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제9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탐색전이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렸다. 내년부터 5년간 적용할 분담금 지급 기준을 놓고 양국 정부가 임명한 방위비 분담 대사끼리 벌이는 협상이다. 주는 쪽은 한국이고, 받는 쪽은 미국이다. 이론상 한국이 미국에 갑 행세를 할 수 있는 협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경비의 일부를 부담하기 시작한 1991년, 1073억원이었던 분담금이 올해는 8695억원으로 늘었다. 분담금 명목으로 그동안 미국에 준 돈이 12조1240억원에 달한다. 국가방위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둔비용의 일부를 우리가 부담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책정 방식이다. 현행 방식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이다. 주한미군의 인건비를 제외한 총 주둔비용을 ‘비(非)인적주둔비용(NPSC)’이란 이름으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뒤 그중 몇 %를 한국이 부담할 것이냐를 놓고 밀고 당기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한 번도 NPSC의 구체적 내역을 우리에게 제시한 적이 없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인 인건비 얼마, 군사건설비 얼마, 군수지원비 얼마, 따라서 총액 얼마 하는 식이다. 어떻게 그런 액수가 나왔는지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없다. 그러면서 한국의 분담률은 40~45% 선에 불과하니 50%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는 NPSC와 분담률이란 개념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NPSC를 우리가 확인할 방법이 없을뿐더러 미군 주둔으로 발생하는 각종 간접비용까지 감안하면 실제 분담률은 훨씬 높다는 것이다. 분담률 산출 공식의 분모와 분자에 대한 시각이 다르니 협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주한미군은 2002년부터 군사건설비 명목으로 받은 돈을 다 집행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 왔다. 지난해까지 모은 돈만 7611억원이다. 분담금 과다 책정 논란이 불거지자 미국은 이 돈을 2사단 이전 경비로 돌렸다. 어차피 미국 호주머니로 들어온 돈인데 어디에 쓰든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다. 당초 계획했던 건설공사가 2사단 이전 계획 때문에 무산되면서 굳은 돈이니 미국 돈이란 주장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공금유용이고, 횡령이다. 2사단 이전 경비는 미국이 부담키로 한 기지이전협정에도 어긋난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채 눈감아주고 넘어갔다. 국회는 국회대로 분담금 협상 결과를 따지지도 않고 추인하는 고무도장 노릇을 해왔다.
돈 문제를 갖고 야박하게 따지는 것은 동맹국에 대한 도리가 아닐 수 있다. 시시콜콜 따지다 보면 오히려 우리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고, 크게 보면 국익에 마이너스란 주장도 있다. 일부 반미주의자들의 공연한 흠집내기란 지적도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민 세금에서 나가는 돈인데,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고 줘야 할 것 아닌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깜깜이 분담금 협상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부추기는 한·미 동맹 불안 요인이다.
박근혜정부는 원칙과 신뢰, 국제규범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분담금 협상을 제대로 해야 한다.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꼼꼼하게 따지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2사단 이전 경비로 전용되는 분담금의 원천이 한국이라는 점도 명문화해 시비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외교적 수사로 대충 얼버무리는 구태와는 이제 작별해야 한다.
“미국에 밉보이면 출세에 지장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황준국 방위비 분담 대사는 “그 대신 국민이 잘 봐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영어 구사 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성향이 반미적이라면 그는 그 자리까지 가지도 못했다. 그러니 황 대사, 쫄지 말고 “고(Go)!”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