였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네비가 '훌륭한 사람'이었다며 추모하는 차모르 독립운동 지도자 엔절 상투스의 기념비]
우리는 Andersen 공군 기지를 보기 위해 후문쪽으로 갔다. 네비를 비롯한 차모르인들은 우리의 미군기지 촬영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14일 퍼나이가 그렇더니, 이 날 네비도 우리가 차에서 내려 카메라를 기지를 향해 들이대자 “Please be careful!"이라고 외친다. 우리는 네비에게 기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좀 높은 곳에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네비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Santa Rosa Vista Point. 괌 섬의 높은 지역에 어김없이 배치되어 있는 레이다 기지들 중 하나로 보인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차모르인에게 허락을 얻어 멀리 보이는 Andersen 기지를 촬영했다. 그러나 그 차모르인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기지가 좀 더 잘 보이는 앞쪽으로 전진하려고 하면 그곳으로 가지 말라고 막아섰다.
어쩔 수 없이 돌아서 나오는데, 아무도 없는 언덕길을 올라서는 순간, 기지 전체가 보이는 게 아닌가! 우리는 네비에게 한 목소리로 “Stop!"이라고 외쳐 차를 세우고 언덕에 있는 바위 위로 올라가 기지를 바라보았다. 긴 활주로가 태평양을 향해 곧게 뻗어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저 곳에서 유사시에 4시간 정도는 급유없이 날아간다는 B2 전폭기가 한반도를 향해 출격한다는 거다.....소름이 끼쳤다.
[앤더슨 공군기지의 활주로가 오른쪽 끝 절벽까지 이어져 있다]
활주로는 바다로 떨어지는 절벽까지 이어져 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미군들에게 포로로 잡히지 않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그 절벽일까? 괌을 비롯한 사이판에는 그 같은 ‘자살절벽’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2차대전 당시 서로 적대하여 전쟁을 한 미군과 일본이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동맹군이 되어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를 향해 침략의 칼날을 세우는 형국이 아닌가. 괌으로 징병당하고, 정신대로 끌려온 수많은 한국인들과 아시아 민중들이 이곳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했던 일이 아직 채 해명되지도, 용서되지도 않았는데 미일 양국이 또 다시 이곳에서 전 세계를 향한 침략 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VIVA CHAMORU! VIVA KOREA! This is not GUAM, It's GUAHAN!
차모르인들이 12시부터 괌에서도 절경이라고 소문이 난 아가냐 해변(Agana Bay)이 보이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네비의 말에 서둘러 식사 장소에 도착하니 12시 30분. 줄잡아 20여 명의 차모르인들이 우리를 위해 식사 자리에 나와주었다. 점심식사 시간을 이용해서, 일터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와준 차모르인들은 우리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어디에서 준비해왔는지 맛있는, 먹고싶던 김치도 있다!
먹을 것을 향해 무진장 몰려드는 파리들을 쫓아내면서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차모르인들에게 그들이 너무 좋아하던 괭과리를 선물로 전달했다. 그들은 그것을 내일(17일) 있을, 미군들의 NCS 기지 재수용 반대 집회에서 사용하겠다고 하며 무척 기뻐하였다. 또 우리는 준비해간 평택 버튼과 투쟁 영상 CD, 전통 하회탈 장식물을 선사했다.
[괭과리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차모르 네이션 대표 빈센트]
차모르인들은 우리의 선물에 담긴 우의에 화답하여 전통 조개 목걸이와 그들이 오랜 동안 투쟁 현장에서 사용해온 '소중한' 차모르 깃발을 우리에게 선물로 전달해주었다. 차모르인들은 현재 전체 15만 명 정도의 괌 인구 중 반이 채 안된다고 한다. 괌은 19세기 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곧바로 미국령이 되었으며 2차 대전 당시에는 일본에게 정복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미국의 준(準)주로, 미 국무부가 관할하고 있다. 괌 정부는 공항 간판에서 상징하듯, 미군을 위한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게 차모르인들의 주장이다.
