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30] 제주 기지가 해양수송로를 지킨다? (한겨레신문 기고)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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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왜냐면] 제주 기지가 해양수송로를 지킨다? /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제주 근해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나 해적 등에 의한 해양수송로 위협은
현재 해군·경이 보유한 장비·시설로 충분히 실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
해군은 제주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여기에 기동전단을 배치하여 제주 남방 해역과 해양수송로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군사력 제일주의 발상으로, 여기에는 군사 전략적 차원에서 몇 가지 허구가 도사리고 있다.
첫째, 중국 등 주변 연안국들에 의한 해양수송로 위협은 허구다. 20년 전부터 ‘중국 위협론’이 대두했지만 중국 등의 주변국이 해양수송로를 위협한 사례는 없었다. 이는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해외 에너지 수입, 상품 수출 등 대외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국 등이 자국 연안의 해양수송로를 차단했을 때 다른 지역에서 세계 1~2위 해군력을 보유한 미·일 등의 보복적인 해양수송로 차단으로 스스로가 보게 될 피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둘째, 만약 중국이 해양수송로를 차단한다고 해도 절대 열세의 우리 해군력으로는 이를 돌파할 수 없다. 앞으로도 국방비가 우리의 2~3배에 달하는 중국을 상대로 해군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 설령 우리가 대중 우위의 해군력을 보유하게 된다고 해도 우리 함대가 중국의 해양수송로 차단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동·남중국해는 중국 앞마당으로 우리 해군이 작전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주 해군기지의 거리상 이점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셋째, 반대로 제주도 연안 해역은 우리의 근해로, 여기까지 진출한 중·일 해군에 대해 우리 해군이 공군력과 병참 지원에서 우위를 갖게 됨으로써 더 유리한 위치에서 작전할 수 있다. 이어도(5광구)에 대한 대응에서도 이미 우리 해·공군이 중·일 본토에서 발진하는 해·공군력에 비해 거리상 유리한 조건에 있어 굳이 제주 기지에서의 출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넷째, 이른바 해적 등이 제주 남방 해역이나 해양수송로상의 민간 상선 등을 위협하는 경우에는 기동전단을 구성하는 대형함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더 기동성 있는 소형 호위함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법적으로 해경의 주 임무이자 해경은 이미 이를 위한 충분한 장비와 능력을 갖추고 있어 해군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굳이 제주에 대규모 해군기지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 한편 말라카해협에 이르는 서남방 항로는 해상수송로 차단을 우회할 수 있는 항로(필리핀제도~보르네오 동쪽 해로 등)가 적지 않다.
이렇듯 특정 국가에 의한 해양수송로 위협은 해군력을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정치·외교적 과제이며, 제주 남방 근해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나 해적 등의 해양수송로 위협은 현재의 해군·경이 보유한 장비와 시설로 실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불필요한 대규모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대형 함정 위주의 기동전단 운영은 수조원에 달하는 국가 자원의 낭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매달리는 것은 미국의 해양 패권전략에 편승하려는 것이다. 해양수송로는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이 밝힌 대로 ‘침략경로’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미 허구로 밝혀진 ‘소련 위협론’을 명분으로 일본열도 ‘불침항모론’과 ‘1000해리 해양수송로 방어(?)’를 위한 일본의 해군력 증강을 관철시킨 바 있다. 이제 ‘중국 위협론’을 명분으로 제주도 ‘불침전함론’과 제주도 남방 해상수송로 보호(?)를 위한 한국의 해군력 증강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소요가 처음 제기된 시점(1993년)이 냉전 해소 직후 미국에 의한 ‘중국 위협론’이 대두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하고, 또한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확정된 시점(2007년)이 한·미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2006년)한 직후라는 사실은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의 군사전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결국 평택 미군기지가 주한미군의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행사를 위한 육상 전진기지라면 제주 해군기지는 서태평양에서 미 태평양 함대가 중국 포위를 포함한 해상 패권전략을 행사하기 위한 출발지가 되는 셈이다.
<한겨레신문 201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