[미국의 괌 (준)정부 청사 모습]
이들의 말에 따르면, 괌(GUAM)이라는 이름도 원래 차모르 말로는 GUAHAN(과한; We Have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이 이것을 제멋대로 ‘괌’으로 불렀다며 “G는 Give, U는 Us, A는 American, M은 Money를 의미한다”면서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을 조롱했다. ‘차모르 네이션(CHAMORU NASION)’에 속한 이들은 대부분 매 주 금요일마다 기지 앞이나 그들의 지도자(엔젤과 같은 cheif) 동상 앞에서, 또는 정부 청사 앞에서 ‘과한’의 독립과 미군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수 십 년 동안 줄기차게 괌의 자유와 해방, 미군철거를 요구해오고 있는 차모르인들의 투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우리는 그들의 투쟁의 역사를 접하며 존경과 애정, 그리고 깊은 공감을 느꼈다.
현재 차모르 네이션의 대표(cheif) 빈센트는 60년대에 미8군에서 근무했던 이야기와 월남전 참전 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했다. 그는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신들과 함께 괌의 미군기지 앞에서 시위에 나선 우리들에게 깊은 우의를 느낀다며 우리와 여러 차례 악수를 하고 ‘HAFA ADAY: 고마워요, 평안하세요’를 연발했다. 특히 시위 때마다 조부모의 손을 잡고 나와 대형 소라로 만든, 그들의 전통적인 악기인 클루(Kulu)를 잘 불어대던 네 살 박이 게이슨은 조광수 국장과 그 사이 친해져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게이슨과 그의 새 친구 조광수 국장]
차모르인들은 우리가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괌에까지 와서 투쟁을 하는 것에 대해 부러움과 찬탄을 아끼지 않으며 앞으로 연대투쟁을 강화시켜내자고 여러 번 강조했다. 우리는 헤어지기가 아쉬워 몇 차례나 작별인사를 반복한 뒤에야 "VIVA(승리) CHAMORU! VIVA KOREA!"를 외치며, 반드시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길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괌 현지 대응 투쟁을 마치며
점심 식사 후 우리는 SPI 회의 기간 동안 시위를 벌였던 SUMAY 해군 기지(U.S. Naval Magazine)를 둘러보았다. Andersen 기지 다음으로 큰 이 기지는 Apra Harbor와 연결되는 곳인데, 이곳에는 언제나 핵잠수함이 정박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 부근 AGAT이라는 곳에 사는, 우리의 농성장을 자발적으로 찾아와주었던 한국인 가정을 방문했다. 이웃에 사는 한국인 부인도 함께 한 자리에서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이 반갑다며 여러 시간 동안 미국인들의 이기심에 대하여, 이곳에서 느낀 소수 민족으로서의 설움 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 부인은 "몇 년 전엔가 TV에서 백악관 앞에서 농성하는 한국사람들을 보았다"고 해서 "우리 동료들이다"고 하자 놀라와하며 “10년 안에 좋은 성과가 있어야 한다”면서 “애국적인 일을 하는 당신들을 위해 우리 교민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겠다”며 지지의 뜻을 표하였다.
시간이 허락하면 미군에 의해 다시 땅을 수용당하게 될 차모르인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조건이 되지 않았다. 유홍 국장이 하루 더 남아 이들의 집회에 동참할 것이므로, 그 일은 유국장 몫으로 남겨두었다.
한미동맹의 침략동맹으로의 전환이 가시화되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통해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고히 보장받기 위한 한미 양국의 밀어붙이기가 구체화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이번 현지 대응투쟁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 시민사회진영으로는 처음으로,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공동으로 미군기지 앞 농성을 전개하고 이것이 현지 언론에 널리 보도됨으로써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던 한미 당국에 크나큰 부담을 주었다. 아직도 한미 당국은 회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SPI 의제가 갖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한미 당국의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번 투쟁이 그 부담을 더욱 더 크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본다.
다음으로 이번 투쟁은 괌이 미국의 전략적 요새로서 동북아 패권의 전초기지라는 사실, 미일동맹의 강화가 괌의 기지 확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지에 가보지 않았다면 미국의 군사전략적 이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 생생하게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번 현지 투쟁은 차모르인들과의 연대를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부당한 패권적인 군사전략적인 요구에 맞선 투쟁 전선을 확대하였다. 차모르인들의 해방과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우리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투쟁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 맞선 국제연대투쟁의 확대가 국내투쟁을 촉발시키는 의의를 갖는 만큼 차모르인들과의 연대를 잘 살려내고 발전시켜내야 할 것이다.
멀리 괌에서 한국 교민들을 만나고 이들의 힘을 모아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현지 투쟁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한 미국의 군사전략적 이해와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끼칠 엄청난 부정적 결과에 대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냄으로써 전략적 유연성을 저지, 파탄내는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이번 투쟁의 의의를 더욱 크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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